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의자] 무소유의 큰 스님 법정(1932~2010) 큰 스님 다큐멘터리

2011. 4. 28. 10:51다큐멘터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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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 승려이자 <무소유> 등 베스트셀러를 다수 집필한 에세이스트인 법정 스님은 작년 3월 11일 입적하셨다. 바로 그 한 해 전에 가톨릭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다. 한국의 두 영적 지도자가 잇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 가슴에 심한 공허감을 남겼다. 그들은 그들의 종단에서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들에게 종교의 차원을 넘어서는 심적인 위로와 사랑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이야기가 <바보야>라는 다큐멘터리로, 법정스님의 일대기도 <법정 스님의 의자>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얼마 전 조계사에서는 이 두 편의 영화 시사회가 있었고 잇달아 극장에서 일반관객을 맞이한다. 큰 화면에서 되살아나서 여전히 ‘무소유’의 정신을 갈파하는 법정스님의 죽비소리를 들어보시라.

“저는 법정스님입니다. 법정‘큰’스님이 아니에요”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셨다. 목포에서 학교를 다녔고 전쟁 직후 전남대학교 상학과에 진학했다. 젊은 법정 스님은 아마 전쟁의 상흔을 보면서 종교적 계시를 받은 모양이었다. 3학년 때인 1954년 출가를 결심한다. 서울 안국동에 있는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되고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생활을 시작한다. 다큐를 통해 효봉 스님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와세다대학 법과를 나와 법관을 지내던 속인(俗人) 효봉은 사형선고를 내리고는 양심의 가책과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속세를 버리고 승려가 된 전력이 있다. 한국 불교계의 큰 스님인 효봉을 통해 불가에 들어온 법정스님은 그 후 큰 절과 작은 암자, 큰 번뇌와 작은 세속사를 지켜보면서 불교에 정진한다. 물론 스님은 <무소유> 등의 책을 통해 끊임없이 번뇌를 떨치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무소유 정신을 설파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모든 것을 세상에 남겨주고 단지 입고 있는 가사만을 입은 채 그대로 화장하키라는 것이었다. 관도 없이. 스님은 그렇게 욕심과 갈구, 아집에 사로잡힌 세상에 마지막 게(偈)를 남겨두고 입적하신 것이다.

맑고 향기 나는 삶, 그리고 두고 떠나는 삶

영화에서는 세상에 남아있는 법정스님의 관련영상과 사진들이 적절히 사용된다. 법정스님은 송광산 뒷산에 있는 불일암과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 그리고 강원도의 한 암자에서 고적한 불도를 닦은 스님이다. 스님의 말과 뜻과 글이 계속되는 사이사이에 우리나라 자연산하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쁨도 함께 안겨준다. 스님은 아마 일망무애 펼쳐진 저 눈 덮인 산자락을 쳐다보며 청진함과 버림의 미학을 매일매일 되새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베스트셀러 에세이작가 스님으로만 기억한다면 스님에 대한 작은 오해일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에 작은 씨알이 되었던 분이었고, 불경번역작업에도 몸을 바친 불교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불경 역경사업에 나선 데에는 사연이 있다. 외적이 쳐들어올 때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자는 스님들이 만들었다는 그 고려 팔만대장경. 해인사의 그 팔만대장경을 보러온 수많은 관광객들. 한 아주머니가 “빨래판 같이 생긴 것..”이라고 말한 모양이었다. 그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된 법정스님은 ‘빨래판’ 팔만대장경의 한글 번역작업에 오롯이 정진한다.

법정스님의 법언은 대중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쉬운 말들이었단다. 그의 글과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참으로 아름다운 글을 남긴 시인이라는 것이다. 곧은 말과 바른 생각은 좋은 글을 남겨 지금까지 그 향기가 세상에 감도는 모양이다.

큰스님은 가셨고, 그의 저작물도 스님의 뜻대로 서가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 뜻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다 담지 못한 정신까지 말이다.   이번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은 탤런트 최불암이 맡아 그 무게를 더해준다.  (박재환, 201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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