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5. 22:39ㆍ미국영화리뷰
옛날에 영화에 처음 빠졌던 중학생 시절, 내 어린 시절의 생활범위내에는 극장이 세 개 있었다. 이른바 '2류극장'(재개봉관) 하나와 '3류극장'(재재개봉관) 둘 이었다. 극장이름도 아스라히 남아있다. 부산의 온천극장, 동성극장, 국보극장이다. 물론, 학교만 2류, 3류, 인간만 2류, 3류 있는 것이 아니라 극장도 그런게 있는 모양이다. 참으로 많이, 자주 그 극장들을 들락거렸다. 두편 동시에 하니 영화에 목말라하던 그 시절 이런저런 영화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한번도 임검단속 나온 지도교사나 경찰아저씨에게 걸리지 않았다. 요즘이야 이런 어린 학생을 입장시켰다가는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고생좀 할것이다.극장주가 말이다) 그때 본 영화 중에 아직도 단편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 중의 하나가 바로 <미드나이트 카우보이>이다. 어떻게 그런게 갑작스레 상영되었는지는 몰라도 분명 스크린에는 비가 죽죽 내리고, 발밑으로는 쥐가 후다닥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분위기에서 봐야 더 실감이 난다. 물론 어린 시절엔 그냥 "아카데미상 수상"이라는 포스터에 반해 들어가서 보았을 영화일테지만 말이다.
오늘 영화마을에서 찾아낸 세 편의 영화(지하정, 죠스,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중 마지막으로 이걸 감상했다. <미드나이트 카우보이>는 서부극이 아니다. 이 말은 '남자허슬러(=남창)'를 지칭하는 속어라고 한다. 한밤의 카우보이라...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중 유일한 X등급 영화란다. (나중에 오스카 수상이후 작품성을 인정받아 R등급으로 재조정되었단다) 이 영화는 3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화면에서 뚝뚝 떨어지는 고독과 절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아마 <해피투게더>를 울면서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서도 그런 슬픔과 감동을 느낄 수 있으리라. 이 영화는 때로는 <애정만세>, <해피투게더>, <부기나이트>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컨츄리 가수 Harry Nilsson이 부르는 경쾌한 주제곡 "Everybody's Talkin'"이 흘러나온다.
Everybody's talkin' at me
I don't hear a word they're sayin'
Only the echoes of my mind.
People stop and starin'
I can't see their faces
Only the shadows of their eyes
I'm goin' where the sun keeps shinin'
Through the pourin' rain.
Goin' where the weather suits my clothes
Bankin' off of the northeast winds
Sailin' on summer breeze
And skippin' over the ocean like a stone...
남자 주인공. 시골마을의 한 남자. 스스로가 종마라고 생각하는 Joe Buck (Jon Voight)는 맹랑한 환상에 사로잡혀 이 촌동네를 벗어나서 대도시로 향한다. 밀밭인지 보리밭인지 여하튼 그런 곳에서 그는 여자친구랑 사랑을 나누는데 여자가 연신 "자기 최고야, 자기는 정말 최고야.."라고 한다. 그래서 조는 이제 세상의 그 어떤 여자라도 최고의 환락에 빠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래서 접시닦기로 시골마을의 청춘을 썩힐 생각은 쓰레기통에 쳐박아두고 무조건 고속버스에 올라타서 뉴욕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가 뉴욕에 가는 이유는 황당하다. "뉴욕같은 대도시에선 돈 많은 여자들이 줄을 서서 돈을 주고 끝내주는 남자를 사러고 하지. 뉴욕의 남자들은 모두 동성연애를 하기 때문이지..." 이런 황당한 사고의 남자는 가끔 가다 볼 수 있다. 얼마전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본 마릴린 몬로 나오는 <버스스톱>이라는 영화의 남자주인공도 이런 왕자병-아니 변강쇠병 환자였으니 말이다. 그는 카우보이 모자에, 부츠에, 존 웨인같이 입고선, 라디오를 옆에 끼고 고속버스에서 연신 흥에 가득차서 잔뜩 흥분하여 "뉴욕뉴욕"한다. 장거리 고속버스가 마침내 뉴욕에 들어서고 뉴욕의 라디오방송이 잡힌다. 라디오에선 한창 대담프로가 진행중이다. "이상형의 남자는?"이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여자들이 "멋진 남자", "정력 센 남자", "키 큰 남자", "유머 잘 하는 남자"... 하고 제각기 말한다. 조는 입가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이제 뉴욕의 모든 여자를 다 차지하고, 많은 돈을 벌 것이라고 다짐한다. 세상에 몸 팔아 돈 버는데 이렇게 희망에 부풀어 있다니....
하지만, 그를 맞이하는 뉴욕은? 그는 싸구려 여관에 묵으면서 매일 뉴욕의 번화가에 나와서 지나가는 이 여자, 저 여자를 어떻게 해 볼려고 한다. 하지만, 누가 그런 놈을 제 정신 가진 놈으로 볼 것인가? (나도 나중에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런 복장을 입고 번화가에 멍청히 서 있는 작자는 호모들이 파트너 구할 때란다^^) 조가 어느날 여자아줌마를 하나 낚아서(역시 그의 수준에 맞춘 표현) 호텔에서 일을 치른다. 그리곤, 돈을 받아내려하자, 이 아줌마가 "날 뭘로 보고 돈을 달라는 거야?'란다. 그 아줌마는 창녀였다. 조는 자신이 도로 20달러를 내줘야했다.
