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땅] 미국 남북전쟁당시, 프랑스사람의 형편(다비드 페로 감독 Savage State / L'État sauvage 2019)

2020. 7. 13. 14:26유럽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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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개막된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는 모두 194편의 영화(장편 88편, 단편 85편, VR무비 21편)가 상영된다. 처음 우리나라에TJ '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린다고 했을 때는 상영작품이 모두 SF나 호러일 줄 알았지만, 결국 영화란 것은 전부 '판타스틱'하다는 명제만을 확인시켜주었다. 코로나19 와중에 열린 올해 영화제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열성 '판타스틱영화제'팬들이 잊지 않고 부천으로 달려와 주었다. 화제작뿐만 아니라 주말의 경우 웬만한 영화들이 매진되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한 객석 띄어 앉기 영향이 크겠지만 말이다. 

 <야만의 땅>(감독: 다비드 페로 원제: Savage State / L'État sauvage)은 만나보기 힘든 소재를 다룬다. 존 웨인 시절의 할리우드는 서부극의 황금시대였다. 요즘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장르이다. 그런데 <야만의 땅>은 미국(에서 만든) 서부극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소재를 담고 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피해를 입은 당사자 일방을 다룬다. 누구? 흑인? 남부인? 여자? 놀랍게도 프랑스인이다. 

콜럼버스 이래 수많은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프랑스 사람들도 일찌감치 동부 해안을 통해 대륙의 서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루이지애나'는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를 따온 땅일 만큼. 당시 아메리카 대륙을 두고 영국과 미국이 싸울 때 프랑스는 중립을 지키려 애썼고, 노예문제로 북군과 남군이 싸울 때도 프랑스 국왕은 자기들 신민에게 엄정중립을 명령했다. 프랑스는 땅보다는 그 땅에서 나는 물자가 필요했고, 프랑스 땅에서 나는 와인과 향수 같은 산물을 수출할 시장이 필요했다. 당시 미주리 세인트찰스에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에드몽 가족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집안처럼. (노예제 폐지를 내세운 링컨의) 북군이 결국 남군을 몰아내고 이곳에 군화 발을 딛는 순간 에드몽 가족의 희망은 산산조각 난다. 그들도 결국 남부의 영광을 향유하던 기득권층이었으니. 

북부군의 야만적 압박에 생명마저 부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에드몽은 대저택과 화려한 기억들을 뒤로 하고 서둘러 탈출한다. 종교적 신념에 충실한 아내, 과년한 딸 셋, 그리고 자신의 충실한 하녀(흑인). 물론 자신이기도 했다. 에드몽은 '용병' 빅터에게 거액을 지불하고 뉴욕까지 보호해달라고 애원한다. 이제 서부개척기 시절 마차 타고 인디언의 추적을 뚫고 서부로 달려가던 미국인들처럼, 그들은 반대방향 동쪽 해안으로 온갖 위험을 뚫고 달려간다. 마차 바퀴가 빠지고, 알 수 없는 추적자를 만나고, 날씨는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 속에 걷고 걷고 또 걸어서. 과연 뉴욕항에 도착할 수 있을까. 살아서?

미국사에 있어서 미주리는 지정학적 이유로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다. 북부의 자유주와 남부의 노예주 사이에 끼어 '아메리카합중국 USA'에 합류할 때 노예제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남북전쟁을 다루지만 링컨의 위대함이나 노예제의 문제의 대의, 자유의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직 '평화롭게, 우아하게, 잘 살던' 프랑스인들이 자기의 나라로 살아서 돌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에드몽 가족이 목격하게 되는 그 당시 상황은 어땠는가. 제목 '야만의 땅'이 대변한다. ‘세비지 스테이트’. 그것은 야만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미국의 화가 토마스 콜이 그린 연작화 ‘제국의 코스’(The Course of Empire)의 한 장면이 바로 ‘세비지 스테이트’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 용병 빅터가 푼돈으로 위험한 사업을 펼칠 때 "돈 벌면 뭐 할 것이오"라는 질문에 "유럽으로 건너가서 교양을 좀 배울 거요"라고 답한다. 빅터의 눈에는, 그리고 에드몽 가족이 피부로 실감하는 미국은 교양과는 거리가 먼 야만의 족속이다. 우아하게 파티를 열고, 왈츠를 주는 공간에 들이닥친 북부군들은, 수많은 역사에서 수많은 영화에서 보아온 정복자들처럼 약탈을 펼치는 현장이다. 

영화는 요즘 영화답게 여성 서사를 다룬다. 위험한 순간, 결정적 순간에 굳센 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여성 캐릭터의 몫이다. 그것이 주인공이든 악당이든 말이다. 대신 남성 캐릭터는 무례하거나, 수동적이거나, 악하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달.아.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일본작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요코이야기>가 생각났다. 일본이 패망하고 함경도에 거주하던 어린 소녀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지난한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역사는 거대한 명분과 명제의 대향연이고, 그 거대한 파고 속에는 많은 사연과 시선, 그리고 해석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물론, <요코이야기>는 나쁜 책이다. (박재환 20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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