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7일 여름방학 성수기 관객유치 경쟁이 치열한 극장가에 만화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면 만화영화, 즉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심심찮게 개봉되었다. 굳이 여름 방학이 아니어도 디즈니와 픽사, 그리고 후발 주자까지 가세한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이 한국 극장가에서 대박신화를 이어가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줄줄이 개봉되고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 한국산 애니메이션도 한 해에 몇 편씩 꼬박꼬박 만들어지고 극장에 내걸리고 있었다는 사실. 물론 이들 국산 애니메이션의 흥행성적은 지극히 실망스럽다. 대한민국 콘텐츠 경쟁력 강화라는 화두가 던져지면 제일 발 빠르게 움직인 쪽이 애니메이션 분야이고 오랫동안 외국업체의 하청작업을 거치면서 나름 노하우가 많이 쌓였을 분야가 애니메이션인데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 친근한 토종 캐릭터를 내세우고 한국적 정서를 한껏 살린 배경 등을 생각한다면 애니메이션 창작이 쉬운 듯하다. 그런데 해마다 애니메이션계는 흥행결과를 두고 우울해진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열정과 노력만큼 대중의 지지(사랑)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치 심형래 감독의 작품을 두고 내리는 분석결과와 유사하다. 결국 스토리 문제라는 것이다. 콘텐츠를 파는 데 있어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아무리 훌륭한 전래동화, 감동실화를 옮기더라도 ‘공감하는 스토리’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한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애 키우는 사람은 알겠지만 꽤 유명한 동화가 원작이다. 지난 2000년에 초판이 나왔고 1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 스테디셀러로 알려졌다. 이 원작을 충무로의 유명영화사 명필름이 영화화에 나섰다.
폐계(廢鷄). 베이비를 품다
사계절출판사에서 나온 원작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은 199쪽 분량의 창작동화이다. 시골의 한 양계장의 철망 속에서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죽을 때까지 알(달걀)을 낳는 운명을 타고난 암탉 ‘잎싹’의 이야기이다. 이런 닭들의 ‘주거-생산’ 환경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닭장같은 아파트’, ‘닭장차’ 같은 표현이 그냥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숨 쉴 공간도 충분히 없고, 옆으로 제대로 날갯짓조차 할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 갇힌 채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쏟아지는 사료를 꾸역꾸역 먹고, 때가 되면 알을 하나 ‘슴풍’ 낳는다. 밤이 되면 선 채로 잠을 자고 다시 아침이 오면 쏟아지는 사료를 먹고, 때가 되면 알을 낳고… 살은 피둥피둥 찐다. 이런 곳에 사는 암탉 잎싹은 자기 눈앞에 빤히 내다보이는 양계장 마당을 보며 환상을 품는다. 이곳을 빠져나가 마당을 맘껏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고. 마당에 놓아기르는 저 닭과 오리들처럼 하늘을 보며 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잎싹은 사료 먹기를 거부한다. 비실비실한 닭의 운명은? 양계장 주인은 육계로도 쓰이지 않는 닭은 폐기(!) 처분한다. 폐계는 그냥 손수레에 내던져져서는 저 멀리 땅속으로 매몰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잎싹은 손수레에 가득실린 죽은 닭, 죽어가는 닭들 사이에서 가냘픈 숨을 내쉰다. 존재가치를 잃어 그냥 내버려진 무수한 닭들. 그 사이에서 겨우 살아난 잎싹. 그런데 양계장을 나왔다고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족제비의 날카로운 눈빛과 이빨이다. 이제부터 잎싹은 야생에 던져진 한 마리 불쌍한 닭일 뿐이다. 잎싹은 암탉이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의 알을 품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알을 품어보고 싶은 것이다. 어느 날 그런 상황에서 청둥오리의 알을 품게 되고, 그 알에서 부화한 ‘초록’과 기이한 모자 관계를 맺게 되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생태계에서 마지막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감동의 스토리
원작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은 탄탄한 드라마 구조를 갖는다. 어미 암탉 ‘잎싹’은 평생을 좁은 닭장에 갇혀서 지겨운 일생을 보냈고 죽음을 무릅쓰고 마당을 나선 것이다. 그러나 온실(?)에서 나온 닭은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야생 족제비로부터 달아나야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다. 또한 암탉은 평생 알을 낳자마자 인간에게 빼앗겼다. 자신이 낳은 알을 직접 품고 자신의 새끼의 탄생을 지켜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암탉은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감과 신의 섭리를 느낄 것이다. 그런데 ‘마당을 나온 암탉’은 자신의 알을 낳고 까는 대신 남의 아이를 품게 된다. 철학적 존재의의를 논하기도 전에 ‘낳은 정 기른 정’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사유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초록이도 마찬가지이다. 자라면서 마치 청소년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는다. 당장이라도 둥지를 박차고 나갈 것도 같지만 가늘게 이어진 모자의 끈끈한 정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희생의 드라마
<마당을 나온 암탉>은 궁극적으로 희생의 드라마이다. 내리사랑으로 표현되는 부모의 사랑이며, 무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리더의 희생을 다룬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식스 센스>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그 암탉은 닭장을 나오는 그 순간 이미 죽었고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른 채 너무나 강한 자유의지가 그린 환상의 모험일지도 모른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산하는, 자연은 닭에게는 너무나 광활한 대지이다. “나를 잡아먹어라. 그래서 네 아기들 배를 채워라.”라는 대사는 영화에서는 너무나 충격적으로 울린다. 관객들은 이제 자신의 아이를 훌륭히 키워 저 멀리 보낸 부모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원수의 아이마저 살리기 위해 마지막 목숨을 기꺼이 내바치는 미물의 선택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얼마 전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단다. 그 동안 국산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은 <로보트태권브이>(디지털복원판)의 72만 명이다. <쿵푸팬더2>이 500만 관객을 모았던 것에 비하면 <암탉>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무겁고, 힘겹고, 눈물겨운지 알 것이다. <쿵푸팬더2>의 제작비가 1억 5천만 달러였단다. 우리돈으로 1500억 원이다. 암탉은 순제작비가 30억, 후반 홍보비등을 포함한 총제작비가 50억 원이란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암탉의 마지막 숨이 끊기기 전에 극장에서 아이들과 가족들이 함께 보는 것은 가족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쩜 아이들에겐 그림이 (너무나 매끄러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비해) 투박한만큼 내용도 힘들 것이다. 삶이란게 원래 그렇게 힘겹다. 자식이란 것도 결국 ‘종’ 자체가 다르며, 아무리 희생하더라도 결국 둥지를 떠나갈 그런 존재인 셈이다. 꼭 보시라. (박재환 201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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