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 본 파리]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다

2008. 3. 5. 22:30미국영화리뷰

반응형


[Reviewed by 박재환 1999-1-25]
  스크린쿼터제(일명 SQ)가 영화인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회자되는 것 말 중에 하나가 "영화는 자동차 만들기 같은 산업이 아니라 문화이다"라는 명제이다. 하지만, 말이 문화이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럽 중심의 문화인식이고, 미국중심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산업이다. 우리는 미국적인(헐리우드적인) 산업적 스케일이나, 유럽식의 (문화)마인드가 없으니 당연히 어정쩡하게 (그래도 좀 가능하지 않을까해서) 문화라고 자위하고 있을 뿐이다.... 아프리카 진짜 토인들이 부르는 노래나 춤이 서구 디스코텍에서 흔드는 춤보다 후진적이다거나 혹은 구시대적이다 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바로 문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개잡아 먹는 식생활을 두고, 변론하는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음식문화의 상이성이다. 프랑스사람이 달팽이 먹듯 우리는 개 잡아먹는다 왜..라고.. 그런 관점에서 문화는 시차가 없다. 천년 전이나 백년 후나 문화의 기본은 일정하고 정체성을 띄며, 바뀐다면 좀더 세련된 표현의 양식이 바뀔 뿐이다. 그것은 비행기와 통신의 발달이 가져온 세계화의 과정과 상업화의 과정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 이 영화 <내가 마지막본 파리>를 보면서 그 생각을 했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약속> 수준이며, <미워도 다시한번>의 잉글리쉬 버전일 뿐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왔고, 원작이 피처제랄드(F. Scott Fitzgerald)라는 소설가라는 것 뿐이다. 뭐, 이렇게 써놓고 봐도 사실 오늘날 한국영화팬에겐 별로 흥미로운 요소는 아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0세기 최고의 미녀라는 소리를 들은 배우이다. 지금은 결혼 8번한 뚱보 할머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피쳐제랄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물론, 우리나라엔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몰라도 전혀 부끄러울것 없다. 미국인중 "김동인"이나 "이상"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영문학하는 사람은 알만한 작가이다. (하지만, 영문학하는 사람이 이 사람을 모른다면 심히 부끄러워해야할 것이다!!) 로버트 레드퍼드가 나온 영화 <위대한 게츠비>의 작가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그의 <Babylon Revisited>>인 모양이다. 그 원작은 구경도 못해봤으니 소설이야기는 생략하고.... ^^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이기에 우리나라 멜로드라마 수준이라고 감히 이야기 하냐 하면 다음과 같은 뻔한 줄거리에 상투적인 갈등요소를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나, 테일러나 피츠제랄드에게 아무런 감정없다)

  프랑스 공항. 한 남자가 우거지상이 되어 파리에 들어선다. 그의 이름은 챨스 윌스. 멀리 허름한 한 신문사 건물을 그는 감회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한 카페로 들어선다. 반가와하는 주인. "몇 년만이지?" "딸 때문에 돌아왔어..." 그리곤 플래쉬 백으로 이 남자의 과거가 펼쳐진다. 때는 2차 대전의 막바지. 유럽은 이미 승전의 환호성에 빠져있고, 히로시마엔 원폭이 곧 떨어질 그 시기이다. 빠리에 나와 있는 미국 신문사 기자 (미국 군인신문 <<스타 앤 스트라이프>>가 붙은 차를 타고 있었다)인 그는 승전 프레이드에서 한 여자의 키스를 받는다. 단지 그가 미군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말이다. 이름도, 사는 곳도 물어보기 전에 인파속으로 그녀는 사라졌다. 그리고 이 기자는 언제나 가곤하던 이 카페에서 또 한 여자를 보게된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언. 미국인이었다. 그녀의 집에서 열리는 승전 파티에 초대받은 그는 그곳에서 프레이드 도중 그에게 키스한 그녀를 다시 만난다. 메리언의 여동생 헬렌이었다. 이상한 운명이었지만 결국 챨스는 메리언과 맺어지지 않고 헬렌과 결혼하게 된다. 가난한 신문기자이며 작가를 꿈꾸며 이국땅 빠리에 눌러앉아있던 챨스는 그가 쓴 세 편의 습작이 모두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으면서 점점 자신감과 의욕을 잃게 된다. 게다가 너무나 이쁜 아내에게 접근하는 한 남자로 인해 둘의 관계는 위험해질대로 위험해진다. 게다가 인터뷰 나가서 만난 한 돈많은 유부녀와의 관계도 그렇게 매끄러운 것은 아니고 말이다. 이런 저런 방황과 갈등 끝에 아내는 병으로 죽고 만다. 메리언은 챨스가 딸을 키울 능력이 없다며 양육권을 빼앗고, 그는 결국 혼자 미국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개과천선하여 파리로 와서는 그녀의 딸을 데려가데 된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우리나라 최인호나 윤후명도 이보다 더 예쁠 수 있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갈등구조는 의외로 심각하다. 한 남자의 운명을 보라. 그는 야심가이다. 그는 소설을 써서 문필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알아주는 출판사는 아무도 없다. 단지 그의 사랑스런, 너무 예쁜 아내만이 "당신은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다"라는 위로의 말을 해 줄 뿐이다. 아내는 부자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주급 70달러의 기자생활로는 그렇게 행복할 것 같지가 않다. 이때, <자이언트>같은 일이 벌어진다. 장인이 결혼선물로 준 텍사스의 황량한 유정에서 석유가 발굴되면서 어느날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 뜻대로 소설이 되지 않고, 게다가 그 백작부인을 알게 되면서 일은 꼬일대로 꼬인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한 젊은 남자-놈팽이였지만, 언제나 유들유들하게 친절과 호의를 베푼다. 제비족은 동과 서과 같은 모양이다-를 알게 되고.. 두 부부의 갈등구조는 깊어만 가다가, 어느 보기에도 추운 겨울날 일은 벌어진다. 술 취한 남편은 아내가 없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문을 잠그고 곯아 떨어진다. 그날 아내는 추위에 떨다 결국 그 일로 죽는다. - 물론 , 연애 당시 그녀가 우산없이 빗속을 걷다 폐렴증세로 입원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녀가 추위에 약하고, 또한 남자의 사려깊지 못함을 보여줌으로써, 그 원죄가 어디있는지를 은연 중에 내비친다.

