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3 - 숨결] 산 자의 숨결, 죽은 자의 회한 (변영주 감독 My Own Breathing, 1999)

2019. 8. 17. 21:48다큐멘터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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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 31.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 앞에서는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모여 누군가를 향해, 뭔가를 부르짖고 있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의 현장이다. 199218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의 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첫 시위를 가졌던 할머니들은 이후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여 왔다. 예외는 단 한 차례, 지난 95년 일본 고베 지진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한 주를 걸렸을 때뿐이다. 작년 말, 일본대사관이 증축관계로 교보빌딩으로 이전한 후에는 할머니들도 자리를 옮겨 줄곧 이 '작은 외침의 시간'을 계속해왔다. 이날 모임은 정확히 400회째 된다. 삼일절 날 말이다.

 

할머니들은 일본군 위안부(정신대)의 진실이 일본교과서에 실리고, 일본 정부가 희생자 추모비 건립과 함께 공식 사죄하는 그 날까지 집회를 계속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들 할머니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들은 이러한 작은 외침이 언제까지 계속될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여전히 일본정부 당국은 귀를 막고 있으니 말이다. 할머니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약 없이 '투쟁'을 지속했고, 결실을 보지 못하고 하나둘 유명을 달리했다. 91년 당시 위안부 출신 생존자는 190여 명으로 파악됐으나 위안부 생활로 얻은 각종 질환으로 그동안 세상을 뜬 할머니는 40여 명.

 

한국독립영화계의 여장부 변영주 감독은 이러한 할머니의 목소리에 뜨거운 시선을 돌렸고, 카메라를 조심스레 갖다댄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한 마디라도 더 진실의 소리를 담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래서 변영주 감독은 지난 95<낮은 목소리>, 97년에 <낮은 목소리2>를 그리고 지난 4회 부산영화제 때 <낮은 목소리3>를 내놓았다.

 

할머니들의 8년간의 '작은 외침'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끝에 93년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특별법'을 제정한 것을 비롯, 각종 해외세미나와 국제회의 참가를 통해 98년 유엔인권위원회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도록 한 것 등이다. 국제법에 있어서 '위안부'를 나타내는 용어는 'military sexual slavery(군수용 섹스 노예)'이다. 일본정부는 국가차원에서 그들의 군인들을 위해 조선의 처녀들을 징발해 갔던 것이며, 아직도 그러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변영주 감독은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제 또 다른 사고의 폭을 전해 주기 시작한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는 적어도 해방이후 40년 동안 그러한 사실을 숨겨와야 했다. 국가차원에서도 그것은 마치 더러운 병균처럼 덮어 두려 했던 치욕의 순간으로만 인식했다. (김성종 원작의 <여명의 눈동자>에서 '채시라'도 한때는 위안부였으며, 그녀가 재판을 받는 동안 보여주는 방청객들의 반응으로 보건대, 당시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위안부를 피해자가 아니라 멸시의 대상으로 보았다. 적어도 1950년대에서 1990년까지는 그러했었다)

 

그리고, 변영주 감독은 그러한 위안부 개인의 고통의 역사를 대명천지에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번 <3>에서 위안부 할머니가 잠깐 언급하는 바와 같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확한 위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든, 정의의 의미가 어디에 있든 밝혀져야 하는 진실에 기초한 거대한 희생이기 때문이다. 희생당한 사람이 어둠에 숨어사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당연시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음험하고 추악한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터부와 외면에 대한 타당한 도전이 나타난 것이다. 할머니들은 이제 하나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일본군의 죄악에 대해 명시적으로 증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머지 한국인들은 그러한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하며, 그러한 역사의 순간에 대해 분노를 품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용서가 되었든 끝없는 증오가 되었든 최우선적으로는 그러한 피해자의 눈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3>에서 김윤심 할머니는 자신이 위안부로 있으며 얻은 병 때문에 장애자인 딸을 낳은 것에 대해 평생의 한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김윤심 할머니는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기막힌 자신의 이야기를 수기로 엮었다. 정신대로 끌려간 이야기며, 치명적인 성병을 얻었고 그것 때문에 장애자인 딸을 낳은 것까지. 하지만, 결코 딸에게는 그러한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말 못하는 딸(중년의 아주머니)이 수화로 "엄마, 나도 그 책 보았어... 괜찮아.."라고 하였을때, 할머니는 자신의 지난 반백년을 가슴에 숨겨두었고 결코 딸에게는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그러한 사실 때문에 안절부절해 하는 순간을 변영주 감독은 담담히 카메라에 담고 있다.

 

할머니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잘못이 있다면 일본에게 땅를 빼앗기고, 어린 딸을 강탈 당할만큼 허약한 국력의 조선정부였을 것이니 말이다. 문제는 그러한 과거의 역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가에 있는 것이다. 일본과 관련하여서는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족 학살사건, 중국에서의 남경대학살 등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을 엄청난 일들이 있는 것이다.

 

해마다 3, 그리고 8월이면, 독도와 함께 거론되는 일본과의 이야기는 앞으로 삼천년동안 지속될지도 모를 일이다. 변영주 감독은 그러한 장구한 이야기를 한 편씩 엮어나간 것이다. 이제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일본대사관 앞에서 저주의 눈물을 흘리는 그들에게 무언가 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적어도 주권국가라면 말이다.

 

정대협은 "12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한국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7개국이 공동으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에 참석해 일본의 정신대 만행을 규탄하는 행사를 갖고 공식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제 이 영화는 318일 서울 선재아트센터(02-733-8945)와 부산 시네마테크부산(051-742-5377)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박재환 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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