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간중독’ 지상에서 영원으로 1969년 버전

2014. 5. 14. 14:37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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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미숙과 이정재의 아찔한 사랑이 담긴 영화 ‘정사’의 시나리오를 썼던 남자, ‘방자전’과 ‘음란서생’으로 재밌는 사극을 만들었던 남자. 바로 그 남자 김대우 감독이 이번엔 1969년의 군(軍) 관사로 시선을 돌린다. 그것도 베트남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69년. 신록이 푸르던 어느 여름날부터 펼쳐지는 은밀하고도 불안스런 영관급 장교의 불륜드라마이다. 한류스타 송승헌과 미지의 신인 여배우 임지연의 뜨거운 만남은 진작부터 화제가 되었다.

 

김진평 대령, 종가흔을 만나다

 

월남전에서 놀라운 무공을 세웠고, 군단장 장인어른의 백 그라운드까지 있는 김진평 대령은 지금 너무나 평화롭고 고즈넉한 곳에 자리 잡은 교육대대의 부대장이다. 주위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그이지만 월남전의 악몽으로 불면과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새로 자신의 부관으로 전입온 부관 경우진 대위(온주완)의 출세수완에 적이 감탄할 즈음, 그의 부인 종가흔(임지연)을 알게 된다.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종가흔을 거듭 만나게 되면서 점차 평정심을 잃기 시작하고 급속하게 빠져든다. 전쟁의 상흔, 군 관사라는 특수한 장소, 상사와 부하, 그리고 유부남과 유부녀의 결합은 스크린을 온통 폭발할 것 같은 긴장으로 내몰고 예사롭지 않을 결말을 조금은 짐작하게 한다.

 

스팸과 변소

 

김대우 감독은 예상대로 군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 영화에서 등장하는 그런 군 관사에서 보낸 기억이 있단다. 사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군 내부, 장교들의 세상을 다룬 디테일함에 놀라게 된다. 고위 장교들의 회식은 “늴리리야~” 가락이 울려 퍼지는 요정에서 펼쳐지고, 상관이 건네주는 대로 워커(군화)에 가득 따라 부은 양주를 벌컥벌컥 마셔야한다. 남편의 계급과 똑같이 부인들의 사회도 위계질서 속에서 돌아간다. 미장원이 되었든 봉사단체인 나이팅게일회가 되었든. 감독은 월남전의 트라우마를 과장하여 표현하는 대신, 1969년 즈음 전방 군부대 장교관사의 일상적인 모습에 세심한 공을 들인다.

 

두 사람, 아니 두 커플의 관계/역학구도가 미묘하게 만나는 야외 피크닉 장면에서 아직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조여정은 임지연이 싸온 샌드위치를 먹다가 “언제 준비했어.. 음~ 스팸~”한다. 이어 거듭 마신 맥주 탓에 “나 변소 좀~”이라는 대사를 내던진다. 1969년의 미장원 아낙들의 스커트 패션에 대한 고증보다, 이 대사가 훨씬 시대상황에 대해 공감한다. 김대우 감독은 남자/군인/외로운 사람의 단조로운 삶에 갑자기 날아든 한 마리 작은 새에 빠져드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어느 순간 폭발시킨다. ‘색계’의 양조위, 탕웨이처럼. 그리고는 밀회의 최종결말을 불안하게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 안 보면  못 살 것 같애.... 숨을 못 쉬겠어...”

 

김대우 감독은 자신의 영화는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송승헌이 연기하는 김진평 대령의 사랑은 마초맨들의 세상에 존재하는 여학생 같은 순정이다. 계급의 위신과 참전용사의 무용(武勇)은 음악감상실의 클래식 선율에 녹아내리고, 임지연이 내뱉는 왠지 불안정한 대사 톤에 무너지고 만다. 물론 김진평 대령의 불륜, 치정극의 근원은 참전용사가 갖는 정신병리학적 요인과 알게 모르게 장인의 계급적 위세에 짓눌러왔고 부부관계에 대한 불만감이 야기한 심리적 요인들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일지 모른다. 어찌 알겠는가. 그런 역전의 용사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알량한 부하의 같잖은 여인네에 주저앉고 마는 진정한 이유를 말이다.

 

최근 인기를 끈 김희애. 유아인의 드라마 ‘밀회’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남자와 여자가  만나 어느 순간 발화(發火)하는 이유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 에서처럼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가슴에 총알 하나가 박혀 살든, 불꽃을 심어두고 살든. 한 남자의 순정을 왜 모르니. 진짜 남자는 그 사실을 모른다고 억울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알게 될 것이니. 송승헌은 그런 심정을 잘 연기한 셈이다. 그 때 죽으나 2년 후에 죽으나. 결말은 똑같지만 말이다. 단, 다른 점은 그런 사실을  그 ‘누군가’가 아는지 모르는지....  그 차이다. (박재환, 2014.5.14.)

 

인간중독 (2014.5.14.개봉 청소년관람불가)
감독/각본: 김대우
출연: 송승헌, 임지연, 조여정, 온주완, 박혁권, 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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