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낭만전사들

2009. 6. 14. 18:04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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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4/5/24]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 서점가에 그리스신화 열풍이 불었다. 걸출한 작가 이윤기씨의 힘이 컸을 터이지만 나 또한 한때는 이름조차 외기 힘든 이쪽 계통에 괜스레 관심을 기울였던 적이 있다. 요즘 꼬맹이들이 공룡이름을 줄줄이 외는 것처럼 올림포스 산의 신들의 이름이 꽤나 매력적인 주술 암호 같아 보였던 모양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시작된 신화 찾기는 당연히 트로이를 발굴했다는 '하인리히 슐리만'의 자서전까지 이어졌고, 헤르도투스의 [역사],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오딧세이]에까지 당도했을 것이다. 세익스피어 없이 영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듯이 호메로스의 작품 없이 서구문학, 나아가 서구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경구도 있긴 하다.

  [퍼펙트 스톰]에서 거대한 바다 폭풍을 커다란 스크린에 창조해 내었던 볼프강 페터젠 감독 - 생각해보니 이 사람은 [특전 U보트]의 감독이 아니었던가! 그가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넘어가는 한 시기의 유럽에서 일어났던 넌센스 중의 넌센스인 트로이 공방전을 영화에 담았다. 현재 고고학적으로, 혹은 문헌학적으로 검증해낸 것은 그 시절 그 곳에서 벌어진 전쟁의 명확한 실상을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는 없다. 애당초 인물과 사건, 역사와 진실이 3,20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전해지기에는 물리학적인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2004년 8월 올림픽이 열리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에게 해(海) 건너 저쪽, 오늘의 터키 지방에 위치한 트로이가 이 영화의 배경이다.(위키피디아:Troy) 옛날 트로이의 수도는 일리오스, 혹은 일리움으로 불렸다. 일리오스의 이야기라는 뜻의 [일리야드]를 지은 사람이 호메로스라고 하지 않은가. 이 영화 마지막 엔드 크레딧에는 이 영화가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나온다. (inspired by Illiad) 우선, 영화를 잠깐 소개한다.

  3200년 전, 모든 도시 국가들을 통합해 그리스 제국을 건설하려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은 반강제적으로 테살리와 동맹을 맺으며 야욕을 떨친다. 한편 아가멤논의 동생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브랜단 글리슨)는 전쟁에 지쳐 신흥 강국 트로이와 평화 협정을 맺는다. 그러나 협정을 맺기 위해 스파르타에 머물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랜도 블룸)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다이앤 크루거)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아내를 빼앗긴 데 분노한 메넬라우스, 형에게 달려가 트로이를 치자고 제안하고 호시탐탐 트로이를 노리던 아가멤논은 아킬레스(브래드 피트), 오디세우스(숀 빈) 등 5만의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떠난다. 트로이의 거대한 성곽 앞에 진을 친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군의 건곤일척의 대결이 펼쳐진다.

  물론 역사적으로 정확히 어느 시대에 어느 지점에서 어떠한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 단지 수천 년 동안 텍스트로 전해지는 [일리야드]에 많은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설 [일리야드]와 영화 [트로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영화적 용인, 창작의 공간이겠지만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제우스 神만이 알 수 있는 노릇이다.

- 아킬레스(브래드 피트)와 파트로클루스(가렛 헤드룬드)

극중에서 둘은 사촌간으로 나온다. 아킬레스는 파트로클루스를 무척이나 아낀다. 아킬레스는 전쟁터에 한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 사촌동생 파트로클루스그에게 검술과 싸움법을 가르친다. 트로이군과의 대치국면이 계속되자 파트로클루스는 아킬레스의 갑옷을 걸치고 싸움에 나갔다가 헥토르의 칼에 죽는다. 아킬레스는 이 일에 분노하여 헥토르를 죽이고 비참하게도 그의 시체를 끌고 다닌다. 원작(일리야드)에는 둘 사이가 사촌이 아니라 친구로 나온다. 그리고 파트로클루스가 전투에 나갈 때 아킬레스가 갑옷까지 챙겨준다. 두 사람의 남성적 전우애를 이후에 동성애적 코드로 보는 사람이 생길 정도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그런 그림자를 찾기는 어렵다.

- 브리세이스의 정체

 트로이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미친 듯이 신전을 휩쓸고 광기의 용맹을 보인 아킬레스는 신전에 앉아 있던 사제 브리세이스를 전리품으로 데려온다. 영화에서는 브리세이스가 헥토르와 파리스의 사촌 여동생이자 사제로 나온다. 하지만 [일리야드]에서는 노예신분이다. [일리야드] 1장은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빼앗긴 아킬레스의 분노를 다루고 있다.

- 천하제일녀 헬렌의 남편 메넬라우스의 운명

   메넬라우스는 최고의 미녀 헬렌의 남편이다. 하지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훔쳐간다. 이 때문에 이 어의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영화에서 파리스는 자신 때문에 생긴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메넬라우스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약골 파리스와 거한 메넬라우스의 싸움은 비교조차 안될 지경. 다리에 칼을 맞은 파리스는 도망친다. 메넬라우스가 마지막 칼집을 꽂으러할 때 지켜보던 헥토르가 메넬라우스를 죽이고 만다! [일리야드]에서는 메넬라우스는 헬렌을 죽이겠다고 맹세하지만 트로이를 함락한 후 그녀와 재회하게되자 그 '미모'에 자신의 맹세를 깨고 스파르타로 데리고 돌아가다. 여자는 예뻐야 한다!!!!

