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 좋은 날] 가진 것은 청춘뿐일지라도 (이장호 감독 1980)

2019. 11. 13. 14:16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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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KBS 1TV가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방송하고 있는 더 클래식 다섯 번째 작품으로 이장호 감독의 1980년도 작품 <바람 불어 좋은 날>이 늦은 밤 한국영화팬을 찾았다. <바람 불어 좋은날>은 1980년 11월 27일 개봉된 작품이다. 유신이 저물고, 서울의 봄을 거쳐 암울한 한국사회에 한줄기 빛처럼 세상에 나온 충무로 영화이다. 

영화는 (지금은 강남의 금싸라기 땅이 되었을) 당시의 ‘서울변두리’ 개발지역에 터를 잡은 시골 촌놈 출신 세 명이 펼치는 청춘의 이야기이다. 길남(김성찬), 춘식(이영호), 덕배(안성기)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지만 청춘의 꿈을 안고 내일의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산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어제까지 논밭이었고, 여전히 논밭이 보이는 이 땅의 원래 거주민들은 농사지을 땅을 잃거나, (부동산업자의 농간에) 빼앗기고 정든 땅을 떠나야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여관에서 일하는 길남은 진상고객과 다투면서도 꿈이 있다. ‘나까무라도, 왕서방도 어서 옵쇼 모시는 웰~컴 호텔의 사장‘이 되겠다며 한 푼 두 푼 악착스레 돈을 모은다. 이발소에서 일하는 춘식은 면도사 미스 유(김보연)를 짝사랑하지만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회장님(최불암)이 호시탐탐 미스 유를 노리고 있다. 순박한 덕배는 중국집 배달부 일을 하며 이들 친구들과 부대끼며 산다. 분명 나라 전체가 잘 살자고, 부자가 되자고 달려가던 그 시절, 이들 청춘들은 역경을 어떻게 이겨나갈까.

 길동, 천호동이 개발되기 전 모습,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방배동과 말죽거리 일대, 그리고, ‘선릉’이라고 사료되는 곳을 보면서 40년 사이에 서울의 모습이 정말로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듯. 

이장호 감독은 시골에서 상경한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이야기를 전해주지만 그들과 함께 서울의 공기를 마시는 나머지 서민들과 주변사람들은 40년 뒤에 어떻게 되었을지, 그들의 자식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질 것이다.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작가 최일남의 중편소설 <우리들의 넝쿨>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송기원 작가가 시나리오로 옮겼다고 하는데, 당시 수배범으로 쫓겨 다니느라 크레디트에서는 이름이 빠졌다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해에 만들어진 영화였고, 여전히 무도한 검열이 이뤄지던 시절이었지만 놀랍게도 이 작품은 감독의 의도대로 무사통과했단다. 당시 영화검열에 참여했던 소설가 박완서의 적극적 설득으로 가능했다고 한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한국영화와 검열’ 관련 행사에서 이장호 감독은 문제가 된 장면이 하나 있었다며 입대를 앞두고 김성찬이 한탄하듯이 내지르는 대사 중에 “영자를 부를거나, 순자를 부를거나, 영자도 좋고, 순자도 좋다.” 대사에서 ‘순자’가 문제였다고. (전두환 부인 이순자를 연상시킨다고) 이장호 감독은 오디오에서 ‘ㅅ’자 나오는 부분만을 삭제했는데 관객들에겐 그걸 다 알아 듣고 웃었다고 회고했다. (블루레이로 이 장면을 들어보면 제대로 오디오를 묵음처리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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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배우로 명성을 날렸던 안성기가 군대 갔다 와서 몇 편의 작품에서 빛을 못 보다 이 작품으로 확실히 충무로의  대표배우로 성장하게 된다. TV에서도 자신만의 아우라를 뽐냈던 고(故) 김성찬, 이장호 감독의 동생인 이영호와 함께 반가운 얼굴을 만나볼 수 있다. 임예진이 시골에서 올라온 이영호의 씩씩한 여동생으로, 유지인이 배달부 안성기를 희롱하는 강남 멋쟁이로, 김인문-김영애가 포장마차 부부로, 박원숙이 중국집 여주인으로, 김희라가 그런 박원숙에게 얽히는 중국집 종업원으로 등장한다. 이른바 ‘종합상사맨’으로 수출역군으로 일하다가 영화가 좋아 충무로에 뛰어든 청년 배창호는 이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고 충무로 르네상스를 이끌 준비를 한다. 

1976년 연예계를 뒤흔든 대마초파동에 연루되어 한동안 손발이 묶였던 이장호 감독은 <바람불어 좋은날>로 한국적 리얼리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 <과부춤> 등은 이번에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 12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자격이 있는 작품이다. 

한편, KBS와 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영화100년을 맞아 준비한 특집기획 <더클래식>은 지난 주 <바람불어 좋은 날>에 이어 15일(금) 밤에는 여섯 번째 시간으로 임권택 감독, 김지미 주연의 <길소뜸>이 방송된다. (박재환 2019.11.13)

 

 

 

 

KMDb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출처 : KMDB]

www.kmd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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