   물론 메리언이 여동생의 딸을 넘겨주려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이해가 간다. 실제로 챨리를 먼저 사랑했던 것은 자기였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2차대전이 끝난 후 파리에서 벌어지는 미국인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점령군도 아니고 정복자도 아니다. 하지만, 당시의 낭만적인 기록사진-한 군인과 여자의 기막히게 멋진 키스씬을 기억해 보라!-으로 보자면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을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금 덜 낭만적인 아시아판도 충분히 생각해 볼수 있을테고 말이다. 단지, 잘못 떨어진 한 공간에서의 사랑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니 굳이 이 영화가 프랑스에서 진행되어야할 마땅한 이유도, 의미도 없는 셈이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를 꿈꾸던 남자에게 있어선 파리는 분명 묘한 이국적 감정과 외도의 정당성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비터문>에서처럼, <베티블루>에서 처럼, 작가는 화가처럼 파리에서 더 멋진 글을 남길수 있을지 모른다.

  자, 그럼, 우리도 만들어보자. 미국이 이 영화를 만들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오직 사람의 작업공간에 컴퓨터라는 것이 포함되고, 우주라는 개념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남녀간의 몸뚱이 하나로 버틸려니 상대가 안 되고 있을 뿐이다. 산업은 격차가 있지만, 문화는 격차가 없다. 그러니 희망은 있는 셈이다. 제주도에서 찍든 파리에서 찍든 화성에서 찍든, 보편적 사랑과 대중적 관심은 결국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는 그렇게 멋진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제목만큼은 낭만적이고 지켜보는 재미와 빠져드는 드라마가 있었다. 특히나 안 팔리는 글을 쓰는 작가의 방황을 보는 것은 꽤나 흥미있고 말이다. 오래 전에 <야망의 계절>이란 TV시리즈가 있었다. 아마 그 외화에서 빌 빅스비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시나리오(방송작가?)였을 것이다. 안 팔리다가 어느날 아내가 대필을 해 주었는데 그게 히트를 치는 것이다. 이럴 때도 남자란 동물은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분명 예쁜 아내가 있지만, 남자가 외도를 하거나 한 눈을 파는 것은 그런 이유때문일 지도 모른다. 물론 난 아직 결혼 안해봐서 확인할 방도는 없지만 말이다... ^^

    참, 이 영화는 케이블 TV의 한 채널에서 방영된 것이다. 정영일 아저씨 살아있을땐 이런 영화가 자주 방영되었다. 그 아저씨가 무척 보고 싶다. 그 사람은 인터넷도 몰랐고, 타이타닉도 몰랐고, 박재환도 몰랐을텐데 그래도 꽤 낭만적인 삶을 살다 갔을 것이다. (박재환 1999/1/25)


 Last Time I Saw Paris(1954)
 감독: 리처드 브룩스 (Richard Brooks)
 출연: 엘리자베스 테일러, 반 존슨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The_Last_Time_I_Saw_Paris
http://en.wikipedia.org/wiki/Babylon_Revisited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