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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리뷰

[아비정전] 왕가위 전설의 초석 (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1990)

by 내이름은★박재환 2020.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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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왕가위(왕지아웨이) 감독은 한때 많은 영화팬들의 우상이었다. 자기복제를 거듭하는 홍콩느와르와 넘쳐나는 쿵푸무협물 속에서 고고하게, 도도하게 자신만의 미학을 밀어붙였던 우직한 작가주의 영화감독의 전범이었다. 그의 전설적 작품 <아비정전>이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물론, 그의 작품은 회고전을 통해, DVD를 통해, 왓챠를 통해 맘만 먹으면 쉽게 볼 수 있었다. 다시 보니 여전히 반갑고 우울했다.

왕가위 감독은 그 ‘화려하고도 분잡스러운’ 홍콩영화계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발을 디뎠다. 그가 각본을 쓴 작품목록을 말하면 아마 놀랄 것이다. 저런 대가가 저런 작품을? 여하튼 그런 과정을 거쳐 그는 1988년 <열혈남아>를 내놓았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유려한 카메라에 잡힌 홍콩의 어두운 작품을 ‘왕가위스럽게’ 만든 것이다. 홍콩영화계는 열광했고,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준다. <아비정전>(원제: 阿飛正傳,Days Of Being Wild,1990). 그에게 기회를 줬다는 것은 제작비를 주고, “맘껏 찍어보라!”는 것이었다. 배우이자 제작자이자, 삼합회와도 끈이 닿았던 등광영(鄧光榮)이었다. ‘열혈남아’처럼 액션장면 포함시키고, 스타배우를 출연시키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총만 쏴도 팔리던 홍콩영화 황금시기, 손만 저어도 팬들이 몰려드는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걸 왕가위가 또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1960년대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다. (장국영이 장만옥에게 “1960년 4월 16일 3시 1분전. 당신과 여기 있고, 당신 때문에 난 이 순간을 기억 해”라고 수작을 건다) 그때 홍콩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아마도 10여 년 전 중국대륙이 공산화된 후, 영국의 보호 속에 겨우 자유국가로 살아남은 위태로운 작은 나라로 이해한다. 중국에서는 자유를 찾아 넘어온 사람들로 가득 찼고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업에 매달려야만 했던 그 시절, 지금처럼 높은 마천루가 자본주의의 번영을 보여주기 전의 ‘그 시대’ 홍콩 뒷골목의 젊은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유한마담을 등쳐먹는 제비족이나 밤무대 무희의 기둥서방 같은 놈팽이가 활개 치는 어두운 홍콩을 보여준다. 장국영은 축구경기장 매표소 직원 장만옥을 화려하고도 달콤한 말솜씨로 녹여버린다. 불안한 동거는 내일이라곤 전혀 없는 듯한 삶을 사는 변덕스러운 장국영에 의해 여지없이 깨져버린다. 그 빈자리는 댄서의 순정을 가진 유가령이 차지한다.여자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파트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장국영, 로맨스를 만들고 싶은 유가령, 그리고 그 유가령을 짝사랑하는 장학우가 안타까운 연정을 내비친다. 그렇게 버림받은 장만옥에게 유덕화가 다가온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순찰하는 홍콩경찰 유덕화. 유덕화는 버림받은 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장만옥을 불쌍히 여긴다. 장국영은 생모를 찾아 홍콩을 떠나 필리핀으로 향한다. 세월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유덕화는 선원이 되어 홍콩을 떠났고, 장국영과 필리핀의 한 허름한 여관에서 만나게 된다. 둘은 서로 어긋난 인연의 인물을 공유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없다. 대책 없는 장국영은 생모에게서 버림받고 필리핀에서 최후를 맞는다. 유덕화는 잘못된 인연에 휘말리면서 같은 신세가 된다. 냉정을 유지하는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는 이번엔 또 다른 홍콩의 방황하는 젊음을 보여준다. 양조위가 오랫동안 거울 앞에서 빗질을 하며 외출을 준비한다. 관객은 양조위와 유가령, 장만옥의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암시를 받을 뿐이다.

