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시사회, 박찬옥+이선균+서우, 원더풀~

2009. 10. 22. 11:13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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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괴물같은 배우의 놀라운 영화

   파주는 경기도 서북단에 위치한 휴전선 접경지역 마을이다. 모르긴 해도 그런 지리적 특성상 군부대가 많을 것이고, 뒤늦게 이곳저곳에 불도저식 개발이 진척되면서 그 곳에 터를 잡고 사는 토착주민들에겐 특별한 저항심리가 자리 잡고 있을 듯하다. 적어도 ‘파주’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려는 박찬옥 감독이 생각하기에는 말이다. 마치 ‘밀양’을 바라보는 이창동 감독처럼. 박찬옥 감독 (박찬욱이 아니다!)은 ‘파주’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까지 쿨하게 ‘파주’이다. 어제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 <파주>의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상영 뒤에는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 뒷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주>는 어떤 영화이고, 감독이 말하려고 한 ‘파주’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운동권출신 형부와 맹랑한 처제, 그리고 안개낀 파주

   김중식(이선균)은 같은 운동권 선배와 금지된 사랑을 나누다 엄청난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 그리곤 어느새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 파주로 내려온 신세이다. 그곳에서 은수(심이영)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한다. 처제 은모(서우)는 돈을 벌겠다며 가출하고 그 사이에 언니는 끔찍한 사고로 죽는다. 돌아온 은모는 중식과 함께 살게 된다. 시간이 흘러 은모는 중식에 대해 묘한 감정을 갖게 되고, 그를 떠난다. 3년 만에 돌아온 파주에서 중식은 변함없이 은모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언니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 은모는 중식을 향한 마음을 억누르고자 더 진실을 찾는데 매달린다. 아파트 철거현장에서 벌어지는 살풍경한 현실,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 등은 형부 중식과 처제 은모를 한 방에 몰아넣는 장치가 된다.

  영화 스토리는 간단히 말하면 형부와 처제의 ‘비현실적’ 러브 스토리이다. 하지만 이 한 줄에는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와 대한민국의 어두운 사회상이 오롯이 숨어있다. 이선균이 연기하는 남자는 분명 운동권 출신이다. 하지만 그의 백그라운드가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신경질적으로 꺼버린 TV뉴스에서,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탈북자이야기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감독의 출신이 궁금해지는 영화, 파주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 진행되었다. 충무로영화에선 만나보기 힘든 드라마이기에 감독과 배우의 한마디 한마디가 특별해 보였다. 박찬옥 감독은 대학 졸업 후 뒤늦게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은 후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들어갔고 단편 영화를 몇 편 찍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2002년 <질투는 나의 힘>이란 드라마로 충무로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작품의 감독은 다음 작품을 찍기가 쉽지 않다. 작품성보다는 대중성을 중시하는 작금의 영화시장에선 말이다. 여하튼 박찬옥 감독은 후속 작품에 매달렸고 본의 아니게 오랫동안 이 시나리오를 숙성시킬 수 있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14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부문에서 상영되면서 ‘예상대로’ 호평을 받았다. 부산영화제에선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넷팩)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감독의 시적이고 감동적인 표현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에 접근한 감독의 용기를 지지한다”고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부산에서 이 영화를 본 외국평자들은 박찬옥 감독의 세심한 극 전개와 주연배우 서우의 놀라운 연기를 격찬했다.

   굳이 영화의 배경으로 파주를 택한 이유를 박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일산 산다. 일산 너머 파주가 있다. 나에겐 국경도시 같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떠나는 사람이 있고, 떠났다 다시 오는 사람이 있고... 그 속에 자기를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공간적 도시가 필요했는데 파주가 적합해 보였다.”

  그 파주에는 한때 운동권이었으며 트라우마를 안고 숨어들어온 김중식(이선균)이 있었다.  감독은 김중식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다. “그는 후일담 류의 인물이다. 아직도 (우리사회엔) 그런 사람의 영향아래 있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나 인물 자체를 끌어들이기는 싫었다. 전작도 그러하지만 난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도, 영화를 찍으면서도 내가 왜 이런 걸 썼지 하고 고민하다가 편집에서 빼버리기도 했다.” 그는 과거의 어떤 지점에서 벌어지는 사건에서 이젠 멀찍이 떨어져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모양이다. “괜한 엄숙주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이선균의 섬세함, 서우의 당돌함, 그리고 두 여배우의 힘

