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침몰] 고마쓰 사쿄 원작소설 리뷰

2008. 2. 19. 12:44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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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일본침몰’이라는 제목에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곧 이런 타이틀을 단 일본영화가 한국에서도 개봉될 것이다. 지난 달 일본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일본에서 현재 엄청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침몰>은 지난 73년에 한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서 650만 관객을 불러 모았던 초대형 재난영화이다. 영화는 고마쓰 사쿄(小松左京)가 쓴 소설 <일본침몰>이 원작이다. 얼마 전 기자시사회에서 영화를 먼저 보았고 원작 소설을 찾아 읽어보았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92년에 미래사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최근 또 다른 출판사에서 재번역 재출간되었다)

우선 작가 소개부터. 고마쓰 사쿄는 1931년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교토대학 문학부 이탈리아문학과를 나왔단다. 일본 SF문학상을 몇 차례 받은 것으로 보아 정통 SF작가이다. 그가 73년 내놓은 <일본침몰> 소설은 출판 1년 만에 400만 부가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무려 9년을 뛰어다녔다고 한다. 쓰고, 고치고, 수정하고, 다시 쓰고, 재검토하고 말이다. 왜 그런 세월이 걸렸느냐하면 ‘지구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학설이 거듭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인 특유의 ‘파고들기’ 장인 기질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 ‘일본침몰’ 원작소설을 소개 겸 리뷰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미혼의 남자 오노데라 도시오이다. 해저개발회사 ‘K’에 근무 중인 해양탐사조종사이다. 해상보안청 소속 군인도 아니고, 국가 연구단체 공무원도 아니다. 민간회사에 근무하며 연구단체나 수산업 관련회사의 요청에 따라 심해저의 상태를 관찰하는 일종의 용역회사의 베테랑 심해잠수정 조종사인 것이다.

오노데라는 지구물리학을 전공한 괴짜 과학자 다도코로 교수의 부탁으로 일본의 심해를 관찰하게 된다. 오노데라는 “깊은 바다에선 몇 번이나 잠수질을 해 보았나?”라는 박사의 질문에 “9천까지 네 번, 1만을 넘는 것은 두 번…”이라고 대답한다. 오노데라가 타는 심해잠수정은 ‘와다쓰미 1호’이다.

(참고로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은 히말라야 8,848미터이고, 가장 깊은 심해는 곳은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비티아스 해연(11,304m)과 챌린저 해연(10,916m)이 있다. 1960년 미국의 심해잠수정 <트리에스트>호가 세 명의 조종사를 태우고 태평양 <마리아나>해구에서 10,918m까지 잠수하는데 성공했단다.)

(1973년 집필 당시의 과학적 탐사도구를 지금 것이나 아니면 미래영화의 시각으로 보면 절대 안 된다! 1만 미터 심해까지 내려갔을 때 그 수압은 엄청나고 다시 물 위로 부상하는데 서너 시간이 소요된단다.)

오노데라는 다도코로 박사가 시키는 대로 일본의 해저에 대한 과학적 탐사를 시작한다. 당시 일본에서는 끊임없이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지각변동이 일어났는지 섬이 사라진 경우도 발견된다. 원래 지진이 잦았던 일본인지라,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2차 관동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은 있었지만 그 규모나 그 도래시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상소설의 소재이거나 과학적 가설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다도코로 박사는 자기 나름대로 방대한 데이터로 지각변동을 연구했고 ‘빠르면 2년 내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앞으로 2년 뒤, 1억 2천 만이 살아가는, 38만 평방 킬로미터의 엄청난 나라가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이 소설의 미덕은 SF이면서도 재난 발생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만가지 인간 형태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아왔던,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아비귀환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약탈 같은 것은 묘사되지 않는다. 대신 좀더 ‘정치학적인 인간’의 움직임에 대해서 나온다. 차라리 속 편하다!

