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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진행형으로서의 삶

홍콩영화리뷰

by 내이름은★박재환 2008. 2. 2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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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와 관련하여 글쓴이 박재환은 아래와 같이 공고합니다
1. 이 글은 박재환이 최초 1998년 12월 27일이 작성 웹에 올린 글입니다.
2. 이 글은 이후 대학 중국역사/ 교양영화 관련 강의 수강생들이 단골로 베껴가는 글이 되었습니다.
3. 그러던 중 어느 교수(강사인지 교수인지는 모름)가 '중국영화 관련책자'를 내며 이 글을 거의 통채로 베껴 게재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을 인지한 후 그 사람과 통화를 했고 사과를 받았습니다. 그냥 넘어갔는데.. 이후 그 책을 어떻게 읽은 독자가.. 제 사이트 글을 보고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제(박재환)가  자기 교수 책을 보고 베꼈다고 어쩌니저쩌니 하는 것입니다.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그 일 이후 이 리뷰를 고치고 싶어도 못 고칩니다. 네티즌 여러분 앞으로 그 책을 보게 되더라도 그 사람을 탓해야지 절 탓하지 마세요.. 황당해서...

[Reviewed by 박재환 1998-12-27]
 
장예모 감독의 1994년도 작품으로 무척이나 재미있는 영화이다. <포레스트 검프> 하나로 미국현대사를 속성마스터했다면, 이 <인생>이란 영화 하나로 중국 현대사를 겉핥기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국공내전부터 시작하여 대륙의 공산화, 모택동시절의 일련의 광란의 역사-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 그리고 등소평이후 자본주의길로 뛰어가는 중국의 모습을 한 특별한 중국인민의 모습을 통해 볼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인생(人生)>>이 아니라, <<후오즈(활착:活着)>>이다. 뒤에 붙은 "착"은 중국어에 있어 접미사의 일종으로 지속성-계속됨-을 의미한다. (부착하다, 장착하다...할때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된다) 그러니 이런 저런 역사적 부침을 겪으면서도 죽거나 꺾이지 않고 연연히 살아내려가는 민초의 모습을 보며 시인 김수영의 "잡초"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되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도 인류를 속이고, 인민을 농락하고, 역사를 기만했을지라도 끈질기게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그것이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을 연결짓는 유일한 메세지인 셈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여화(余華)의 중편소설이다. 이미 국내에 번역된 것도 있다. (아주 놀라운 것은 중국의 왠만한 문학작품은 풀텍스트로 인터넷에서 찾아볼수 있다. 이 원작소설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물론 중국어폰트HZ코드가 깔려있거나, 리치윈같은 프로그램 사용할 줄 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어 독해가 가능하다면 찾아가 보기 바란다 - 홈페이지 참조) 이 영화도 <붉은 수수밭>처럼 소설이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주인공의 직업이다. 소설에선 단순한 농부로 묘사된 푸꾸이가 영화에선 그림자극의 대가로 묘사된다. 이는 아마도 <패왕별희>에서 북경경극이 효과적으로 쓰였듯이 여기서도 어떤 영화적인 매력을 위해 설정한 모양이리다.

