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마인드] 미친 천재

2008. 2. 17. 13:42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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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y 박재환 2002/10/4]
일반적인 천재의 특성은 괴짜스러운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두 천재도 그러했다. 수학교수는 칠판에 복잡한 공식(원래 의미없지만 칠판에 가득 써놓으면 좀 복잡해 보이는 그런 공식말이다...)을 풀어놓으면서 혼자 끙끙대더니.... 마침내 밑줄 쭉쭉 치며 감탄해서는.. "아, 얼마나 아름답습니까?"라는 것이었다. 물론, 수학교수 중에서만 천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학의 천재'는 별로 내세울 것이 못되고 일반 사회과학 교수들 가운데서도 천재적 광기를 번득일 때가 있다. 그런 천재를 영화에서 가끔 보게 된다.
  당신의 아이큐는 얼마인가? 초등학교-중학교때 학교에서 I.Q.테스트를 받았다. 물론, 난 천재는 아니고. --; 천재를 가려내는 그 '문제'라는 것이 어떤 규칙성, 통일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냐는 것을 판가름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전혀 일관성이 없어보이는 숫자들의 나열에서 건너뛰기를 한다거나 일정한 가감승제를 한 후에 다음 칸에 들어갈 정답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그 게 한줄짜리일 수도 있고, 한 페이지 짜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책 한권을 분해해 놓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도형에서는 어떤 결합구조의 특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릴때 속독술 학원엘 다녔다. '책을 빨리 읽어내는' 방법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사람의 시야에 들어오는 글자 수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책 읽는 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고 한 눈에 들어오는 글자 수가 많아진다. 예를 들어 어린애가 글자를 한 자 한 자씩 또박또박 읽다가, 어느순간 단어 하나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열 자가 되고, 스무 자가 되고, 한 줄이 되고, 두 줄이 되고, 한 문단이 되고, 한 페이지가 통채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재주는 가벼운 소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니체의 철학 책을 페이지 단위로 받아 들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자가 빽빽히 적힌 법률서적도 마찬가지이리라. 아마, 정성일씨의 영화리뷰도 똑같을 것이다.

  <뷰티풀 마인드>를 보고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바로 주인공 '존 내쉬'가 그러한 신기한 재주를 가진 천재라는 것이다. 그는 한 눈에 사물의 전체를 바로 빨아당기듯 끌어들이는 능력을 가졌다. 그는 일련의 숫자에서 통일된 규칙을 순식간에 찾아내고, 아무 의미없을 듯한 잡지와 신문의 기사 단어 사이의 철자를 재조합하여 필요한 문장을 재편집해내는 특이한 재주를 가진 것이다. <레인맨>에서 자폐증환자 더스틴 호프먼이 한 순간에 땅에 쏟아진 포크 갯수를 파악하는 것 또한 이와 유사한 통일성에 근거할 것이다.

  1950년대초, 미국에 매카시 선풍이 일었을때 최고의 지성이 다니던 미국의 캠퍼스에 한 천재가 들어온다. 존 내쉬가 천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판에 박힌 광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족하다. 프린스턴 대학 수학과 학생인 내쉬는 종일 유리창에다가 무언가를 그린다. "이건 우리학교 풋볼팀 선수가 뛰어다니는 궤적이고... 이건 교정의 비둘기들이 모이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고, 이건 소매치기가 달아나는 방향이야.." 뭔가 공통점이 있을까? 천재는 일반인이 놓치기 쉬운 일상의 움직임, 현상 속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존 내쉬는 여태 있어왔던 모든 공식에서 벗어난 어떤 행위의 공식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이유나 그 성취의욕을 일반인은 모를 수 밖에.그는 수업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러한 규칙을 찾아내는데 정신을 쏟아붓는다.

  이런 그만의 호기심과 지적 능력은 때로는 효율적이다. 친구들이랑 술집에 갔다. 아름다운 여학생 하나가 못난이 친구들과 함께 나타났다. 남학생이 이 아름다운 한 명의 여학생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여 성공할 가능성은? 평범한 학생이라면 경우의 수나, 경험의 법칙에 따라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용감한 댓쉬를 할 것이다. 그러나, 존 내쉬는 순간 놀라운 법칙 하나를 생가해 낸다. '게임의 법칙' - 내가 이런 훌륭한 이론을 설명할 것이라고 믿지 말라. 내가 어찌 노벨경제학상 수상 이론을 이해할 수 있으리오- 핵심은 다수의 게임 상대자가 나타날수록 최종 결과물을 얻기에는 3,942,356,097,769,836,571,260,943,864,385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진 속의 공식이 바로 그 공식이다 --;