다도코로 박사의 주장은 미치광이 재야과학자의 헛소리라고만 할 수 없다. 총리는 빈발하는 지진 피해(이미 수십만 명이 죽는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와 더불어 곧 닥칠 대재앙을 준비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화시에 비상시(전쟁, 혹은 그보다 더 혹독한 일본침몰- 한 미치광이 학자의 주장일 뿐이라면?)의 일을 준비할 수 있을까?

당장 더 정확한 통계치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잠수정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신제품을 수입해야한다고 과학자가 주장한다고 하자!!!! 그것도 아주 조속한 시기에… 라고 하자. 어느 부서가 총대를 맬 것인가. 우리 식으로 생각해보자! 해양수산부가? 과학기술부가? 국정원이? 당장 국회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아니 뭐 땜에 그런 대규모 예산을 편성하냐? 일본이 침몰한다고? 미쳤군?

관료주의 일본국가의 ‘진부한 모습’만이 비춰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총리의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대처가 이어진다. 총리는 비밀리에 각 국에 SOS를 보낸다. 바로 일본침몰이 현실화될 때 모든 일본국민을 해외로 소개시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예상보다 빨리, 신속하게, 대규모로, 그리고 확실하게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일본은 곳곳에서 지진과 화산분출, 재앙이 현실화된다. 수십 만, 수백 만이 죽고 땅 덩이가 바다 밑으로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제2의 생존의 길을 도모한다. 유엔이 나서고 각 국이 나선다.

평화시에 비상시를 준비한다…..

쉬운 말이지만 위정자에게는 힘든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태풍, 물난리가 날 때 수백, 수 천 규모의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만 해도, 텐트, 이불, 라면, 식수가 어떻게 운반되고 배분되는지 뉴스를 보면 분통이 터질 것이다. 그런 자연재해가 전국적인 규모에서 대량 발생할 때 어떻게 될까? 평상시 그 많은 비상식량, 구호용품을 어떻게 비축해 놓고, 효율적으로 이동시킬까.

일본은 지금 가라앉는 중이며 모든 곳이 불바다인데….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과학적 묘사의 진지함과 더불어 세계정세 속에서의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위상에 대한 비교적 객관적인 서술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양심은 소설에서 나타난다. 일본침몰이 현실화되고 나서 각 국에 손을 내밀 때 “왜 평소에 미리미리 한국 중국 소련과 같은 이웃 나라들과 우호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냐”는 자책이 나온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여 수십 만이 목숨을 잃었을 때 유언비어가 날뛴다. 당시 일본정부는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집어넣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조선인을 학살했다.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몇 차례 상기시킨다.

정치드라마로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와 거의 다를 것 없는 여야의 정치세력다툼이나, 보스 정치, 요정정치 등도 언뜻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판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비의 노인도 등장한다.

이건 별개의 문제인데….

최근 일본이 독도에 수로탐사를 위한 조사선을 띄운다고 하여 한일간에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진 적이 있다. 일본은 정말 무섭도록 동해를 샅샅이 조사하고 다닌다고 한다. 매일매일 그 넓은 바다에 엄청난 과학장비가 탑재된 배들을 띄워 수온, 해류 움직임, 바다 밑 대륙붕 등등 샅샅이 훑고 다닌다고 한다. 단순히 과학부국의 힘 때문일까?

돈 많은 나라? 일본침몰이 현실화될지 몰라 언제나 떨고 있는 나라?

소설에서는 10개월 정도 일본 침몰이 진행되는 동안 약 7~8천 만 명의 일본인을 세계 곳곳으로 실어 나른다. 그 이후는? 제2의 유대인처럼 살아가겠지. 작가는 당초 일본침몰 이후 일본인의 유랑을 다룬 소설을 기획한 모양이다.

<일본침몰>은 지구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안겨줌과 동시에 인류문명의 종말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았던 인류, 민족, 문명, 문화들이 그렇게 사라져갔을 것이니 말이다. (박재환 2006/8/24)


[일본침몰] 고마쓰 사쿄(小松左京) 지음 (이정희 역 미래사 1992) [일본위키 小松左京|日本沈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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