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라이즈 - 미국식 영웅전설의 종말

2012. 7. 17. 10:26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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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기대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개봉된다. 어제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는 영화팬들의 기대를 잔뜩 모으고 있는 놀란 감독의 신작 배트맨 영화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렸기에 아이맥스 버전 상영관은 일찌감치 만석이었고 일반(디지털버전) 관람만도 감지덕지해야할 형편이었다. 그렇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올 여름 영화저널 관계자, 평론가, 호사가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온 작품이다. 천재감독이라고 숭앙받는 놀란 감독이 어떻게 ‘배트맨’ 3부작을 종결지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인 것이다. 순수 팬들은 그런 호들갑과는 다른 차원에서 경배하듯이 다소곳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 모든 슈퍼 히어로가 그러하듯이 출생과 성장의 아픔을 곱씹으며 세상의 평범한 인간들과는 다른 능력, 혹은 사명을 띠고 세상을 살아가는 영웅의 고뇌와 고독과 절망, 그리고 희생이 어떻게 그려질지. 그리고 갈수록 비현실화 되어가는 할리우드 특수효과 기술의 진보는 911테러 다음 날의 뉴욕을 실제 보는 것처럼 무너져내린 도시의 참상을 애처롭게 스크린에 재연한다. 박쥐는 언제 동굴을 나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날갯짓을 할까.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영웅의 자아분열

 

배트맨의 충실한 팬들, 그리고 놀란 감독의 사도들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감상하기 전에 꼭 그 전작들을 곱씹어보라고 권유할 것이다. 원작 만화(그래픽노블)까지는 아니더라도, 팀 버튼의 작품은 무시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어린 시절 박쥐동굴에서 심하게 공포심을 느낀 브루스 웨인의 기억과 노상강도의 총에 죽은 부모에 대한 악몽을 안고 사는 재벌남 브루스 웨인의 ‘영웅 되기’에 자연스레 심리적으로 동화되어갈 것이다. 세상은 어지럽고 도시는 부패했으며 최악의 악인이 활개칠 동안 정의는 완벽히 눈을 감고 있다. 그런 세상이 정의의 사도, 영웅을 요구할 때 브루스 웨인은 기꺼이 박쥐 가면을 한 채 등장한다. 하지만 브루스 웨인이 그날 동굴에서 박쥐에게 물려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변종인간은 아니다. 그가 홀연히 세상에서 사라진 동안 수련한 액션은 인간의 육체에 바탕을 둔 극한적 자기인내일 뿐이다. 진짜 돈 많은 남자로 도시의 정의를 고뇌하던 그는 세상에서 표연히 사라졌고 8년 뒤 다시 세상이 뒤숭숭해지고 새로운 악당이 등장할 때 ‘마침내’ 세상에 컴백하는 것이다. 박쥐가면을 하고 버전업된 자동차와 신형무기 몇 가지를 더 달고 말이다.

 

새로운 악당, 새로운 조력자

 

<다크 나이트 라이즈> 같은 영화가 시사회를 가지면 영화사는 스포일러 유출에 극도로 예민해진다. 배트맨이 마지막엔 어떻게 되는지. 조커나 하비 덴트처럼 죽는 것인지. 마리옹 꼬띠아르가 왜 이 영화 등장하는지. 그리고 오랫동안 ‘중요역할’ 일 것이라고 변죽만 울리던 조셉 고든 레빗이 누군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짐작은 하고 있지 않나? 단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마무리 짓는지, 그래서 배트맨이 어떻게 영웅으로 육화(肉化)되는지를 확인하고 싶을 따름인 것이다.

 

어쨌든 히스 레저가 열연했던 악당 ‘조커’의 자리를 채울 베인의 악마성은 어느 정도인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홍보성 자료에는 베인을 ‘흉악한 겉모습에 명석한 두뇌를 가진 테러리스트’로 묘사한다. 세상의 재부를 독차지하려는 물욕도 없고 기이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마구잡이로 폭력과 파괴를 일삼던 악당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놀랍게도 놀란 감독은 한국TV드라마처럼 가족의 탄생과 인생유전에 대해 이야기를 끼워넣는다. 놀란 표 배트맨의 특징인 액션은 어떤가. 놀란 감독이 그리는 배트맨과 베인의 대결은 이연걸과 견자단이 펼치는 천하무봉의 절기의 다툼을 본다기보다는 아놀드 슈왈츠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이 이종격투기를 펼치는 듯 육신의 고통으로 가득하다. 지난 세월 라스 알 굴에게서 익힌 싸움의 기술은 어디로 사라졌고 루시 폭스 박사는 미국 국방부 신형무기개발실보다 더 거창한 실험실에서 왜 지극히 단순한 슈퍼펀치 글로브 하나 개발해내지 못했을까. 그렇게 얻어맞아야만 영웅의 고뇌가 더 고통스러울까. 그러고 보면 1탄에서 사이코가 스프레이로 독성가스를 뿌릴 때 고스란히 들이마실 수밖에 없는 배트맨 코스튬의 한계도 같은 육신의 고통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브루스 웨인이 고행의 길을 통해 배운 싸움의 기술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동양적 무도와는 차이가 있고, 스승이 가지는 영원불멸의 존재감이나 다스 베이더식 포스는 배트맨의 정신세계에서는 논외의 이슈인 것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어둠과 고담 시티의 절망이 구체적으로 체화된 것은 앤 헤서웨이가 연기하는 셀리나 카일이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빠질 수 없는 매력적 캐릭터인데 이 영화에선 그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배트맨이 아끼는 목걸이를 훔치기 시작하더니 관객의 마음까지 훔치는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노블 그래픽 팬, 혹은 디시나 마블 코믹스의 열성팬들은 굳이 슈퍼맨과 스파이더맨 등 수많은 액션 히어로와 배트맨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쉽게도 동일선상의 고뇌이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히어로는 더 부조리한 것이다. 평범한 인간이 사는 동네에선 누구나 개인적 트라우마는 있고, 소년이 성인이 되면서 겪게 되는 성장의 굴곡도 유사하다. 브루스 웨인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인간의 한계인 셈이고 도시가 아무리 부패했다고 해도 정의로운 조역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피터 파커가 연애도 하랴 야경꾼 역할도 하랴 바쁜 것이나 배트맨이 고아원도 살피랴 악당과 격투기도 펼치랴 같은 인간적인 고민을 하는 셈이다. 다행인 것은 천하의 악당은 전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은 외계인 군단도 아니고 미국, 그리고 교량만 차단하면 되는 고담 시티 내에서만 펼쳐지는 제한적인 스타디움 워란 것이다.  (박재환, 201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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