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26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산업화의 그림자를 벗어나서 급속하게 민주화의 시대로 넘어간다. ‘서울의 봄’이라고 불리던 1980년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의 함성과 열기로 가득했다. 그와 함께 일부 군인들의 야심도 꿈틀거렸다. 5월 17일, 정치군인들은 전국적으로 계엄령을 확대하고 각 대학에 공수부대를 속속 투입했다. 그렇게 5월 18일 광주의 비극은 시작된다.
피를 부르는 폭력적 시위 진압에 시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계엄군(공수부대)는 진압봉이 아니라 총칼을 휘두른다. 당시,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계엄군에 대항해 총을 든 사람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 유명한 지만원씨가 색다른 주장을 내놓는다. ‘광주소요사태’, ‘광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불리던 그 때 북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그래서 선량한 광주시민들에게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총을 들게 했다고. 근거는? ‘사진’이다. 사진 속의 ‘저’ 인물이 북한군이고 지금은 북에서 영웅대우를 받는다고. 그 사람은 ‘광수1’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광주 사태의 모습을 담은 사진 속 인물이 하나둘 ‘광수’가 되는 순간이다. ‘광수1’, ‘광수2’,‘광수3’… 이들은 복면을 하였고, 총을 들었고, 과격시위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특정’사이트를 통해 농담처럼 시작된 ‘광수 찾기’는 대한민국 국회까지 번지는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해결책은? ‘광수’를 찾아내면 된다. 광수로 지목된 사람들이 등장했다.
내가 ‘북한군’ 광수라고?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난 강상우 감독은 지만원씨의 ‘김군’ 이야기에 주목했다. ‘광수1호’를 찾아보자고. 그래서. 광주에 내려가 여러 사람을 만난다.
1980년의 광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사진기자들의 목숨을 건 ‘직업정신’으로 현장이 기록되었다. 디카도, 폰카도 없던 시절, 서슬 퍼런 군인과 결사항쟁에 나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목숨 걸고 셔트를 누른다.
금남로에서, 도청 앞에서, 병원에서 찍힌 수많은 사진 속에서 특정인을 찾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 북에서 내려온 사람일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죽어서 사라진 자도 많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살아남은 자도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온전한 증인이 되기에 힘들다.
1980년 총칼에, 고문에,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도 억울하고 원통한 일인데, 내가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이라니.
<택시운전사>에서 극화된 독일인 저널리스트 위르겐 힌츠페터는 삼엄함 경계를 뚫고 광주로 진입했었다. 600명의 북한군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순간에 휴전선 철조망을 뚫고, 남으로 내려가 광주로 진입할 수 있었을까. 군 대령 출신이라는 지만원씨는 이 점에 대해 이야기했어야했다. 적어도 믿게 만들려면 말이다.
그것보다 더한 맹점은, 북한이 그랬다면? 과연 그렇게 밖에 못했을까? 광주를 해방구를 만들고, 남조선 혁명의 아지트로 만들겠다고 내려와서는 그런 사진이나 찍히는(?) 어리숙한 특수군이었단 말인가.
다큐멘터리 <김군>은 이미 39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그 역사의 순간에서, 사진으로만 남은 한 남자, 그리고 같은 운명의 여러 사람을 행방을 뒤쫓는 흥미진진한 추적극이다. 감독은 사진과 증인, 증언을 통해 조금씩 그날의 비극을 전해준다. 5월 24일 송암동-효덕동에서 벌어진 총격전, 아니 학살극은 그때의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사라진 자에 대한 슬픈 비가이다. 살아남은 자는 끌려가서 고문당한다. 여전히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도 북한특수군에 의해 농락당한 넝마주의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날 살아남은 자가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이발소에 가면 머리는 직접 감는다. 대야 물을 보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고.”
다큐멘터리 ‘김군’을 보라. 그리고 그날 죽어간 ‘이군’, ‘박군’, ‘강군’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보시길. 강상우 감독의 ‘김군’은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건져 올린 그날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완결판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 되어야할 것이다. 박재환)
[김군| KIM-GUN, 2018] 감독: 강상우 출연: 김군, 지만원 개봉: 2019.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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