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엘리자벳] 김준수의 ‘죽음’과 신영숙의 ‘삶’

2019. 8. 10. 07:32공연&전시★리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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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8.12.24) 일간지 문화담당이었던 최민우 기자가 자신의 취재경력을 바탕으로 2014년 <뮤지컬 사회학 - 뮤지컬을 보는 새로운 시선>이란 책을 썼다. ‘주례사 비평만이 겨우 지면에 등장하는’ 뮤지컬‘공연평’ 현실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책의 마지막 장은 ‘김준수는 왜 조승우보다 많이 받을까’라는 도전적인 제목으로 ‘팬덤의 경제학’을 논한다. 김준수 등장 전까지 최고의 대우(개런티)를 받던 조승우를 가볍게 따돌리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개런티를 받는 김준수와 그의 출연작품의 상관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최 기자는 납득가능한 풍경이라면서, 아쉬운 것은 김준수가 서는 무대는 언제나 순식간에 매진되면서, 나머지 뮤지컬 팬이 접근할 기회가 줄어든다고 에둘러 평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EMK뮤지컬이 유럽의 ‘VBW’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무대에 올리는 이른바 북유럽뮤지컬 작품의 하나이다. ‘모차르트’, ‘레베카’, ‘몬테크리스토’, ‘라스트키스’ 등이 차례로 소개되며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또 다른 매력을 전해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엘리자벳’은 지난 2012년 초연되었고 꾸준히 무대에 다시 오르고 있다. 김준수는 초연무대에서 ‘죽음’(데어 토드) 역을 연기한 이래 뮤지컬의 신화, 매진의 전설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즌 또한 마찬가지이다. 

‘엘리자벳’은 영국 여왕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황후였던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의 파란만장했던, 드라마틱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6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와 혼례를 올린다. 결혼 후 엘리자벳의 황실 생활은 우아하고 고상하지만은 않았다. 대제국 황제와의 어정쩡한 관계, 시어머니(대공비 소피)와의 갈등,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자살 등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끼었다. 실제 역사를 보면 ‘엘리자벳’은 무정부주의자였던 루이지 루케나가 휘두른 칼에 찔러 죽는다. 

이 이야기를 마이클 쿤제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가 뮤지컬로 만든 것이다. 뮤지컬은 아나키스트 살인자 루케나를 내레이터로 활용한다. 무대 곳곳에서 불쑥불쑥 등장하며 엘리자벳을 죽인 것을 정당화한다. “제국주의에 철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엘리자벳이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었다.”고 소리 지른다. 그 한 편에는 엘리자벳의 귀에 유혹하듯 죽음을 속삭이는 ‘토드’(죽음)가 존재한다. 엘리자벳이 어린 시절 나무에서 놀다 떨어져 죽음의 문턱에 섰을 때 처음 본 이래 그녀에게 반해 버린 존재이다. ‘토드’는 죽음의 신이면서도, 엘리자벳을 죽음으로 선뜻 이끌지 못하고 바라보며, 지켜보며, 끝없이 죽음을 종용한다. 황제와의 결혼의 파탄도, 제국의 흥망성쇠도 관심 없이 말이다. 

작품은 엘리자벳-토드-루케니를 축으로 죽음을 희롱하는 장엄한 뮤지컬이다. 20일 공연만 보자면 김준수는 공백(군)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김준수 특유의 음색으로 무대를 사로잡는다. 이날 신영숙 엘리자벳과 함께 부르는 ‘마지막 춤’은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절망적으로’ 관객을 죽음으로 이끈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물론 엘리자벳이 “나는 나만의 것”을 부른다고 ’제국주의 시대 황후의 자아발견’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품은 아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인간과 신이 전해주는 저주받은 기다림을 전해준다. 토드는 사랑을 주고, 분노를 삭이며, 모든 것을 저주하며 인간의 시간을 기다린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오는 2019년 2월 10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된다. 이번 시즌에는 옥주현, 김소현, 신영숙이 엘리자벳을, 김준수, 박형식, 정택운(빅스 레오)이 ‘죽음’을, 이지훈, 강홍석, 박강현이 루케니를 연기한다. (박재환)


[사진=EMK뮤지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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