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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리뷰

[중경삼림] 왕가위 1994년 홍콩 러브스토리

by 내이름은★박재환 2021.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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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인지 웬만한 영화는 다 ‘리바이벌’되는 듯하다. 그 아이러니한 잔칫상에 왕가위 영화가 빠질 순 없을 것이다. 왕가위 영화가 ‘디지털 리마스터링’이라는 화려한 왕관을 쓰고 극장에서 관객을 다시 부른다. 그리고 OTT서비스 ‘왓챠’에서도 그의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언제 적 왕가위며, 언제적 홍콩이야기인가. 이 영화는 1995년에 한국에서 개봉되었었다. 그리고 26년 만에 다시 만나는 중경삼림.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느낌이랄까.

한때는 열광하던, 그러나 끝없는 자기복제로 홍콩영화란 것이 도매금으로 쓰레기취급 받을 때 왕가위는 혼자 빛났던 별이다. 시네필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했었다. 홍콩의 (자기들 말로는) ‘영화로운 중국회귀’에 맞춰서 특히나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중경’(충칭,重慶)은 스촨(사천)성의 성도이다. 이 영화에 그 도시는 나오지 않는다. 단지 홍콩에 있는 많은 건물 중 하나이다. 중국이나 대만, 홍콩에 가보면 ‘도시’이름을 단 도로나 건물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아마도 ‘중경빌딩’의 건물주도 자기의 고향이름을 따서 그렇게 지었는지 모르겠다.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에서는 이 건물을 배경으로 1995년을 살아가는 홍콩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들도 연애를 하고, 일을 하고, 불법을 저지르고, 무엇보다 1997년(중국회귀)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왕가위 감독은 그런 상황을 결코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담지 않는다. 지극히 가볍게, 감각적으로, 노래와 함께 흔들리는 카메라에 담아낸다.


 영화는 네 명의 홍콩 사람의 연애담을 담고 있다. 금발머리 임청하는 인도 관광객을 이용해서 마약을 운반하려고 하고 있다. 만우절 날 이별통보를 받은 경찰223(금성무)는 매일 유통기한 직전의 통조림을 먹으며 신세타령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지낸다. ‘223’의 생각은 ‘하이힐을 신은 채 잠을 자면 발이 붓는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그 가게에서 일하는 페이(왕페이)는 그 지역을 순찰하는 경찰663(양조위)에게 매료된다. ‘663’은 스튜어디스와 헤어진 상태. 페이는 663의 빈 아파트를 찾아 청소를 대신 해준다. 캘리포니아에서 만나기로 한 그들은 햇빛 쏟아지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홍콩의 캘리포니아 카페에서 어긋난다. 하지만 마마스앤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과 왕페이가 부른 ‘몽중인’(夢中人) 노래가 끝없이 반복된다. 


 적어도 오랫동안 왕가위 영화의 올바른 독해법은 1997년 ‘홍콩의 중국회귀’와 맞물러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캘리포니아를 찾고, 이과수 폭포를 찾고, 미래를 헤매는 것이다. 그들이 마음의 안식을 찾았는지, 꿈에 그리는 미래에 정착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왕가위 감독은 그동안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존 파워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일별할 수 있다. 존 파워스의 인터뷰대담집 <왕가위 WKW>를 보면 ‘중경삼림’에서의 임청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천하의 왕가위 감독이 (당시) 대스타 임청하에게 ‘은퇴한 여배우가 비비안 리가 된 것처럼’ 연기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금발머리 임청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처럼 마약밀매상을 연기한다. 메소드 연기로! 왕가위의 단짝 미술감독 장숙평은 임청하에게 ‘마놀로 블라닉 하이힐’을 신고 뛰기를 원했다. 임청하는 그렇게 뛰고, 그렇게 총을 쏜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왕가위는 그렇게 하면 멋지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화팬들은 당연히 그것을 멋지다고 받아들인다. 

왕가위는 감독으로 돌아선 뒤 <열혈남아>로 주목받고 두 번째 작품 <아비정전>으로 폭탄을 맞는다. 적어도 ‘제작자입장’에선 말이다. 그는 서둘러 자신의 영화사 ‘택동’(제트톤)을 만들고 돈이 되는 왕가위영화를 만들려고 애쓴다. 당시 홍콩에서는 <동방불패>의 빅히트로 갱영화는 한물가고 무협물이 대세였다. 왕가위는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영화로 만들기로 한다. 원작의 유명세에 배우들 캐스팅도 완벽했다. 하지만 2년이나 중국에서 고생하면서도 완성시키지 못하자, 그 와중에 뚝딱 <중경삼림>을 찍기로 한 것이다. 리허설도, 철저한 사전준비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장 왕가위다운 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양조위와 임청하라는 당대의 스타, 왕페이와 금성무라는 뉴페이스를 데리고, 왕가위는 그렇게 1997년을 코앞에 둔 홍콩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친 것이다. 왕가위는 그때, 지금의 홍콩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이나 했을까. 정치색을 빼도, 홍콩이라는 지역성을 빼더라도 <중경삼림>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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