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그 설산에 사람이 있다 (이석훈 감독 2015)

2019. 8. 10. 07:04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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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5.12.28) 영화 ‘히말라야’는 ‘국제시장’을 만든 JK필름 작품이다. 윤제균 감독은 감독데뷔작이었던 ‘색즉시공’부터 시작하여 장르가 무엇이었든 관객이 원하는 것을 잘 파악했고, 충무로의 제작능력 내에서, 그리고 지금 어떠한 영화가 필요한지를 절묘하게 기획하여 작품을 내놓고 있다. 대단한 능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전 세계가 ‘스타워즈’에 올인할 때 승부수로 ‘히말라야’를 띄운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어서일 것이다. 이달 초 기자시사회가 끝나나자마자 나온 ‘히말라야’에 대한 평가는 그 간의 윤제균 작품에 대한 평가와 다름없었다. “과잉감성, 기획력만 돋보이는 휴머니즘 영화”라는 평가와 “실화를 바탕으로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휴머니즘 영화”라는 전혀 상반된 평가들 말이다. 놀라운 것은 개봉 첫 주부터 ‘스타워즈’를 꺾고 흥행을 주도하는 것을 보니 ‘국제시장’만큼이나 특별함이 있어서일 것이다. 

영화 ‘히말라야’는 다들 아는 대한민국 대표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TV다큐멘터리 때문에 유명해진 산악인 박무택 대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쟁이 아닌 평시에, 남자와 남자(물론, 여자대원도 있지만!)가 이렇게 생명을 담보로 할 만큼 진한 동료애를 가진 경우가 있을까. ‘히말라야’가 개봉되기 몇 달 전 ‘에베레스트’란 영화가 소개되었었다. 그 영화의 원작인 ‘희미한 공기 속으로’라는 르포르타주를 읽어보면 오늘날 ‘지구상 최고봉’ 산들에 오르는 산악인과 등산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최초’니, ‘무산소등정’이니, ‘14좌’니, ‘16좌’니 하는 거창한 타이틀은 의미가 사라졌다. 돈만 있으면, 스폰서만 구하면 최고봉 등정이라는 숭고한 행위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특히나 방송카메라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말이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정복한 영국의 힐러리 경 시절에는 고산(高山)에 대한 종교적 숭고함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영적인 도전의식이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어느새 ‘높은 산’이란 것은 ‘강인한 육체와 굳은 정신력, 그리고 고집’으로 이야기되는 뒷동산이 된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알고도 이 영화 ‘히말라야’가 새롭게 보이는 것은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인간의 이야기는 산악인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동료애’와 ‘고집’에 연유한다. 

황정민의 연기는 산악인 엄홍길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산으로 향해야만하는 심정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황정민의 연기를 통해서 춥고, 고통스러운 눈 덮인 고산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황정민을 통해 ‘리더의 책무’나 ‘성공한 산악인의 철학’을 전해 듣는 것이 아니란 점이 그의 연기의 미덕이다. 

이 영화를 통해 엄홍길과 박무택이라는 산악인의 활력과 산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또 한 사람, 전혀 의외의 인물에게서 진한 감동을 받게 된다. 박무택이 최악의 조건에 고립되었을 때. 죽기를 각오하고, 아니, 죽음을 알고 올라가는 단 한사람 박정복이라는 산악인의 존재이다.

실제, 그런 상황에서 고함치고, 욕하고, 저주하고, 통곡하며 텐트 밖으로 나서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추운 밤을 꼬박 새우며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고, 자신 또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영화 ‘히말라야’를 보면서 조심스레 ‘세월호’를 떠올릴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보여주는 ‘엄홍길의 휴먼원정대’는 다름 아닌 죽은 자를 거두기 위한 산 자의 멍에이다. 오래 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며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가며 오직 한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어이없음을 느꼈을 수도 있다. 휴머니즘에는 값비싼 희생이 따르는 셈이다. 

그런데, 이번 ‘히말라야의 숭고함’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박무택’을 데리고 오지도 못했고, 나머지 대원은 찾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고통의 시간, 절망의 순간을 거치면 산 자의 도리를 다한, 그런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그 진정성의 순간이란 게 결국은 적절한 포기의 순간을 말한다. 그 결단의 시점을 재단하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야수가 아님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히말라야’에는 박무택 대원 말고도 수많은 산악인들이 수많은 사연을 안고 잠들어 있다. ( by 박재환.2015.12.28)



[사진 = JK필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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