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개막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00여 편의 다채로운 영화가 한국의 시네필에게 소개된다. 그중 <커밍 홈 어게인>(Coming Home Again)은 미국 내 아시아인들의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는 웨인 왕 감독의 신작이다. 홍콩 출신의 웨인 왕은 17살에 미국에 왔고, 올해 70살이다. 그가 이번에 관심을 보인 것은 미국에 뿌리를 내린 한국인사회 구성원의 이야기이다. 당초 웨인 왕 감독이 부산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최근 건강상태로 막판에 취소했다.
BIFF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전, 웨인 왕 감독이 영상으로 자신의 영화를 소개했다. 감독은 한국계 미국인(교포 1.5세)인 이창래 작가가 1995년 ‘뉴요커’에 쓴 에세이를 보고 인상에 남았다고 한다. 작가가 위암에 걸린 어머니를 1년여 병수발을 들며 느낀 복잡한 심정을 글로 옮긴 것인데, 웨인 왕 감독도 자신의 어머니를 파킨슨병으로 보내며 그 때 감정을 영화로 옮기고 싶었다고. 웨인 왕 감독 작품답게, 독립영화답게 영화는 힘들게 펀딩이 이뤄졌고, 저예산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암과 삶과, 인생,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를 전해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샌프란시스코의 주택가를 달리는 창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깅 중이다. 거친 숨을 내쉰다. 어딘가 분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쪼그려 앉아 오열을 터뜨린다. 그리고 아파트에 와서는 샤워한다. 천천히 아파트를 보여준다. 저쪽 방 침대에는 위암에 걸린 어머니가 있다. 창래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회사를 그만 두고 이곳에 온 것이다. 조금씩 상황이 드러난다.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에 의해 명문 고등학교에 보내졌고, 예일에 진학하고, 결국 월스트리트로 간 창래는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돈 안 되는 작가의 길에 아버지는 언짢아했다. 대학교수인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간호엔 젬병이었고, 가족의 일엔 권위도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다.
창래는 엄마가 해준 음식들을 재현시키려고 노력한다. 특히 갈비를. 뼈에 살이 어느 정도 붙어있게 저며야 한다. 잡채도 하고, 전도 부친다. 목표는 섣달 그믐날 온가족이 모인 가운데 어머니에게 한상 가득 차려주고 싶은 것이다. 위암으로 오늘내일 하는 엄마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말이다. 한국에서 온 여동생까지, 가족의 미묘한 감정이 부딪치는 만찬 장면은 아이러니의 정찬이다.
한식에서 시작된 웨인 왕 감독의 한국가족 들여다보기는 이문세의 ‘옛사랑’ 노래에서 정점에 달한다. 창래가 오디오로 그 노래를 크게 틀 때 눈물이 날 정도이다. 외도한 것으로 사료되는 아버지는 이 노래에 대해 “낭만적 사랑이 변화하는 레토릭”이라는 거창한 변명을 한다.
감독은 창래가 요리를 할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특히 쇠고기 갈비를 손볼 때 의미를 확실히 한다. 갈비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얇게 저미어야 하며, 뼈에서 살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기의 풍미를 위해서는 뼈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가족의 유대를 뜻할 것이다. 뉴욕에 있든, 샌프란시스코에 있든, 한국에 있든.
웨인 왕 감독은 한국인의 변화하는 정서를 완벽하게 잡아낸 셈이다. 갈비의 레토릭으로 말이다. 창래 역은 저스틴 전, 어머니는 재키 청, 어버지는 존 리, 여동생 역은 크리스티나 줄리 킴이 연기한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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