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01.4) 이번 (2001년)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상영되는 영화 중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북경 자전거>이다. 이 영화는 중국 6세대 대표주자 왕샤오슈아이 감독의 최신작으로 지난 2월의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인 은곰상을 수상하여 더욱 관심을 끈 작품이다.
실제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영화 담당 프로그래머인 김지석 교수는 이 영화를 전주에 뺏긴 것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했다. 전주영화제 상영을 위해 왕 감독과 두 주연배우, 그리고 제작자인 페기 차오까지 전주를 방문하였다.
◇ 삶의 터전 자전거, 삶의 장식 자전거
영화는 한 무리의 중국 젊은이들이 면접을 보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들의 시골에서 갓 상경한 두려움과 촌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새로운 일거리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 회사는 퀵 서비스 업체이다. 회사가 지급하는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급한 서류를 배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오토바이 퀵서비스와 다른 점이라면 중국에서는 고급에 속하는 산악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것. 또한 이들은 자전거를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익의 일정부분을 회사에 납입해야 한다. '구에이'는 자신의 자전거를 갖기 위해, 그리고 베이징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하기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하지만, 약속한 돈을 다 모을 즈음 그만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다. 자전거가 없으면 배달일도 할 수 없고, 돈이 없으면 베이징에서의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는 거의 미친 듯이 도난당한 자전거를 찾아 헤맨다. 그가 찾은 자전거는 이미 고등학생 '지엔'의 소유이다. 그는 그 자전거를 벼룩시장에서 산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물임에도 자신의 돈을 500위앤이나 주었고, 손잡이도 새로 갈았다며 자전거의 인도를 거부한다. '구에이'는 자전거 없이는 생을 유지할 수 없는 절박함에 자전거를 부둥켜안고서는 꼼짝을 않는다. 결국, 타협책은 자전거를 하루씩 교대로 이용하자는 것. 각기 다른 목적으로 자전거가 필요했던 중국 북경의 17세 소년들의 남루한 삶이 계속된다.
◇ 자전거의 상징
물론, 거대도시 베이징에는 '벤츠'가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천안문 광장 앞 도로에서 출퇴근 시간이면 황하같이 몰려가는 자전거 대부대를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자전거가 생활필수품이며 삶의 한 방식인 것이다. 여기에 그러한 자전거를 갖고자 하는 두 젊은이가 있다. 하나는 시골에서 갓 올라와서 자전거만이 삶의 수단인 '구에이'이고, 또 한 명은 같은 또래 친구가 모두 갖고 있는 자전거이기에 자신도 가져야한다는 이유뿐인 '지엔'이다. 그들은 어떻게하여 하나의 자전거로 인해 통성명하게 된다. 물론, 자전거의 이러한 상징은 다분히 영화를 위해 만든 작위적인 소재일 수 있다.
이란의 마지드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에서는 너무나 가난한 집의 남매가 오전반, 오후반으로 운동화 한 켤레를 공유하는 경우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서는 마치 그러한 경우처럼 당사자에게는 급박한 이유 때문에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자전거를 두고 펼쳐지는 현대중국 도시사회의 어두운 구석일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 왕샤오슈아이는 북경전영학원을 졸업하고 <나날들>을 만들면서 해외영화제에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로서는 이 영화 때문에 중국에서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야했다. 두 번 째 작품 <극도한랭>과 세 번 째 작품 <머나먼 낙원>도 모두 해외영화제에서만 각광받는 작품이다. 네 번 째 작품인 <북경자전거>는 대만의 제작지원으로 제작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직도 중국당국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감독 자신은 "아마도, 영화에서 보여주는 북경시내가 너무 지저분해서 그런 모양이다."고 원인을 유추했다. 왕 감독의 전영학원 교수이기도한 시에페이 감독 또한 이 영화가 왜 심의를 통과하지 않는지 그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는다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폐쇄적 중국의 영화정책 당국의 단세포적 판단기준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무작정 도시로 상경하는 농촌 인민의 모습에 일단 거부반응을 보일만하며, 북경의 치안이 형편없음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가졌을 것이다. 어쨌든 10억 대부분의 중국인이 못 본 영화를 한국의 열성 영화팬이 먼저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 영화의 각본은 왕샤오슈아이와 탕따니엔이 같이 쓴 것이다. 탕 감독의 <도시의 낙원>도 이번 영화제에서 함께 상영되었는데, 도시로 무작정 상경하는 젊은이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한 것은 그 영화가 더 리얼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유려한 촬영과 어린 배우들의 신선한 연기 때문에 호감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른바 '호동'이란 불리우는 북경의 좁은 골목길에서 펼치는 자전거 체이스는 색다른 맛이 잇다. 베이징의 청소년들도 우리처럼 또래문화가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왠지 친근하게 다가온다.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나온 질문인데, 이 영화에서 '구에이'가 호텔사우나에서 '장 선생'을 찾는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장선생? 장이모 감독 말이야?" 이런 대사를 굳이 집어 넣은 것은 장이모 감독의 97년도 작품 <유화호호설(有話好好說)>에서 장 감독이 극중 출연배우의 이름을 '샤오슈아이'라고 붙였던 것에 대한 화답이었다고 감독은 설명해 주었다. 중국의 대표적 5세대 6세대 감독의 즐거운 영화만들기인 셈이다.
참고로 얼마 전에 극장에서 개봉되었던 로우예 감독의 <수쥬>에서 인어아가씨 역으로 나왔던 쩌우쒼(주신)이라는 중국의 인기 여배우가 이 영화에서는 거의 대사가 없는 단역으로 출연한다. 하지만, 매력적이다.
十七歲的單車 (2001) Beijing Bicycle 감독: 왕샤오슈아이 주연: 崔林,李滨,高圆圆,周迅 극본: 페기차오(焦雄屏), 서소명(徐小明),당대년(唐大年),왕샤오슈아이(王小帅) 한국개봉: 2001/11/17 2회 JIFF상영작 (2001년) 2001년 베를린 은곰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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