  1930년대의 푸꾸이(福貴)는 지주계급-유한족속이다. 하루종일 도박판에 쳐박혀 시간을 소진하는 놈팽이이다. 결국은 도박판에서 가산을 다 날린다. 그의 집문서가 넘어 가는날 아버지는 홧병에 죽고, 아내는 집을 나가버린다. 그제서야 세상의 험난함과 추움을 알게된 푸꾸이는 새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어린 딸과 젖먹이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던 아내가 돌아오고, 그는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바로 "피잉쥐(皮影劇-일종의 그림자극)"였다. (이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줄리 앤드류스가 아이들과 함께 요들송 부르며 공연하던 양치기소년 퍼펫 쇼 - 나무인형에 가는 철사줄을 매달아 위에서 움직이는 쇼-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피노키오도 이랬던가?) 중국에는 이러한 종류의 인형극이 몇 가지 되고, 역사도 꽤 오래 된다. 호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 다음 작품은 대만의 포대희(布袋戱)를 다룬 영화 <희몽인생>이었다. 이는 대만의 인간 문화재인 이천록 노인의 일대기로서 피잉쥐와는 조금 다르다. 포대희라는 인형극은 인형을 장갑처럼 만들어 그 속에 손을 집어 넣어 움직이며 여기에 대사와 음악을 곁들여 공연하는 것이다. <금지옥엽>에서 원영의가 인형 두개 가지고 놀던 장면을 연상하라! (<희몽인생> 영화에선 대만의 인간문화재인 이천록이 젊은 시절, 인형극을 하며 대만인을 웃고 울리던 사람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시기에는 또다시 일본천황만세라는 내용의 인형극을 하게 되고, 해방후 다시 대만극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푸꾸이는 원래 도박판에서 가끔 가다 피잉쥐 패거리에 끼어 한 재주 보여주기도 했었기에 그가 이제 자신의 능력을 밥벌이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절이 하수상하여 국공내전(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군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열심히 싸우던 시절)이 시작되고 푸꾸이는 국민당군에 끌려가서 군인들을 위해 그림자 놀이극을 보여준다. 일종의 문선대 쇼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엄청나게 추운 겨울날. 추위에 오돌거리며 떨다가 일어난 아침, 흰눈이 온 강산을 뒤덮은 그 들판 위엔 온통 끝없이 펼쳐진 국민당군의 시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얼어죽고, 병들어죽고, 내버려진 중국인들인 셈이다. 국민당군이 죽고 뿔뿔히 도망간 그 공백을 차지한 것은 이번엔 공산당군이다. 이제 푸꾸이는 공산군을 위해 그 그림자극을 보여줌으로써 생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전쟁은 끝나고 푸꾸이는 꿈에 그리던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 공리는 아침에 뜨거운 물을 가가호호 배달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린 딸 봉하(鳳霞)는 병마의 후유증으로 벙어리가 되어 있었지만 똘망똘망한 아들놈 유경(有慶)이랑 네 가족이 행복한 순간을 맞는 듯하다. 그가 오래 전 도박으로 탕진한 가산과 큰 저택을 물려받아았던 사람이 이제 시대가 변해 지주라는 죄목으로 총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푸꾸이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는 인민혁명군을 위해 공연을 한 무산계급 출신의 혁명동지로 자신의 신분이 변해 있음을 정말 다행으로 여긴다.

  역사는 계속되고 이번엔 대약진 운동이 시작된다. 이는 물론 모택동이 일으킨 운동이다. 그 이전 3년동안 중국은 엄청난 자연재해에 고생하였다. 그래서 일거에 공산주의 부국을 만들기 위해 대약진운동이란 것을 전개했었다. 동네마다 용광로가 만들어지고, 집집이 쇳조각들이 긁어 모아지고 모두들 제철 제련작업에 투입된다. (이는 엄청난 자원의 비효율적 집행이었음이 밝혀진다.... 큰 용광로, 작은 용광로가 전국 곳곳에 세워진다. 미제국주의가 동부에서 침략해올 때를 대비하여 중국은 "3선이론"이란 것을 내세워 중국내륙 깊숙히 제철공장, 정련공장을 중복 건설한다. 포항제철이나 광양제철소가 왜 바닷가에 있는지는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당시 중국은 그런 배려없이 산골짜기에 공장을 세우는 우를 범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걸고 넘어지지는 않았다. 모든 자원과 모든 결정은 모택동의 독단과 집단광기로 이루어진 시대였기 때문이다) 푸꾸이의 똘망똘망하던 아들놈 유경이가 희생당하는 것이 이 시대였다. 잠결에 학교에 불러간다. 높은 분이 지도 나왔다기에 나가서 제련작업을 도와야하기 때문이다. 푸꾸이는 그런 애처로운 어린 유경이를 업고는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이야기한다. "유경아 잘 들어라. 지금은 우리 집이 비록 병아리같이 작지만. 병아리가 크면 닭이 되고, 닭이 크면 양이 되고, 양이 크면 소가 된단다...." 유경이가 묻는다. "소가 크면 뭐가 되죠?" " 음.. 소가 크면 공산주의가 된단다. 공산주의가 되면 매일 고기와 만두를 배불리 먹을수 있단다.." 그날 유경이는 담장에 누워 자다가 후진하는 트럭때문에 무너진 담벼락에 깔려 죽는다. (그 트럭을 몬 사람은 이전에 푸꾸이 밑에서 피잉쥐를 하던 사람이었고 이제 이 마을 높은 관리로 부임한 사람이었다) 아들의 죽음은 비극이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그들 가족은 한 생명을 담보로 잡은 셈이기도 하다.