왜 안되지? 분명 난 변강쇠인데, 왜 멋진 나같은 남자를 안 사 가느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멍청한 사람에게, 대도시 술집에서 누가 접근할 것인가? 당연히 사기꾼이지. 'Ratzo' Rizzo (Dustin Hoffman)은 단번에 이 놈이 갓 상경한 덜떨어진 놈이란 것을 알고는 "너같은 멋진 놈이 그런 일을 할려면 당연히 메니져가 있어야지. 도시의 돈 많은 여자는 길거리에서 돈주고 남자를 안 택해.."란다. 조는 그 말이 그럴 듯하여 소개비로 자기가 갖고 있는 돈을 다 줘 버린다. 물론 사기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내 둘은 친해진다. 원래 조는 시골출신이라 순진하였던 것이다. 랏조(ratzo 혹은 ratso는 쥐(rat)에서 파생된 말로, 쥐새끼 같은 놈아, 야, 땅딸보.. 혹은 더 심한 표현으로... 여하튼 아주 신체적인 특성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다) 더스틴 호프만은 연신 자신을 리조라고 불려달라고 한다. 랏조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폣병환자처럼 기침을 하고 다리는 아주 심하게 절고 있다. (그의 이러한 연기는 정말 더스틴 호프먼이 연기를 잘 한다라는 인상을 평생 심어주었다. 이 영화는 더스틴 호프먼이 바로 전해 <졸업>이후 두번째 출연한 작품이다!!)
둘은 회색빛 뉴욕의 철거 직전의 빈 아파트에서 추위와 가난에 떨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조는 여전히 여자를 찾아나서지만, 사기당하거나, 호모의 비럭질(순수한글, 동성애 행위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임) 대상이 되어야했다. 그 와중에 랏조의 병세는 악화되고 말이다. 랏조는 플로리다를 꿈꾼다. 맑은 공기, 따뜻한 태양이 그의 병을 낫게 해주리라 믿는다. 조도 플로리다의 해안이 자신의 사업에 더 적합할 것이라 생각한다.
조가 제대로 여자를 잡아 20달러를 번다. 그날 기뻐서 그 쓰레기 가득찬 방에 들어오니 랏조는 다 죽어가고 있었다. 조는 거의 강도질에 가까운 행위로 돈을 구해 플로리다행 버스에 오른다. 조는 "이건 내 직업이 아냐.. 플로리다에선 일자리를 구할거야..."한다. 랏조는 버스 안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바지에 오줌을 싸버리고는 마구 운다. 그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는 카우보이 옷을 버리고 새로 산뜻한 옷을 사 입는다. 그리고 랏조의 옷도 갈아 입혀준다. 태양이 눈부신 플로리다. 마침내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사해줄지 모를 플로리다의 야자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랏조, 아니 리조... 플로리다야.." 하지만, 이미 그는 싸늘한 시체로 변해있었다. 끝...
우선, 연기. 두 사람은 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나란히 올랐다. 정말 불꽃 튀기는 연기였다. 존 보이트가 좀더 미남형이었다면 상은 받았겠지. 하지만, 그는 야성의 연기파였던 것이다. 그의 선 굵은 연기는 <런어웨이 트레인>에서 알 수 있다. 둘 뿐만 아니라, 조가 제대로 잡은 20달러짜리 여자 Cass연기를 하는 Sylvia Miles는 단지 6분의 출연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슬픈 버디무비인 셈이다. 황당하지만, 꿈에 잔뜩 부풀어 상경(뉴욕으로..)하지만, 대도시는 그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는 좌절하고, 절망하고, 굶주리며, 외로와하는 것이었다. 랏조는 병신소리 들으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훔치거나 주워서 연명해 가는 신세였다. 게다가 병은 갈수록 악화되고 말이다. 둘은 적어도 도시의 낙오자이며, 잉여인간인 셈이었다. 그들은 따뜻한 플로리다를 꿈꾸면서도 끝내 밝은 태양을 쬐지는 못하고 만다. 그래서 더욱 깊은 여운이 남는 것이다.
이 영화는 James Leo Herlihy의 1965년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영화는 얼핏 보아도 3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치고는 다원적인 감상이 가능하다. 조가 어린 시절을 회상할때 얼핏 알수 있듯이 소년시절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그는 비정상적인 과보호, 혹은 성적 유린, 학대를 당한 모양이다. 그리고, 호모를 싫어하던 그가 차츰 양성애자 신세로 전락하며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현실적이 되는 것이다. 비록 살기위해서라지만, 그는 랏조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싫어하였고, 호모짓을 싫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삶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추락할 경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래서 슬픈 것이다. 존 스타인벡의 37년 소설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이 비슷한 느낌의 소설이란다. 한번 구해서 읽어볼 참이다. 그런데 소설 대여점엔 이런 책은 없는 걸까. 왜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엔 도서관이 없냐? 왜 대학교 도서관은 자기 학교 학생에게만 책을 빌려줄까? 자기동네 사람에게 도서관을 개방한다면 학교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될텐데 말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영국출신의 존 슐레진저인데 그의 작품중 <마라톤맨>도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다. 역시 3류 극장에서 봤었다. 그 영화도. (박재환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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