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18.08.13) ‘블랙리스트’ 정권을 지나자마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류의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도 그 중의 하나이다. ‘공작’은 YS정권 시절에 있었던 대북스파이활동을 다룬 작품이다.
정확히는 1993년, ‘북핵위기’가 고조될 때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둘러싸고 의문스런 행보를 이어간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하면서 클린턴은 이른바 외과수술식 폭격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이다. 당시 YS정권의 안기부(국정원 전신)에서는 이 엄중한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공작>은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
영화는 당시 중국에서 활동한 한 안기부 요원의 활약상을 저본으로 삼는다. ‘박채서’란 인물이다. 정보사 요원이었던 그는 안기부에 특채되어 대북 첩보활동을 펼쳤단다. 안기부에서는 “과연 북한에서는 어느 정도 핵개발이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박채서는 대북사업가로 위장하여 중국에서 대북라인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다. 오랜 수고와 기다림 끝에 박채서는 북경에 나와 있는 북한의 대외경제위 리명운 처장과 연결되었고, 기선잡기와 패 숨기기라는 전형적 게임의 법칙이 진행되고 마침내 북한핵심부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박채서의 실제이야기는 한창 북핵사태로 시끄럽던 시절부터 ‘취재원과 취재기자’로 연을 이어오던 (‘시사저널’의) 김당 기자가 최근 내놓은 책 <공작>에 자세히 나온다. 윤종빈 감독은 ‘북풍’과 ‘흑금성’ 이야기를 듣고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영화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는 박채서의 활약상을 기반으로 하면서 상상가능한 중국에서의 남북접촉의 모습, 그리고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북한내부의 이야기(보위부와의 관계 등)를 흥미롭게 엮어서 완성시킨다. 윤종빈 감독은 총 한 방 쏘지 않으면서도 영화를 전체적으로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이끈다.
박석영이 위험천만한 임무를 맡고 북한의 거점으로 들어갈 때의 긴장감은 <무간도>의 양조위 처지와 다름없다. 양조위가 워띠(卧底,잠입한 첩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황추생 한 명뿐이었듯이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제한적이다. 그는 안기부내에서 단지 ‘흑금성’으로만 통했단다. (박채서는 나중에 자신이 ‘흑금성’이라 불리며 관리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단다)
황정민이 연기하는 박석영은 첩보활동 과정에서 이중의 위험에 노출된다. 북으로부터의 역공작과 남으로부터의 배신이다. 어느 경우든 죽음을 담보해야한다.
영화 <공작>에서는 ‘남과 북’의 체제우위, 이데올로기적 승리를 위해 상대의 군사적 약점(혹은 강점)을 훔쳐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군사적 위험요소마저 정치적 거래, 체제안정을 위한 한 방편으로 활용된다. 그 과정에서 박석영은 이성민과 묘한 동질감을 갖게 된다. 자신의 안위와는 상관없이, ‘최고존엄’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뛰어넘어 국가, 혹은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라는 유대감이 형성된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입맛에 따라 공작의 방식이나 목적이 바뀌기도 하는 모양이다. 때로는 음지에서 일하는 그들을 희생시켜 양지에서의 성과물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롤렉스의 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가도, 보위부의 감시망이 아무리 무서워도, 선거로 대통령이 바뀌어도, 그들의 최종 목적은 같을 것이리라.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된다는 임무 말이다.
남에선 정권(대통령)이 몇 차례 바뀌었고, 북에선 최고존엄이 바뀌면서 게임의 판은 점점 더 커져간다. 아마도, 롤렉스만으로는 뚫을 수 없는 극한상황이 ‘그들’에게 던져졌을지 모르겠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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