이 영화는 왕가위의 ‘홍콩’영화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왕가위의 상하이 디아스포라를 그린다. 극중 장국영은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사람이고 그의 생모는 이국 땅(필리핀)에 있으며, 그를 키워준 양모는 곧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장만옥은 홍콩과 마카오를 오가며 살아가고, 유덕화는 선원을 동경하며 홍콩을 떠나갈 생각뿐이다. 홍콩에 남아있는, 그리고 남아있을 유가령과 장학우는 원인모를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것이 <아비정전>에 포함된 등장인물의 불안감이다. 장국영의 방황은 생모에 대한 표현하기 힘든 애증의 결과이다. 당시 홍콩의 우울한 상황을 배제시키더라도 청춘의 방황과 그 극복 방식, 해결점에는 공통점이 있다. 젊었을 때는 인식과 수용이라는 여유를 애써 외면하게 되고 절박감과 조급한 충동만이 가득한 것이다. 그렇게 장국영은 자신을 내버렸고 유덕화는 희생당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살아남은 유가령과 장만옥은 침울한 홍콩의 삶을 연명해가는 것이다.

 왕가위 가족은 상하이에서 홍콩에 넘어온 사람들이다. 왕가위 핏속에는, 그의 작품에는 그런 디아스포라가 남아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질 무렵 중국에서는 천안문사태가 일어났고, 홍콩인들의 심정은 뒤숭숭했을 것이다. 게다가 왕 감독은 당시 남미문학에 푹 빠져있었단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시대의 사랑>이나 마누엘 푸익의 <하트브레이크 탱고>의 영향은 감지할 수 있다. 

<열혈남아>의 흥행성공으로 주목받았던 왕가위 감독은 <아비정전>을 두 편으로 기획했단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아웃사이더>와 <럼블 피쉬>를 만들었던 것처럼. 초호화캐스팅으로 청춘의 쌍곡선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왕 감독은 이 영화를 ‘동시녹음’으로 찍는다. 후시녹음이 일반적이었던 당시에는 연기자에게도 당황스러운 시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왕가위는 자신의 미학을 만들어갔다. 

영화 제목 <아비정전>은 단순히 뤼신의 [아큐정전]처럼 한 청년의 이야기인줄만 이해했는데 몇 해 전 나온 존 파워스가 왕 감독과의 인터뷰집 <왕가위 WKW>에서 왕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아비’(阿飛)라는 표현은 60년대 특유의 것이다. <이유 없는 반항>, <웨스트사이트 스토리>에서처럼. 당신이 만약 누군가를 ‘아비’라고 부른다면 그건, 당신이 60년대를 특정하여 모종의 서구화된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이를 지칭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비란 이름은 홍콩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보통의 부류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서구스타일을 추종하는 청년이라는 인상을 부여한다“고. (극중 장국영처럼 옷 입는 것, 멋 내는 것, 셔츠와 헤어스타일, 코카콜라를 사먹고, 팬암 가방도, 구두 뒷굽의 징까지...)

 제작자 등광영은 이 영화를 연말에 개봉시키기 위해 왕감독을 닦달했고, 결국 필리핀에서 허겁지겁 ‘액션’ 촬영을 끝낸다. 이런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크리스토퍼 도일은 황홀한 밀림 장면을 건졌고 엄청난 주목 속에 공개된다. 물론, 홍콩에서는 첫 시사회에서부터 ‘전설’이 시작된다. “이게 뭐냐”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한국에서도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이 극장 문을 파손시켰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당연히 약속했던 <아비정전2>는 영원히 만들어지지 못할 것이다. 


● 당신의 그 1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그러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양조위는 뭐란 말인가. 꼼꼼하게, 한참이나 머리 빗고, 행커치프 꽂고, 지갑 챙기고, 돈 챙기고, 거울 쳐다보는 그 장면은? 등광영 덕분이다. “이 영화엔 양조위가 꼭 나와야해. 이미 외국엔 그렇게 계약을 했단 말야.” 그래서 양조위가 등장한 것이다. 이 뜬금없는 엔딩씬마저 왕가위 미학의 절정판이다. 

 왕가위가 <아비정전>에서 못다 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것이 중요할까. 홍콩은 그렇게 노쇠해지고 홍콩의 사람들은 그렇게 중국인으로 편입되어버렸는데 말이다. 그렇게 <아비정전>은 볼 때마다 우울해진다. 

참,이 영화에서는 ‘발 없는 새’에 대한 우화가 나온다. 발이 없어 하늘을 날기만 하던 새가 지상에 안착하는 것은 마지막 생의 순간이라고. 그 때는 이런 대사에 매혹되었었다. 왕가위 감독의 그야말로 저주받은 걸작 <아비정전>은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재환 영화리뷰 2020.12.24

장국영-장학우-왕가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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