  다시 역사는 흐르고 문화대혁명의 시대가 온다. 푸꾸이의 벙어리딸 봉하도 어느듯 다 커서 홍위병 청년과 결혼을 한다. 봉하가 병원에서 출산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성격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의사란 존재는 모두 반혁명반당분자로 下放당하고 자아비판 당하는 신세가 된다. 새파란 학생들이 혁명완장을 차고 병원을 차지한다. 결국 봉하는 아기를 낳다 과다출혈로 죽는다. 하혈을 하지만 어린 학생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며칠을 굶었다는 왕빈이라는 산부인과 의사가 꼬깔모자(반당분자의 징표)를 뒤집어써고 병원에 끌려와서 만두 먹다가 체하여 죽을고비를 당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블랙코메디의 진수이다. 푸꾸이는 새조국 건설을 위해 딸과 아들을 바친 셈이다.

  몇 년 후 병석에 누워있는 푸꾸이의 처가 사위와 손자의 생일 축하인사를 받는다. 그들이 유경이와 봉하의 무덤에 다녀오는 길에 손자놈을 위해 병아리를 산다. 푸꾸이는 오래 전부터 보관하고 있던 피잉쥐 도구를 담아두는 괘짝에 병아리를 담으며 감개무량하게 이야기한다. "병아리가 자라면 닭이 되고, 닭이 자라면 양이 되고, 양이 자라면 소가 된단다.." 손자가 묻는다. "소가 자라면 뭐가 되죠?" 그러자, 공리가 그런다... "그 다음엔 너도 어른이 되는거야." 손자가 아주 기뻐서 그런다. "그럼 내가 어른이 되면 소를 타고 다니나요?" 이에 푸꾸이가 그런다. "아니. 너가 어른이 되면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다닐거야. 그때가 되면 세상살기가 지금보다 좋아질테니까."

  영화는 그렇게 희망적인 대사로 끝난다.

  이 영화는 깐느 심사위원대상과 푸꾸이 역의 역의 갈우가 남우주연상을 받는 등 서구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중국현대사는 결국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투쟁이라는 외적 변천에 관계없이 실제 인민은 열심히 제 살길을 찾아 살아간다는 간단한 진리를 보여준다. 겉보기에는 현대사 관통이지만 한편 보면 지독한 풍자임에 분명하다. 지금이야 웃으며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지만, 당사자들은 어찌 죽음과 희롱한 그 시절 그 때를 잊을수가 있을까. 푸꾸이는 한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운명을 헤쳐나간 적은 없다. 도박에서 지는 것도, 국민당군 공산당군에 차례로 부역하는 것도, 그리고 아들을 죽음의 운명으로 몰아넣는 것도 모두 상황이, 현실이 그를 그쪽으로 몰아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그림자극을 위해 목숨걸고 지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랴말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리고 그 현실이란 것이 죽음과 매시간 희롱하는 것들이기에 우리는 더욱 범상치 않은 보통 인민의 행동과 운명을 동정적이며 가슴따뜻해지는 시선으로 지켜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장예모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은 지난 수십년 그런 바보같고, 우스꽝스런 집단광기의 희생자는 바로 중국인민이었음을 보여주고, 나아가 그러한 운명조차 받아들이는 인민이 있기에 사회는 진화하고 국가는 발전한다는 - 적어도 그런 느낌이 들 정도의- 진리를 말해주는 것이다. 광란의 중국역사를 보는 감독의 눈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병원에서의 그 지독한 부조리. 의사가 있지만 결코 도움이 안 되고, 자신만만한 홍위병 여학생의사가 있지만 믿을 수 없고, 모든 것이 되는듯 안 되고, 안 되는 듯 결국은 다 되는, 그리고 새옹지마처럼 반복되는 기나긴 운명의 희롱은 중국인들을 지치고 숙명론적으로 길들였을지도 모른다. 남은것은 삶에 대한 신념일 수도 있지만 어쩜 뿌리깊은 불신과 체념주의일지도 모른다.... 물론 오늘날의 중국은 모두 돈독이 오른 대단한 사람들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고 말이다. 참 괜찮은 영화였다.....

