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01.7.16.) 2년 전,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가 처음 세종문화회관에서 상영된 후 쏟아진 비난은 지금 생각해도 비참할 정도였다. 영화의 기본도 안 된 상태에서 펼친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평자와 네티즌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비난 속에 아주 가끔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CG쪽 관련종사자들의 냉혹한 자기비판적 글이었다. 그 동안 헐리우드의 영상혁명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자국의 영상기술발전에 등한시 해오던 영화팬들이 심형래의 그러한 도전에 돌을 던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사기꾼이 아닌 이상 그러한 열혈 도전의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CG기술은 언제나 그 수준에서 맴돌게 될지도 모른다. <파이널 환타지>를 보고나선 우선 떠오른 생각이 그러한 <용가리>의 도전 정신이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파이널 환타지>에는 100%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영화사상 최초의 인간 캐릭터가 등장한다. 사실 이것은 조금 논란의 소지가 있을 듯하다. <토이 스토리>의 픽사가 내놓았던 <게리의 게임>이라는 단편은 말할 것도 없고, 작년에 개봉된 영화 중에 <신밧드 2000>이란 영화에서도 실제등장 인물은 모두 CG로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인형이나, 공룡, 외계인이 아닌 사람을 CG로 창조해내었다는 것이 <파이널 환타지>에서 말하는 '세계최초'라는 주장이다. 아마 <스타워즈 에피소드1>에서 '자자 빙크스'라는 외계생물체 캐릭터에 대해 감탄, 혹은 실망한 사람이라면 이번 <파이널 환타지>의 인간 캐릭터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파이널 판타지>는 이미 10편까지 제작된 인기 비디오게임 <파이널 판타지>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3천 만장 이상이 팔렸고, 게임 제작사인 스퀘어 사가 1억 5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이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의 신화를 만들어내었던 히로노부 사카구치 감독을 포함하여 세계적인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 애니메이터들이 총동원되어 세계 최고의 장비로 만들어낸, 과학과 상상력의 결합품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들 전문가들이 2001년에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벤 어플렉을 닮았다는 남자주인공의 외모뿐만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들의 외양과 움직임이 갈수록 실사영화에 근접한다. 그러니까, <다이너소어>에서 볼 수 있었던 원숭이의 미세한 털의 나풀거림이나, <토이 스토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미세한 먼지입자까지 만들어내는 CG기술은 인간의 피부근육 움직임이나 입술 변화모습 등은 물론이고 걸음걸이와 달릴 때의 골격구조까지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이 생길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ILM이 그 동안 꾸준히 진보시켜오던 CG들, 예를 들어 <어비스>의 물기둥 장면, <터미네이터2>의 T-1000, <스타워즈>의 자자 빙크스, 그리고, <토이 스토리>의 픽사가 이룬 개가들과 비교하여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일부를 차지하던 CG가 100% 대체된 것이 의의가 있다고? 조금 더 유연해졌다고 그것이 인간일까? 이제 더 이상 극영화에서 스타는 필요 없다고? 물론, 아니다.
◇ 영혼의 무기
굳이 영화내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2065년 외계생물체의 침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지구는 그들의 지배 아래 들어간다. Old New York을 무대로,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은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고 지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무력을 동원해서 에일리언을 몰아내려는 헤인 장군의 태도에 반대하는 아키 박사와 시드 박사는 지구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영적인 힘으로 에일리언을 몰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특수부대 '다크 아이즈'의 그레이 대위의 도움으로 생명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8개의 정신( The spirits)를 찾아 나선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제7의 정신에 이어 제8의 정신까지 찾아내지만 그러한 황당무계한 정신의 힘을 믿지 않는 헤인 장군은 제8의 정신을 향해 강력한 무기를 발사한다.
이 영화는 엄청난 제작비와 상상을 초월하는 열정으로 만들어낸 보기 좋은 1시간 45분 짜리 그래픽 전시회 이상의 것을 전해주지는 못한다. 재패니메이션이나 컴퓨터게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설정들 -영적 메시아의 존재, 지구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희생-이 근사해 보이는 갑옷으로 무장한 수색대원과 예술작품 같은 세트 디자인과 함께 관객들의 넋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럴듯한 주제의식은 호화찬란한 그래픽만큼 인상적이지 못하다. <아폴로 13>의 각색 팀이 맡았다는 시나리오는 우선 지루하기 그지없고, 장대하고도 화려한 이미지에 비해 결코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징적 장엄함'에 머물고 말았다. 만약, <공각기동대>의 미래상이나, <매트릭스>의 라스트 신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인 영화팬이라면 이 얼마나 허망하기까지 한가.
<투씨>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 더스틴 호프먼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아야하는가 여우주연상을 받아야하는가 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었다. <파이널 환타지>에서 보여준 기술의 진보속도라면, 곧 영화 속에서 창조된 CG캐릭터에게도 아카데미 연기상을 수여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영화를 본 톰 행크스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한 연기가 컴퓨터 이미지로 바뀌거나 이를 누군가 악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걱정스럽다"고 했다.
실제로 초창기 CG에서 사용되었던 '모션 픽쳐'방식은 진화를 거듭하여 웬만한 연기파 배우들의 특징적 데이터를 조합하여 웬만한 고난도 연기를 창조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제작자 입장에선 고액의 개런티도 필요 없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게다가 컴퓨터게임과 인터넷 세상에서는 그러한 창조된 캐릭터를 얼마나 광범위하게 부려먹을 수가 있을까. <툼 레이더>에서 게임의 여전사를 실사로 이끌어내었다면, <파이널 환타지>는 게임의 이미지를 영화로 다시 한 번 고착화시킨 셈이다. 하지만, 관객들이 안젤리나 졸리에게 반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아키'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는 화려한 영상효과, 실제 같다는 CG그림들 때문에 영화 보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을까?
<파이널 환타지>가 영화의 미래를 보여주었다는 성급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만약, 영화의 기술적 측면을 보고 싶다면 <파이널 환타지>를 볼만하지만, 여전히 스크린에서 인간미를 느끼고 싶은 영화팬이라면 이 영화가 괴물같이 느껴질 것이다. (박재환 200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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