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 소리 없는 아우성

2011. 1. 11. 16:58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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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의 강우석 감독은 <쉬리>의 강제규 감독과 함께 영화연출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의 판을 키운 명기획자, 명제작자이다. 그는 요즘과는 한국영화의 규모나 저널의 접근법이 달랐던 충무로 시절에 연출부로 입문하며 한국영화 감독의 길을 걸어왔다. <투캅스>, <실미도>같은 대단한 영화를 만들기 훨씬 이전에 그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같은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가 이런저런 영화를 만들더니 이번에 내놓은 작품은 뜻밖에도 <글러브>라는 스포츠 영화이다. 운동경기를 통해 팀원들 간의 협동정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게 된다는 구조이다. 강우석 감독의 이러한 필모그래피를 보노라면 대만의 이안 감독이 생각날 정도이다. 다양한 영화 장르에 대한 연출욕심 말이다. 그는 뛰어난 현장 장악력과 시장 개척력을 가진 한국영화계의 큰 보배임에는 틀림없다. 뜬금없이 나온 야구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작금의 한국의 야구열기에 비해서는 조금 때늦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추락하는 프로 선수, 성심에서 길을 보다

전도유망한 어린 야구선수 차명재가 봉황대기 야구시합 중 돌발사고로 경기장을 떠난다. 경기 중 갑자기 찾아온 돌발성 난청으로 청력을 잃고 자신의 꿈이었던 야구를 포기해야했다. 한편 프로야구 최고의 간판투수 김상남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술 먹고 행패부리다가 KBO의 징계위기에 내몰린다. 그의 오랜 야구동료이며 지금은 그의 매니저인 정철수는 김상남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뛴다. ‘뻔 한 쇼’이지만 유일한 무마책으로 잠시 시골마을 학교 코치로 내려가 있으란다. 끝없는 슬럼프에 몸부림치던 김상남은 어쩔 수 없이 그 학교를 찾아간다. 충주 성심학교이다. 청각장애인만 다니는 특수학교이다. 왕년의 명투수 김상남은 이곳에서 청각장애인 야구선수단을 만나게 된다. 딱 10 명인 선수.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그런 선수에게 모든 정성과 사랑을 다 쏟는 나주원 선생과 교감선생을 만나면서 선수 2막, 아니 인생 전환점을 맞게 된다. KBO의 징계절차가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기다리며 마지못해 시골 특수학교에 잠수한 야구선수는 그곳에서 들을 수 없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실력이 형편없는 10명의 야구선수 학생들과 한동안 부대끼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뻔한 스토리, 뻔한 캐릭터, 뻔한 감동드라마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커다란 줄기를 가지고 있다. 왕년의 잘 나가던 프로야구 선수가 지독한 슬럼프에 헤매다가 탈출구를 찾는다. 자신의 희망과 매니저의 애절한 기대와는 달리 그는 더 이상 그 왕년의 날리던 선수가 아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현실에 대해 조금씩 타협점을 찾게 될 것이다. 그 계기는 물론 10명의 성심야구단 선수들이다. 이 학교는 개교이래 단 한 번도 상대팀을 이겨본 적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투수는 단 한 명뿐이고, 선수들의 기량은 의욕과는 관계없이 밑바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영화에서 중계를 하는 해설위원을 통해 조금 알게 된다. 타자가 ‘깡~’하고 외야플라이를 날렸을 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들은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 감을 잡을 수 없고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만치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될 때 그제야 허겁지겁 달려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야구 글러브를 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안타를 칠 때 그 배트를 통해 전달되는 생의 환희를 듣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비웃거나, 불쌍해하거나, 동정할 때 말이다. 물론, 김상남 선수가 보기에는 그런 ‘동정과 환희’는 값싼 유희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들이 왜 그런 수고를 하는지, 왜 그런 패배를 거듭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영화는 스포츠영화의 정석을 따라간다. 선수들이 흘리는 땀과, 그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서로간의 트러블을 보여준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겐 모두 눈물 흘리고 박수 보낼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결국 마지막 승부에서 멋지게 이기거나, 아니 지더라도 멋진 명장면을 연출할 것이다. 그래서 패배의 눈물을 흘리더라도 충분히 경배 받은 경기를 보여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스포츠영화가 어디 있었으리오.

강석우 감독은 그런 뻔한 드라마를 천연덕스럽게 밀어붙인다. 프로야구선수는 까칠할대로 까칠하고, 불친절할대로 불친절하다. 그러나 관객은 그런 판에 박은 만남을 곧바로 안다. 나주원 선생과의 로맨스도 펼쳐질 것이고 아이들과도 의기투합할 것이란 사실을. 그러면서 선수는 LG트윈스의 삶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선수들의 진정한 목표가 1승이 아님을 가슴으로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장애인을 특별하게 보거나 유별나게 쳐다보는 영화가 결코 아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들의 특별한 사연은 나오지 않는다. 누구나 갖고 있을법한 가족이야기나 사회의 멸시 같은 것은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일반 야구선수와 똑같다. 아니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충주성심학교 야구선수들은 ‘야구라는 영역’에선 잘 못할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만큼 더 많이 뛰고, 더 많은 땀을 흘러 단 한번만이라도 이겨보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이 아름답고 인간적인 것이다. 그들이 단 한번이라도 이기게 되면 어떨까. 아마도 10명의 선수들은 10개의 서로 다른 꿈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2승을 올리기 위해 계속 뛰든지, 아니면 새로이 축구에 도전하든지. 어딘가에 당신을 온전히 던져버릴 수 있다는 그 열정이 아름다운 것 아닌가.

아마도, 프로야구 개 차 반 김상남 선수는 자신의 야구인생을 그렇게 결론지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한 때는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야구공만 던졌던 적이 있었지...”라고.

많이 알려진 만년패전팀 서울대 야구팀 이야기도 있잖은가. 그런데 기사를 찾아보니 이 팀은 2004년에 감격적인 1승을 올렸단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은 코피 흘리며 열심히 공부하고 틈틈이 야구연습한 뒤 일반대회에 나가 결코 1승도 못 올리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이야기만을 기억하려고 한다. 충주 성심학교의 1승을 기대하면서도 그 1승이 영원히 내일의 1승이기를 기원하는 이유이다. 그 열정이 삶의 열정이기에. 정재영과 모든 배우들이 열연한 <글러브>는 1월 20일 개봉한다. (박재환 2011.1.12)

충주성심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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