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유럽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추축국과의 전쟁에 뛰어들진 않았다. 미국은 태평양 너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도 마찬가지 였다. 일본이 조선을 유린하고 중국을 박살낼 때에도 말이다.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아니었고, 지금과 같은 군사동맹의 관계도 아니었기에. 영국의 처칠이 애타게 참전을 부탁해도 미국 조야는 엇갈린 반응이었다. 그만큼 참전의 대가- 희생이 클 것이고, 국내에 찬반논쟁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1941년 일거에 바뀌고 만다.
영화의 시작은 1937년, 도쿄의 미국대사관에 무관으로 파견된 해군장교 에드윈 레이턴이다. 신년 모임에서 일본해군의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만난다. 원래 이런 자리가 탐색전 자리. 야마모토는 일본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석유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오간다. 그리고, 실제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 날을 “미국에겐 치욕적인 날”이라면 반격을 공언한다. 미국은 그렇게 2차 대전에 본격 참전하게 된다. 처참하게 부서진 태평양사령부에 체스터 니미츠를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보낸다. 니미츠는 일본의 다음 공격을 대비해야한다. 어디를 어떻게 공격할지, 정보전쟁과 함께 전략싸움이 시작된다. 물론, 일본 측도 마찬가지이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은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 치욕의 날에서 승리의 날로
영화는 진주만, 둘리틀 습격, 미드웨이 해전에 이어지는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하고 재현해 낸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를 좌우할 정확하고도, 밀도 있는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니미츠 사령관은 일본의 임박한 침공계획을 저지할 작전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 넓은 태평양에서 과연 일본 함대가 어느 섬을 목표물로 삼았는지를 알아내야했다. 하와이 해군전투정보실 조셉 로슈포르 대령은 '미드웨이 섬'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확정적 증거가 필요했다. 일본군 암호문자가 가리키는 'AF'가 어느 곳을 이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로슈포르는 기발한 역정보전을 펼친다. 미드웨이 섬에는 천연적 식수공급원이 없어 정수시설에 의존하고 있었다. 로슈포르는 평문으로 그 시설이 고장났다고 보고하게 만든다. 역시 일본의 무전감청팀은 그 정보를 캐치하고는 함대지휘관에게 'AF 식수부족'이라는 전문을 발송한다. 니미츠는 이제 미드웨이를 공격할 일본 함대에게 궤멸적 타격을 가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을 다룬 <도라! 도라! 도라!>나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 등을 거치면서 전쟁의 과정을 거의 잘 알고 있다. 주말 평화롭고, 한가한 하와이의 풍광과 천황을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을 초개같이 바칠 것 같은 일제국주의 군인들의 대비되는 모습들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들이고, 그들을 최대한 극적으로 스크린에 부활시킨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 중 하나인 갑판원 브루노 가이도(Bruno Gaido)는 일본군에 사로잡히고 닻에 발이 묶여 태평양 바다로 수장되는 장면이 있다. 실제 가이도는 공중전 중 추락하였고, 보트에 있다가 일본군에 발견, 고문을 당하였고 드럼통에 묶여 바다로 던져진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가장 잔인한 전쟁의 한 순간인 셈이다.
군인의 길은 힘들고, 피곤하고, 위험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시(戰時)에는 말이다. 빗발치는 총탄 속에 전우의 사지가 갈가리 찢겨나가고, 꼬리에 불붙은 전투기가 눈앞에서 곤두박질치는 그런 상황에서 군인은 어떤 눈빛을 보이고 머리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까. 저 먼 조국 땅에서 ‘부디 살아서 무사히 귀환하기를 기도하는’ 가족과 국가의 영광을 드높이기를 기대하는 국민들을 떠올릴까.
이 영화는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이 겨우 제작비를 조달하여 완성시킨 작품이다. 제작비는 1억 달러로 알려졌다. 놀랍게도, 미국 독립영화(independent film) 중에서는 최고액이란다. 메이저 스튜디오가 아닌 독립영화사에서 찍었으니 말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빈틈이 많다는 것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억 달러’로도 재현하기엔 부족한 미드웨이 전쟁이었던 셈.
<미드웨이>는 훌륭한 역사공부의 텍스트가 될 수 있고, 위대한 애국심의 진정한 발로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정말 롤랜드 애머리히 작품 같지 않은 작품이다. (박재환 2020.1.7)
[조조 래빗] 인생은 ‘레알’ 아름다워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Jojo Rabbit, 2019) (0) | 2020.02.11 |
---|---|
[1917] 서부전선 이상있다 (샘 멘더스 감독, Sam Mendes 2020) (0) | 2020.02.10 |
넷플릭스 ‘두 교황’과 로버트 해리스의 ‘콘클라베’ (0) | 2020.02.06 |
[넷플릭스 메시아] “의심하라, 의심하라, 의심하라. 언제까지?” (0) | 2020.01.16 |
[넷플릭스 드라큘라] 색(色),계(戒) (Dracula 2020) (0) | 2020.01.16 |
스타워즈8 라스트 제다이 “난 달라요” (0) | 2019.12.23 |
[아이리시맨] “자네가 페인트칠 좀 한다고 들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 The Irishman 2019) (0) | 2019.12.12 |
[나이브스 아웃] 피해자 X의 헌신 (라이언 존슨 감독 KNIVES OUT 2019) (0) | 2019.12.05 |
[터미네이터3 라이즈 오브 더 머신] 그가 돌아왔다. 그녀가 따라왔다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 Terminator 3: Rise of the Machines 2003) (1) | 2019.11.13 |
[리뷰] 더 킹: 헨리 5세 넷플릭스의 세익스피어 정복기 (데이비드 미쇼 감독 The King 2019) (0) | 2019.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