  이 다음부터는 대만관계로 영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나는 이 영화를 대만에 있을 때 보았었다. 대만에서 대만학생과 함께 비디오로 처음 보았을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鎭長이 마을사람과 함께 제련된 쇳덩어리를 자랑스레 메고서는 당에 보고하러 갈때 하던 이야기. "이걸로 대포알 세개는 만들수 있다. 하나는 장개석의 침실에, 하나는 식탁에, 하나는 변기 위에 떨어뜨려 장개석이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고, 볼일도 못보게 할 거야. 그럼, 곧 대만을 해방시킬 수 있는거야..."라고할 때였다. 그때 대만인들은 모두 재미있다고 웃던 기억이 난다. (대륙의) 중국인들은 사실 100% - 한 사람도 예외없이 대만이 자신의 일부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대만의 동포들이 언젠가는 대륙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오게 되리라고 믿는다. 이러한 의식구조는 정치사회경제문화 모든 곳에 번져-박혀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때 대만이 그렇게 국제사회에서 모욕적인 처사를 받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만의 입장은 어떤가.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은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대륙의 공산화를 선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식 개국을 만천하에 선포했었다. 그 이전 십여년간 모택동의 인민군과 헤게모니 쟁탈전이자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였던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군은 대만으로 내쫓겨가야만했다. 10억 대륙의 공산 중국대륙인민을 두고 장개석은 1949년 이래로 대만국민을 닥달했다. 대륙을 수복하자고.. 곧 다시 대륙에 국민당기를 휘날릴수 있다고.. 이전처럼 중화제국의 영화를 다시 차지하자고... 하지만 그 세월이 10년, 20년, 지나면서 모든 나라들이 대만에 등을 돌리고 현실을 직시하여 대륙중국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미국도 더 이상 대만을 지지하지 않고 중국과 수교하였고(79년), 우리나라도 대만을 버리고 중국을 택했던 것이다. (새 친구를 사귀기 위해 옛친구를 버렸다..라는 다분히 감상적인 말이 당시 식자층에 유행했었다) 얼마전 대만에서는 세 가지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었고,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이 대북(타이베이)시장 선거였다. 국민당 후보는 마영구란 미끈하게 생긴 사람이었고, 민진당 후보로는 진수편이라는 민주투사였다. 대만 정계는 사실 꽤나 복잡하다. 국민당은 장개석의 유지를 받들었다. 대륙을 수복할 것이라고.. 그것이 시대가 흐르면서, 원래의 수복 빛은 바래지고 (누가 수복하든 언젠가는 합쳐지게 될것이라는 목표아래) 현실적으로는 중국의 무력접수만을 피하자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사실, 중국의 대만침공은 많은 시나리오가 나와 왔다. 중국내의 혼란이 가중되면 그 무마책으로 대만접수가 시도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 경향이다. (물론 미국측의 분석으로는 쌍방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될 것이고, 결국 중국은 대만을 유혈접수한단다) 물론 중국으로서는 당분간 전혀 그런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말이다. 현상 유지가 상호 최선의 선택인지도 모른다. 홍콩이 제발로 (실제적으로는 영국측과 수십년의 반환협정과정을 거쳤지만) 돌아왔듯이 대만도 언젠가느 자연스레 대륙중국의 품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국인은 우리처럼 조급하지 않다. 그 세월이 백년이 되었든, 천년이 되었든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상황에서 대만의 총통이자 국민당 당수인 이등휘의 초미의 관심사는 제발 대만내부에서 딴 소리가 세어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중국의 입장은 대만에서 "대만독립"(대만은 대륙중국이랑은 별개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중국을 수복할 의사도 없고, 단지 대만인의 나라를 세우고 싶다!!!)이라는 말만 나오면 즉각 무력행동에 옮기겠다고 몇년째 협박하고 있다. (중국이 그러한 이유는 다민족 국가로서의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 티벳에서부터 시작하여 각 민족, 지역이 독립을 주장하면 러시아꼴 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민진당의 천수비엔은 다르다. "대만은 대만이고, 중국은 중국이다"라는 것이다. 이번에 다시 대북시장에 당선되면, 내년에 대만총통선거 후보로 나설 것이고, 그가 대만총통이 되면, 대만독립공화국을 선포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했다. 그러면 중국은 당장 대만을 접수할 것이고... 이 모든 것이 10년내에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장개석과 장경국 장위국... 이런 사람들이 대만을 다스릴 때는(우리의 박정희 시대임) 대만인을 계엄령으로 다스렸고, 딴소리가 전혀 흘려나오지 않았었다. (<비정성시> 등 후샤오시엔 감독 작품을 보면 그 시절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인생>영화 이야기에서 쓸데없이 대만 현대사로 빠져나왔네... 음. 하지만 언젠가는 한번 대만을 이야기하고 싶었었다. ^^ (박재환 199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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