- 아가멤논의 최후

  용사 아킬레스는 불타는 신전에서 브리세이스를 죽이려는 아가멤논을 단칼에 처단한다. 하지만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아가멤논]이 전하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최후는 조금 다르다. 트로이로 원정을 떠날 때 순풍을 얻기 위해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아르테메스에게 제물로 바친다. 아가멤논의 아내이자 이피게네이아의 어머니인 클리타임네스트는 남편에게 증오심을 품고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미케네에 와서 그녀의 애인이 된 아이기스토스와 공모해 귀국한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후속이야기...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가 그들을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 오디푸스 컴플렉스의 상대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어원은 여기서 나온다!)

- 프리아모스의 두 아들, 헥토르와 파리스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두 아들 헥토르는 용감하고 명예를 중시하지만, 동생 파리스는 여자 때문에 대세를 거르치는 약골, 혹은 로맨티스트로 묘사된다. 그런데 프리아모스에겐 아들이 무려 50명이나 있었다. 파리스가 훔쳐온 헬레나를 돌려보내자는 헥토르의 의견에 반대하는 왕자가 48명이나 된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헬레나의 미모에 반해버린 것이다.

- 하나 더 유용한 정보

  헥토르가 파트로클루슬르 죽이는 바람에 아킬레스가 복수심에 거의 미쳐 헥토를 쫓아온다. [일리야드] 22권에 이때 광경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무섭게 달려오는 아킬레스를 보고 공포를 느낀 헥토르가 도망치자 아킬레스가 그 뒤를 쫓기 시작한다.........두 사람은 감시소를 지나고, 바람에 흔들리는 야생 무화과나무를 성벽에서 조금 떨어진 마차길을 따라 계속 달려, 이윽고 맑은 물이 솟아나는 2개의 샘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소용돌이치는 스카만드로스의 수원을 이루는 두 개의 샘이 있었다. 그 중 한 샘의 물은 따뜻해 마치 타오르는 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이 김이 솟아오르고, 또 하나의 샘에서는 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솟아났다................ [일리야드]를 거의 통째로 욀 정도로 고대문명에 빠져있던 슐레히만이 1871년, 막연하게 전설로 내려오던 트로이를 발굴하기 위해 [일리야드]에서 묘사된 이 지역일 것이라고 추정되는 곳을 이렇게 찾아내었던 것이다. 그는 온천을 찾아 헤매고 직감적으로 땅을 파 들어간 것이다.

- 호메로스에 관하여

  중국의 역사서 [사기]를 지은 사마천에 대한 정확한 생몰연대를 알 수 없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어르신네의 생몰연대 또한 정확히 알 수 없다. 주민등록제도 없는 그 시절의 인물에 대해서는 그저 내려오는 서류나 문서를 통해 막연하게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아마도' 3,200년 전 터키의 벌판에서 싸웠던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의 왕들이나 장군, 미녀의 이름을 오늘날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비교적 구체적으로 이렇게 전해오는 것은 물론 호메로스의 저작 때문이다. 물론 호메로스도 실제인물인지,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 아니면 집단창작의 산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가 언제 살았는지도 논란거리이다. 마치 트로이 공방전을 두 눈으로 생생히 지켜본 것처럼 정확하게 묘사한 것은 그의 생몰연대를 추정하는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실제 트로이 공방전이 언제 일어났는지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의 고고학적 발견은 뚜렷한 답을 주지 않는다. 트로이의 고고학적 발굴과 과학적 분석에 따르면 트로이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왕조가 들어섰다가 사라졌고, 그 틈에 지진도 발생했었다. 지층의 어느 층위의 유적이 그 시절인지 판단을 흐려놓기 때문이다. 궁금하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날아가 보는 수 밖엔 없다.

  물론, 1억 8천 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제작비가 들어간 [트로이]는 미국에서 그에 걸맞은 대박을 터뜨리진 못했다. 이젠 아무리 거창하고 잘 만든 블록버스터라도 손익대비는 해봐야할 듯하다. 물론 이 영화는 아주 재밌다. 고고학이나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호기심을 갖고 몰입할 수 있을 잔재미가 있다. '호메로스'나 '트로이 공방전'에 대해서 몰라도 상관없다. 브래드 피트와 에릭 바나, 올란도 블롬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아도 좋다. 남성매력을 물씬 풍기는 것에 비하여 세상을 전쟁에 몰아넣은 헬레나 역의 배우가 그다지 매력적이 않다는 것이 내겐 엄청난 흠이다. 차라리 [글래디에이터]의 코니 닐슨이 더 고혹적이지 않았나 하고. 찾아보니. 그녀 역시 아니었다. 아마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한창 때가 헬레나 역에는 적격이었으리라. 아니면 기네스 팰트로우가 맡았다면 이야기가 좀더 복잡해졌겠지.... (박재환 2004/5/24)

Images of the Trojan War 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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