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규칙은 지켜라

2019. 9. 17. 15:23미국영화리뷰

....................  이 영화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의 불편부당한 감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몇 가지 주관적인 경험담이 모여야만 그런대로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하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용감한 해병대 샤무엘 잭슨 대령에게 특수임무가 떨어진다. 예멘의 미국대사관이 극렬시위대에 둘러싸여 상당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명령에 의해 함정에서 헬기로 대사관 옥상에 도착한다. 수백 명의 시위대가 대사관에 돌을 던지고, 여기저기서 위협사격을 가하고 있다. 군중심리에 의해 이들 시위대의 행동은 점차 과격해지고, 미국 대사는 황급히 이곳을 철수하기로 하고, 성조기를 뚤뚤 말아 헬기를 타고 가 도망가버린다. (대사관 건물은 미국 땅이다. 이건 어느나라, 어느 상황에서도 똑같다. 미국대사관이 그곳에 있는게 싫으면 단교하는 수 밖에 없다!) 이제 건물 밖의 시위대는 더욱 열을 내며 콩알 볶듯 총을 쏘아댄다. 이들 시위가 장난이 아님을 눈치챈 샤무엘 대령은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옥상의 해병대원들은 시위대를 향해 기관총소사를 시작한다. 드드륵... 눈 깜짝할 사이 시위대는 피투성이가 된다. 그 과정에서 73명이 죽는다. 총 가진 놈은 한 놈도 안 맞고 시위대에서 있던 비무장 민간인들만이 희생당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펼친 신문에는 비무장 민간인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미국의 조치를 비난하는 외국 반응 일색이다. 미국은 중동의 평화를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고, 사무엘 대령의 월권행위를 군사법정에 세운다. 

  여기서부터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은 몇 가지 판단오류에 빠진다. 사무엘의 유무죄에 따라, 미국의 국가 도덕성이 살아나느냐 하는것. 물론 미군은 미국이니까 미군의 잘못은 미국의 잘못이라는 단선적 평가에서부터, 미군이었든 대통령이었든 미국의 가치관에 어긋나면 그 사람은 유죄판결 받아 미국의 장기적인 국익을 챙겨야한다는 지극히 미국적인 법정의까지. 

  물론, 이 영화에서는 미국영화답게 사무엘의 무죄가 선고된다. 여기서 이 영화의 원제목 <룰스 오브인게이지먼트>에 관심이 간다. <교전수칙>이라고 군인이 전투 중에 꼭 지켜야하는 규칙들이다. 물론, 이런 수칙이 베트남 정글에서, 화염병 속에서, 게릴라 독침 틈에서 지켜질지는 의문이지만, 미국은 그러한 것까지 만들었다는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영화홍보사가 준 보도자료에 미국의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가 몇 조항있다. 잠깐 보면, 

1. 사격받지 않는 한 사격하지 말라 

3. 사격 받았을 경우 지역 내의 모든 민간인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라. 

4. 사격 받았을 경우 즉각적인 총격을 종식시킬 만큼의 화력만을 사용하라. 

9. 편향된 입장을 취하지 말라. 우리의 임무는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며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뭐, 이런 것이다. 민간 시위대를 마치 전투중의 적처럼 취급한다는 발상이 무섭지 않은가? 

  어쨌든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말도 안되는 영웅을 만들어내더니, 말도 안되는 법정 드라마를 펼치고, 말도 안되는 종말을 이끌어낸다. 법정드라마다운 마지막 대반전도 미약하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행동에서 한국 관객이 공감할만 정의도 없다. 

  이런 영화가 왜 미국에서 실패하지 않았을까? <유령>이 한국에서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라고? 1990년대초에 아프리카 모 국가에서 쿠테타가 일어났고, 미국 기자 하나가 성난 군중에게 잡혀 맞아 죽는다. 그리고 그 시체는 하루종일 그 더러운 아프리카 신생국가의 장터에 질찔 끌려다녔다. 뉴스위크지는 그 사진을 대문짝하게 미국에 보도했다. 미국인은 분노했지만, 그 아프리카 국가에 원자탄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 자리에 미군이 -장교가 되었든, 졸병이 되었든, 스파이가 되었든, 취사병이 되었든- 그 꼴을 당했다면, 미국 여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아프리카 전부를 지구상에서 날려버리려 할 것이다. 미국의 번창 뒤에는 기자보단 군인이 중요해서일까? 이제 헐리우드 영화까지 자신들만의 정의를 만들어간다. 

  어쨌든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는 잘난 미국의 잘난 국익을 잘도 엿보인다. 비바 아메리카! 이거 보느니 <정>을 한번 더 본다. (박재환 200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