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홍상수,2016)

2017. 8. 20. 22:17한국영화리뷰

반응형

[리뷰]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술을 마시든 바람을 피우든, 저 아세요?”

 

 

 

 

[박재환 2016-11-16] 홍상수 감독의 18번째 작품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이 지난 주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지난 9월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되었다. 그런데, 한국개봉에 앞서 열린 국내 언론시사회에선 감독이 참석하지도 않았고, 따로 기자간담회도 갖지도 않았다. 영화란 것은 그냥 보면 되지 굳이 감독이 나서서 구구한 해석을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셈이다.

 

영화는 김주혁-이유영 커플의 ‘술’에 얽힌 이야기이다. 서울 연남동에 사는 화가 영수(김주혁)는 아픈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 많은 와중에 동네 형(김의성)이 찾아와 말을 나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너 요즘도 민정이(이유영) 만나니? 걔 말야. 누가 그러던데 어제 술집에서 술 엄청 마시고, 웬 남자랑 심하게 싸웠다더라.” 그런다. “물론, 직접 보진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 다 알아.”

 

결혼까지 염두에 둔 여친의 술에 얽힌 불미스러운 이야기를 들은 영수는 화가 날 수밖에. 그날 밤, 자신을 찾아온 유영에게 “우리, 술 딱 다섯 잔만 마시기로 했잖니. 왜 그 약속도 못 지키니.”라고 다그치고, 유영은 “내가 언제 술 마셨다고 그래. 오빠는 다른 사람들 말만 믿고 그래? 우리 헤어져. 생각할 시간 좀 가져야겠어.”하고 집을 나간다.

 

관객은 “민정이 술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와 “제3자의 이야기를 얼마나 신뢰할 것인지” 같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매달리거나, 사실여부를 떠나 “그 사람을 받아들일 것인지”하는 판단의 문제를 안고 영화를 계속 보게 된다.

 

그날 이후 연남동 술집에는 ‘민정이, 혹은 민정이를 쏙 빼닮은 여자’가 등장한다. 첫 타자는 권해효. 권해효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읽고 있는 민정에게 “너 왜 술을 마셔서 사단을 일으키니”라고 훈수 들려다가 뜻밖의 소리를 듣는다. “저 아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하, 저 사실 민정이 아니고 쌍둥이 동생이에요.”란다.

 

한편, 영수는 자신의 잘못인지, 민정의 잘못인지 헷갈려하면서 애타게 그녀를 찾아 나선다. 민정, 혹은 민정을 닮은 여자가 또 등장한다. 이번엔 유준상이다. 중년남자가 다들 그러하듯이 ‘민정을 닮은 여자’에게 수작을 건다.

 

연남동의 술집, 호프, 커피숍, 그리고 막걸리집을 오가며 몇 안 되는 등장인물은 ‘민정’에 대해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술 취한 ‘민정, 혹은 민정을 닮은 여자’와 영수가 다시 만나,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영수는 이미 그녀가 민정이 아니어도 된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이해한다고” 무릎 꿇는다.

 

관객은 민정인지 아닌지, 감독이 정상인지 아닌지 의혹을 품기 시작한다. 홍상수 스타일이라면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알코올중독자와 기억상실자, 자아분열의 캐릭터가 동시에 등장하는 영화인 셈이다. 젠 체하는 지식인과 술 취한 평범한 인간이 함께 나타나서 속이는 게임을 펼치는 것이다. 가장 정확한 해석은 맹랑한 여자 민정에게 중년의 남자들이 놀아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절묘하게 활용한다. 술이 취했든, 안 취했든, 중요한 것은 우리 두 사람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이 영화는 ‘연남동의 커뮤니티’를 다룬다. 몇 안 되는 동네 지인들의 이야기가 비록 과장되거나, 통속적일지라도 악의적이진 않을 것이다. 한국사람 특유의 걱정과 염려의 오지랖일 것이다. 감독은 그런 순수한 동네 지인의 걱정을 지라시 풍문으로 격하시킨다. 자기합리화의 유치한, 혹은 교묘한 발현인 셈이다.

 

결코 감독이 알려주지 않을 제목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뜻은 ‘홍상수와 홍상수의 것’인 셈이다. 아니라고? 그럼, 민정에게 초점을 맞추면 된다. ‘민정과 민정이 연기해낸 모든 것‘이다. 상관없다. 홍상수 감독은 다음 번 19번째 작품에서 더한 농담과 자기변명, 혹은 퀴즈쇼를 펼칠 것이니.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진짜 궁금한 것은 수박이 멜론보다 맛있다는 이유이다. (박재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