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일기] 탈북자의 비루한 삶, 그리고 개죽음

2011. 4. 1. 10:37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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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경기도 안성에 사는 사람들이 중국으로 갔다가 입국이 거절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들에겐 주민등록번호 뒷번호가가 125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런 사례가 많아지면서 그 이유가 알려졌는데 안성에는 탈북자(북한지역 이탈주민, 새터민)들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기 전에 이른바 사회순응적응 교육을 밟는 ‘하나원’이 있다. 하나원을 수료할 때 대한민국 정부는 새로이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이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발부해 주는데 안성지역의 주민등록번호가 125로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원래 안성에 살다가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았던 사람들까지 황당한 경우를 당하게 된 것이다. 중국은 손쉽게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중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125’로 시작하는 사람들을 막아선 것이었다. 이들 125번 탈북자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박정범이라는 범상치 않은 신인감독의 (장편)데뷔작으로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격찬을 받았다. 박정범 감독은 학교 다닐 때 실제 탈북자와 형 아우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들을 통해 탈북자가 남한에서 겪게되는 생생한 삶을 지켜보았고 가슴으로 뭔가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두만강을 넘어 중국과 제 3국을 방황하는 탈북자의 슬픈 삶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하나원을 나온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탈북청년 전승철, 남한에서 길을 잃다

전승철은 탈북자이다. 어떻게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맴돌다 힘들게 한국 땅에 발을 디뎠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원에서 자유 대한민국에서 살아남는 백 가지 비결을 속성으로 배웠을지 모른다. 그들이 하나원 문을 나서면서 정착금 몇 푼을 손에 쥐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돈으로, 그런 지식으로, 그런 희망으로 남한에서 얼마나/어떻게 살아갈까. 적어도 남한에서 살아남으려면 천 가지 비결, 만 가지 묘책은 있어야할 터인데 말이다. 결국 전승철은 입에 풀칠하며 살 수밖에 없다. 뾰족한 직업도 가질 수 없으며 행복한 가정도 꾸릴 수 없다. 그냥 벽에 광고전단 도배하고, 단속을 피해 현수막을 몰래 내거는 잡역 일을 하며 푼돈이나마 감사히 받을 뿐이다. 그가 사는 곳은 재개발지역의 철거직전의 서민아파트이다. 찬바람 불어오는 겨울이면 바람 새는 창문 틈에는 온통 테이프를 붙여 놓아야하는 그런 곳이다. 그런 곳에서 전승철은 역시 북에서 내려온 친구 경철과 함께 산다. 승철에 비해 경철은 요령이 있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치와 능력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이미 간파한 것이다. 그는 같은 탈북자들에게서 돈을 '갈취'하는 방식을 터득한 것이다. 중국에 있는 친척을 통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돈을 전해주는 브로커가 된 것이다. 자기만 살기위해 남으로 넘어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탈북자들은 어렵게 모은 돈을 경철에게 맡긴다. ‘꼭’ 북한으로 전달되기를 희망하며. 하지만 이런 방식도 곧 들통 난다. 경철은 죽이려고 달려드는 탈북자들 피해 도망다나고 애꿎은 승철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 살자고 북에서 내려온 자, 남에서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탈북한 사람들의 코리안 드림,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

코리안 드림이란 말이 있다. 동남아 노동자에게만 쓰이는 말이 아니다. 두만강을 넘어 살아서 남한으로 가면 번듯하게, 배불리,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꿈이다. 전승철도, 사기꾼 경철도, 그리고 놀랍게도 이미 2만 명을 넘어선 탈북자들이 이런 믿을 수 없는 허깨비를 보고 남한 행을 감행한 것이다. 연변의 조선족과는 또 다른 신세이다. 조선족은 서울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중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들에겐 서울에서 2~3년 고생하면 연변에선 사장님 소리 듣는다는 그런 코리안 드림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고향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고, 미래를 잃은 사람들 마냥 살아간다. 이들은 북한의 남겨진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돈을 보내려고 안달이며, 마지막으로 저 멀리 미국으로 완전히 도망가서 새 생활을 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박정범 감독은 탈북자들의 모임에도 따라가 보았단다. 그는 우리가 아는 탈북자의 삶 이상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것을 영화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다. 밤이 되어 유흥가의 네온사인만이 휘황찬란한 불을 비출 때 승철은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들고 노래방으로 향한다. 그러다 도로 한복판에서 차에 치어죽은 하얀 개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개는 승철이 길거리에 버려진 놈을 주워 그나마 정을 붙이고 같이 살았던 동물이었다. 승철은 그 개를 오랫동안 쳐다본다. 탈북자의 삶이란 게 저런 식이었는지 모른다.

영화는 중국의 ‘이른바’ 6세대 이후 독립영화 감독의 작풍과 닿아있다. 전주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된 이들 영화감독의 작품은 디지캠으로 영화를 찍었고, 산업화/도시화/자본화의 뒤안길에서 낙오되고, 절망하고, 자살하는 불쌍한 3등 인민들의 삶을 담았었다. <무산일기>는 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산일기> 기자시사회장에서 박정범 감독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이 영화가 북한에서 공개된다면 북한체제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들이 기를 쓰고 두만강을 넘어 남한에 가봐야 별 볼일 없는 모습을 볼 것이니 말이다. 시니컬한 표현이다. 2만 명이나 된다는 북한이탈 주민들은 지금 남한사회 어디에서 어떤 삶들을 살고 있을까. 남한사회에서 살 수 있는 천 가지 만 가지 비결을 터득하고 있길 기대한다.

박정범 감독은 대학에서 탈북자 전승철을 만났단다. 그리고 형동생이 되어 같이 붙어 다니며 남과 북에 대해,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같이했단다. 형 정범은 동생 승철을 따라 탈북자 모임에도 나가서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도 들어봤을 것이고, 북한사회의 궁핍한 삶만큼이나 남한사회의 못난 모습도 실감했으리라. 박정범은 언젠가는 북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했고 <125전승철>이란 단편도 만들었다. 2003년, 2004년에는 두 사람이 함께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를 다니며 영화에 대한 남과 북의 기묘한 열정을 나눴단다. 탈북자 전승철은 위암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단다. 그래서 박정범 감독은 자신이 직접 북한출신 전승철 역할을 해낸다.

<무산일기>가 해외영화제서 거듭 수상하고 기자시사회를 거치며 호평을 받고 있다. 실제 생기기도 수더분하게 생긴 박정범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에 쏟아지는 이런 찬사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 강원도 출신이 서울로 올라와서 고생하는 이야기를 담겠다고 한다. 박정범 감독은 사회부적응자나 사회적 루저, 혹은 아직은 운이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우리 영화판에도 이런 묵직한 주제를, 묵묵하게 만드는 감독이 있어야한다. 남한관객이 보든 말든 말이다. 4월 14일 개봉예정. (박재환, 20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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