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최동훈 감독, 2015)

2017. 8. 20. 22:09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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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암살, 터지지 않은 수류탄

 

 

[박재환 2015-08-02] 최동훈 감독의 신작 ‘암살’에서 조국 독립의 그날을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던진 독립투사 가운데 조진웅이 연기하는 속사포는 암살의 현장에서 왜놈의 총탄에 벌집이 되어 쓰러진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한 이정재에게 수류탄을 던진다. 수류탄은 곧 터질 듯 분위기를 잡더니 이내 푸시시 연기만 내뿜으며 불발탄이 되고 만다.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1933년 일제처단의 현장은 중단되고 말았다.

 

영화 ‘암살’은 이미 ‘타짜’(06년, 568만), ‘전우치’(09년,606만), ‘도둑들’(12년,1298만)들 세 편의 영화로 충무로에서 타율 100%를 기록한 최동훈 감독이 ‘대한독립만세’의 심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충무로의 스타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하여 호쾌한 스케일로 시원시원한 액션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영화는 1911년, 독립군 염석진(이정재)이 강인국(이경영)과 테라우치 사령관을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강인국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아먹을, 당연히 아내도 죽일 인물로 등장한다. 이후 염석진은 중국에서 김구 밑에선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으로 활동하며 독립군 비밀정보를 일본군에게 제공하는 밀정노릇을 한다. 1933년, 김구는 이제는 일본의 아가리에 완전히 들어간 조선 땅 경성에서 조선주둔군 사령관 가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을 처단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약산' 김원봉과 손을 잡고 세 명의 열사를 끌어들인다. 뛰어난 저격 솜씨를 가진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조진웅), 폭탄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이다. 그런데 작전을 진행하기에 난관이 많다. 내부의 적 염석진, 그리고 독립군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된 조선총독부와 헌병대. 여기에 돈만 주면 누구든 죽여준다는 전설적 킬러 하와이 피스톨 하정우와 그의 심복 오달수까지 합세한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조선을 팔아먹은 민족반역자를 처단하기 위해, 그들은 태극기 앞에서 사진 한 장만 남긴 채 기꺼이 죽음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암살’은 한동안 맥이 끊겼던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나마 유신시절(?)에는 국책영화로나마 ‘의사 안중근’ 류의 영화가 만들어지더니, 충무로 메이저에서 이 시절을 다룬 것은 이장호 감독의 ‘일송정 푸른 솔은’(83)이 마지막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최동훈 감독의 ‘암살’은 단순한 오락영화, 잘 만든 액션영화의 범주를 넘어선다. 세 명의 독립투사의 사연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안옥윤이 겪은 간도대참변은 우리가 들어본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이후 일본군이 행한 만행이었다. 이정재와 이경영이 보여주는 일제앞잡이/민족반역자는 부끄럽게도 너무나 많았고, 한심스럽게도 이들은 독립운동가와 비교해서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아왔다. 그 하이라이트는 1949년의 이정재의 법정드라마이다.

 

대한민국이 정식으로 세워지고 제헌의원에서는 일제강점기 34년 11개월간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가 구성되고,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통과된다. 이 법에 의하면 국권피탈에 적극 협력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의원이 된 자,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박해한 자는 최고 무기징역 최하 5년 이상의 징역, 직·간접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재산몰수에 처하도록 하였다.


법이 만들어지고, 특별위원회가 꾸려졌으니 ‘이정재’나 ‘이경영’ 같은 놈들이 다 처단되었냐고? 그래서 민족정기가 바로 세워졌냐고? 불행하게도, 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의 사과 한 마디 못 듣고 차례로 세상을 하직할 동안, 친일파의 후손은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어버렸다.

 

‘암살’이 개봉된 뒤 안타까운 점은 하나 더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김원봉에 대해서이다. 김원봉은 1949년 북으로 넘어간 뒤 그의 행적을 문제 삼는 것이다. 안타깝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안옥윤, 속사포, 황덕삼, 안성심(진경이 연기한 이경영의 처), 명우(16년을 더 기다린!), 그리고 김구, 하와이피스톨이다.

 

오달수가 마지막에 내던진 말. “3천불, 우리 잊지 마.” 낭만파 킬러의 우스갯소리가 아닌, 못난 역사의 동참자 후손들에게 던지는 일침이다. (영화/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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