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1938년, 케이죠(京城) 쇼조(少女) 사라지다 (이해영 감독,2015)

2015. 6. 17. 18:18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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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의 한반도 풍경을 상상만이라도 해볼 수 있는 영화가 한 편 개봉된다.  ‘천하장사 마돈나’와 ‘페스티발’이라는 독특한 영화를 만들었던 이해영 감독의 세 번째 감독 작품이다. 만약 그 두 영화를 봤다면 이번 영화도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박보영이 ‘늑대소년2’를 찍은 것은 아니니 말이다.

 

1938년 녹음이 푸르른 어느 여름날, 세단차 한 대가 수풀 우거진 산길을 달려 경성에서 가까운 한  요양학교에 들어선다. 계모의 손에 이끌린 주란(박보영)은 소녀들만 있는 학교에 편입한다. 처음엔 폐병 환자처럼 쿨럭이던 주란에게 교장(엄지원)은 매일 아침 주사를 맞힌다. 모든 학생들은 건강해진다는 약을 먹고, 체육시간에는 멀리뛰기를 한다. 잘 달리고 멀리 뛰는 우수학생에게는 일본유학이라는 달콤한 약속도 주어진다. 주란은 거의 유일하게 자신에게 친절한 연덕(박소담) 때문에 이 수상하고 의심스럽고 비밀스런 학교생활에 적응해 간다. 그 사이 동급생이 하나둘 사라지고, 학교의 비밀과 교장의 정체를 알게 된다. 경성학교의 익숙한 풍경은 살벌한 도축장이 되어간다.

 

이해영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씨름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찍었던 사람이다. 광주의 한을 복수극으로 푼 ‘26년’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대단한 상상력의 소유자인 이 감독은 1938년의 조선 땅, 조선 여학생을 내세운다. 숲속 비밀학교의 여학생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마도 관객에게도 역사적 상상력을 요구할 것이다. 혹시 위안부 이야기? 아니면 소녀 마루타?

 

이 감독은 영화 초반에는 녹색과 장밋빛의 향연 속에 ‘위험한 해석이 가능한’ 십대 또래 여학생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폐쇄된 공간의 집단생활 속에 싹트는 우정. 비밀일기장, 정성스레 말린 꽃, 교복만큼 동질감을 느낄 잠옷, 두 사람만의 비밀 공간, 그리고 바다가 보일지 모르는 산길까지. 이들의 우정담과 라이벌 의식이 공존하다가 어느 순간 영화는 급속하게 방향을 전환한다. 그 순간부터 나카타 히데오의 ‘여우령’ 혹은 ‘링’의 기시감과 다리오 아르젠토의 ‘써스페리아’의 공포감이 스멀스멀 화면을 지배한다.

 

영화는 너무나 독특한 줄거리를 가졌기에 후반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감독이 1938년이라고 못 박은 것은 식민지조선, 근대화된 조선의 사정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병참기지화로 만들었고 모든 자원을 수탈해간다. 그것이 학생이든, 징용이든, 정신대든 말이다.

 

박보영은 왜소한 스티브 로저스가 슈퍼 솔져 프로젝트를 거친 후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듯 시즈코(靜子)의 놀라운 변신을 보게 된다. 이해영 감독은 영화를 만들다보니 마루타에 마블 히어로를 합체시킨 것이다. 마치 유관순이 헐크가 되듯이. 이 영화의 변신만큼은 올해 최고의 상상력이다.   (박재환,201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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