   <파주>에서 이선균은 (밝힐 순 없지만) 트라우마를 안고 안개낀 접경도시로 도피해온 반(半)지성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의 행동거지는 불편하고,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신중함과 섬세함은 그런 인물의 과거를 좀 더 깊숙이 이해하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극중에서 이선균은 두 번의 베드신을 보여준다. 운동권 선배이자, 첫사랑인 김보경과 한 차례, 그리고 아내인 심이영과 한 차례. 두 번 모두 이선균은 극한의 심리상태에 몰려있기에 그의 섹스씬은 보여주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작 촬영은 어땠을까. 이선균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첫 베드신이었는데 좋지 않은 몸 때문에 힘들었다. 에로틱한 면이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면에 주목해야하는 장면이었다. 신경 쓰였지만 감독님이 잘 디렉팅해 주었고 상대 배우도 호흡을 잘 맞춰주었다.” 그런데 여성감독 박찬옥 감독은 기자회견 내내 보여주었던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에서 한발 물러나서 “사실 내 입장에선 이선균 씨 눈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비록 밥 먹고, 차 마시는 것 같은 일상의 모습이지만 내밀한 일일 테니 힘들 수밖에...”  박찬옥 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을 했었다니 <오! 수정>이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박 감독은 ”중식 역은 청년스러운면서 장년스러운 매력이 있는 배우가 필요했고, 시나리오에서 중식이 겪는 일들이 강력하고 특별하기 때문에 연기하기에 따라 너무 뜨거운 연기를 보일 수도 있었는데 그건 원하지 않았다”며 “이선균이 중간을 맞춰서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전했다.

   아마도 <파주>를 통해 가장 주목받을 배우는 처제 역을 맡은 ‘서우’일 것이다. 이미 작년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를 통해 놀라운 영화데뷔를 치른 서우는 이번 영화에서도 완벽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부모 없는 집안에서 언니를 깜찍하게 위하는 반항기 있는 소녀에서 (세월의 힘인지) 갑자기 형부를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서우의 연기는 보는 내내 관객들을 긴장시킨다.  박 감독은 “서우가 맡은 은수는 중학생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이미지로 보이는 배우로 한정됐다. 이전에 보여준 매력과 달리 서우의 내면에 담긴 강인함과 고집스러움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캐스팅 배경을 설명했다.

  이 영화에는 이경영이 파주지역 나이트클럽 오너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대사가 없다. 하지만 파주의 을씨년스런 풍경을 돋보이게 하는 지역분권주의적 조폭보스의 포스를 충분히 발휘한다. 박찬옥 감독은  "나이트클럽 사장 역은 사람들 마음속의 양심 또는 악마와 같은 존재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브의 뱀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이경영 선배가 해주길 바랐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작은 영화가 살아남는 법

   작년도 한국영화 편당 평균제작비는 30억 원이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 낮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많다. 그 중에는 <워낭소리>도 있고 말이다. 1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한국적 블록버스터 영화도 있고, 10억 원도 채 안 되는 ‘작은 영화’도 나란히 만들어지고 극장에서 개봉되는 것이다.  <질투는 나의 힘>(<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다)의 박찬옥 감독(박찬욱이 아니다)이 7년 만에 선보이는 <파주>도 그런 작은 영화에 속한다. 제작비가 10억 원 안팎으로 알져졌다.

    ‘파주’는 오는 10월 2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작 영화 속에 드라마로 무장된 작은 영화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지 기대된다.

  영화가 무겁다고? 관객은 두 번 웃음을 터뜨린다. 은모가 한 번도 중식을 형부라 부르지 않자 물어본다. “왜 넌 형부라고 부르질 않니?” 그러자 속마음을 들킨 듯 놀란 은모가 소리친다. “그건 아줌마가 신경 쓸 일 아니잖아요.”라고. 아, 그때서야 소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박찬옥 감독의 시나리오의 섬세함이란~. 또 한 번은 중식이 유치장에 갇힐 때 운동권 선배(첫사랑)가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형, 아직도 조광희 변호사 바빠?” 아마 영화판 사람들은 웃을 것이다. 그리고 문득 그 당시부터 여자가 남자선배를 부를 땐 “형”이라고 했던 것이 새삼 떠올라진다.  (글= 박재환 200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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