  존 내쉬는 이 '게임의 규칙'으로 미국의 비밀국가기관의 암호해독요원으로 발탁된다. 그는 소련의 무선통신망에서 잡아낸 무늬에서 어떤 비밀 코드를 해독해내는 임무를 맡게 된다. 무의미해 보이는 수의 배열, 조합에서 어떤 공식을 찾아내는 것이 그의 임무. 요즘같은 슈퍼 컴퓨터시절에는 그러한 조합을 자동연산처리로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지만 당시에는 천재의 직관에 의한 조합으로 해답을 찾아낼 수 밖에 없다. (미국에 이런 요원들이 있을까 싶지만 지난주 KBS-2TV <차인표의 블랙박스>를 보니 미국에선 초능력자들로만 모인 특수부대도 있더라...) 어쨌든, 숫자와 철자 속에 빠져살던 존 내쉬에게 불행이 찾아온다. 어느날, 그냥 '~삥' 돌아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이 국가의 안위를 다루는 어떤 중요한 임무를 하고 있고, 미국과 소련의 비밀기관으로부터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암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느낀 것이다. 지독한 피해망상증. 자신이 정신병원에 갇힌 것도 국가의 음모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영화 초반부 러셀 크로우의 너무난 '불안정한' 천재 존 내쉬의 연기 때문에 다소 재미없는 감이 있다. 하지만 정신병원에 갇히면서 상황은 돌변한다. 여태 보아왔던 상황들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아니면 이 영화가 <X파일>의 멀더 이야기인지 관객마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존 내쉬는 정신병원에서 나온 이후에도 끝없이 환각과 싸워야한다. 사람들은 이 미치광이 천재를 어떻게 대해야하는가. 존 내쉬는 자신의 정신병을 극복하기 위해 약물에 빠져든다.이 영화를 드라마틱하게 하는 것은 인간적인 고뇌가 끼어들기 때문이다. 약물 과용으로 그는 어쩌면 성불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내(제니퍼 코넬리)의 고뇌, 두려움, 갈등... 하지만,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30년간의 정신병력을 이겨내고 - 존 내쉬는 마침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실제로!!!

  존 내쉬의 경제이론은 요즘와서 경제 분야에서 복잡한 외교문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쓰인다고 한다. 오늘날 협상이론의 공과를 설명할 때 주로 미국의 이동통신 주파수 영역을 예로 든다.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쓰였다. 할당된 주파수(예를 들어 '몇 메가 헤르쯔' 공간)를 경매에 붙이는 것이다. 그러면 SK나 KT나 LGT가 달라붙어 값을 올린다. 이들이 담합을 하여 '0원'을 써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통신부는 존 내쉬의 협상이론을 적용한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인구가 몇 명, SKT의 자본금이 얼마, KT의 직원 수가 얼마, LGT의 재무상황이 어느 정도' 그것을 위에 나와 있는 비둘기 모이공식(--;)에 대입시킨다. 그럼, 이 기업들은 자신들의 사활을 위해 기꺼이 고액을 국가에 갖다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나타난다. 만약, 수치가 안 나오면? 그럼, 일본 NTT나 미국 통신회사를 끌어들이면 된다.

  김정일은 아마 내쉬의 협상이론을 열심히 공부한 모양이다. 그는 '상수'를 '금강산'과 '서해안 꽃게잡이'로 놓고, 변수로 'DJ의 임기'와 '현대의 집안사정'을 상정했다. 역시 내쉬의 공식에 대응하면...... '남한 정권은 끝없이 돈을 퍼 줄 것이다. 만약, 이회창 변수가 나타나면? 그때는 중국의 양빈을 대입하면 된다. 그럼, 답이 나온다. 와. 꼭 진짜 같다!!

  어쨌든 존 내쉬의 이야기는 정말 드라마틱하다. 이 영화는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 실비아 네이사(Sylvia Nasar)의 (1947~ )의 원작 전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신문사 경제부기자라고 우습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뉴욕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4년 동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바실리 레온티에프의 경제분석 연구소에서 활동했단다. 그런 내공으로 존 내쉬의 감동의 인생을 풀어낸 것이다. 그런데 그 전기와 영화를 비교했을 때, 각색-윤색을 넘어 창작, 조작의 내용도 있다고 한다. 제니퍼 코넬리가 연기하는 아내와의 연애담이 판타스틱하지도 않았고, 정신병동에 끌려가고 돌아오고 병마에 시달릴 때에 아내가 끝까지 옆에 있어줬다는 것도 헐리우드 해피엔딩용 조작극이라는 것이다. 웬만하면 책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너무 두껍다. 존 내쉬의 독서법으로 페이지채로 읽는다면 이런 문구가 뜰 것이다.

  b. e. a. u. i. f. u. l. m. i. n. d.

 무슨 말? 오래된 개그인데.. 'T없이 아름다운' 마음이란다.

  재미있는 영화이다. 한번 보시길. 이 영화는 올 봄 열린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탔다. 러셀 크로가 주연상 못 탄 것이 조금 아깝다. 정말 소름끼치는 연기였다!
 

 


Beautiful Mind
 감독: 론 하워드
 출연: 러셀 크로, 제니퍼 코넬리, 에드 해리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한국개봉: 2002/2/22 
2002년 오스카 4개부문수상 작품,감독,여우조연,각색
Biography of John Forbes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A_Beautiful_Mind_(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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