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공간|異度空間] 장국영, 임가흔 감독:나지량 (Inner Senses,2002)

2008. 2. 21. 09:02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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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3.6.23.) 장국영의 <이도공간>은 일본에서 <카르마>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로 ‘업'(業)이란 뜻이다. 불교용어에서 ‘업(보)’란 ‘현재를 옭아메는 과거의 죄악’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 영화를 보고나면 일본식 제목이 꽤 그럴 듯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홍콩 언론에서 재구성한 지난 4월 1일 화요일, 장국영의 행적은 다음과 같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낮 12시 홍콩 동라만의 한 레스토랑에서 디자이너(莫華炳)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장국영이 손수 차를 몰고 그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단다. 그리곤 오후 4시에 중환문화주점(中環文華酒店) 24층에 위치한 피트니스 룸에서 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의 연인(당)과 통화를 하였고 저녁에 배드민턴을 함께 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5시쯤에 24층 발코니에 나와 담배를 한대 피우고 차를 마시며 빅토리아항의 일몰을 지켜보았단다. 그리고는 호텔 종업원에게 종이를 갖다 달라고 해선 몇 자 글자를 적었다고 한다. (이게 유서였단다!) 이 시간에 그의 친구 진숙분(陳淑芬)이 호텔 커피샵에서 장국영을 만나기 위해 도착해 있었다. 6시 30분 경 진숙분은 장국영이 내려오지 않자 전화를 했었고 장국영은 곧 내려가니 호텔 로비에서 만나자고 했단다. 그리곤 6시 41분, 장국영은 24층에서 뛰어내렸고 숨이 아직 붙어있는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7시 6분, 의료진은 장국영의 사망을 공식확인했단다. 그리고 유체는 21시 25분경 부검실로 옮겨졌다. 아직도, 장국영의 팬 사이트에 가 보면 장국영의 사망을 믿지 못해 그의 자살을 부인하고 있는 글들을 볼 수 있다. 자살의 동기가 없고, 각종 의혹을 내세우며 타살설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현재로선 이것은 번외스토리일 뿐이고.

장국영의 사후 그의 죽음을 둘러싼 상반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가 너무나 평범한,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었기에 갑작스레 뛰어내려 죽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장국영이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었고 그의 연인(당)은 그날도 무척 염려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장국영이 작년 <이도공간>을 찍을 때 정신적으로 불안정했ᄋᅠᆻ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시 함께 작업한 스탭이나 동료배우들은 아직도 여기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장국영의 <이도공간>은 작년 여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간에 소개되었었다. 당시 장국영은 한국을 찾지 않았지만 감독 나지량과 여배우 임가흔은 한국을 찾았었다.

<이도공간>은 나지량의 3번째 감독 작품이다. 장국영이 홍콩의 불쌍한 3류 에로 영화감독으로 출연했던 <색정남녀>가 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제작자이자 감독인 이동승 감독은 장국영-이동승과 함께 <색정남녀>,<창왕>(더블 탭), 그리고 <이도공간> 등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동승은 처음 <색정남녀>에 주성치를 출연시키려 했었다고 한다)

<이동공간>의 시나리오는 양천령이 맡았다. 그녀는 작품으로는 <환영특공>이 있단다. 원래 <유령일기>으로 기획된 이 영화는 귀신들린 여자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장국영의 롤을 확대시키면서 영화는 ‘귀신들림의 전염’을 다룬다. 헐리우드 영화 <식스 센스>의 분위기에 일본영화 <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홍콩에서는 부활절을 전후하여 이런 류의 영화가 개봉되는 것이 유행이 되어버렸다. 장국영이 귀신, 혹은 죽은 자의 혼령을 투시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임가흔이 홍콩의 한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 온다. 그날 이후 그녀는 헛것(귀신)을 보기 시작한다. 그녀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는 결국 정신과 의사인 장국영의 치료를 받는 처지에 놓인다. 장국영은 ‘귀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다. 결국 이런 장국영의 헌신적인 치료로 임가흔은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가 그려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장국영에게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장국영은 몽유병 증세에,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장국영이 학창시절 그의 여자 친구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적이 있었다. 그 소녀는 장국영이 자신을 버렸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고 마지막까지 장국영을 저주하며… 죽은 것이다. (가위 소리가 아주 섬뜩하다!) 장국영은 이 일을 까마득하게 잊었다고 생각했지만(아니 잊으려고 했지만…) 어느 날 그 죄책감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장국영의 눈앞에 비참하게 자살한 옛 여자 친구의 환영이 자꾸 나타나자 그는 마침내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높은 빌딩에 올라가 뛰어내려 자신의 고달픈 삶을 마감하기로 한다. 그의 앞에 나타난 피투성이 소녀를 향해 한탄을 한다.

“난 지난 몇 년간 전혀 행복하지 못했어. 다른 여자도 사귈 수가 없었어. 너 때문이지. 넌 죽어서도 행복하지가 않은데 내가 행복해질 권리가 있을까? 하지만 난 널 잊고 싶어. 정말로 널 잊고 싶어. 내가 죽어서 네가 만족하고 기뻐한다면… 그렇게 하지. 넌 내가 죽어서 우리가 다시 만나면 과거를 잊어버릴 걸로 생각하지? 망가진 물건을 다시 고칠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이건 돌이킬 수 없는 일이야. 우린 결코 잊지 못할 거야 절대, 절대로 못 잊어.”

장국영이 뛰어내렸을까? 장국영 사후, 우리나라 일부 신문보도에서는 <이도공간>의 마지막을 잘못 전달하기도 했었다. “장국영은 그의 마지막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빌딩에서 투신자살하여 삶을 마감했다.”라고. 하지만 실제 영화 마지막은 장국영은 결국 소녀의 원한에서 벗어나서 임가흔의 사랑에 안착한다. 이 때문인지 그의 팬들은 장국영이 영화처럼 자살을 포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장국영은 죽기 전에 몇 편의 영화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알만한 제작자들이 장국영 이름을 팔아먹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서도 그 자신이 적어도 한편 이상의 영화 감독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삶을 포기했을까? 알려진 대로 지구에서의 이중의 삶이 그렇게도 힘들었을까. 장국영의 삶은 그의 영화들만큼 너무나 매력적이다. 죽음조차도. 영혼의 안식을 빈다. (박재환 200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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