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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09.03.12 11:46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

    작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소설을 지난 달 읽었다. 워낙 글 쓸 시간이 없어 미루다가 이제야 원작소설을 소개한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에단 코엔 & 조엘 코엔)가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이들 형제는 <블러드 심플>부터 시작하여 <아리조나 유괴사건>, <밀러스 크로싱>, <바톤 핑크>, <파고> 등 꽤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들 작품은 모두 그들 형제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도 했었다. 그런데 [노인을 위한 나라느 없다]는 이들 형제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작품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영화 시나리오각색 작업은 형제가 직접했다. 원작소설이 얼마나 재미있었기에 코엔 형제가 선뜻 나섰을까. 사실 난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1933년 미국 로드 아일랜드 출신의 코맥 매카시는 소설, 극본, 시나리오 등을 써온 작가란다. 2007년에는 <로드>라는 작품으로 퓰리처상도 탔단다. 그리고 그가 1992년에 쓴 <핏빛 자오선>은 타임지 선정 당대 최고의 영어작품 중에 포함되기도 했단다. (이 작품들도 모두 국내에 번역출판 되었네!) 그의 작품은 서부극, 고딕소설, 범죄물 등 다양하단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2005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책이다. 코엔 형제는 책을 건네받고 곧바로 영화로 옮긴 것이다.

점점 더 나빠지는 세상에서..

  소설은 범죄소설이다. 주인공은 텍사스의 한 컨츄리 보안관(세리프)이다. 서부시대 보안관은 아니고. 미국 영화에서 곧잘 나오는 시골마을의 보안관이다. 미국영화에서 보면 이들은 실력보다는 얄궂은 지역에서의 공권력을 기반으로 거들먹거리는 사람으로 곧잘 묘사된다. 그러다가 도시에서 온 FBI 요원들과 영역/관할다툼을 벌이곤 한다. 그런데 실제 이들 보안관의 능력은 어떨까. 서부 텍사스의 보안관 ‘에드 톰 벨’은 수십 년간 엄격한 법 집행자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왔다. 광활한 사막지역에서 벌어지는 마약 거래와 각종 범죄를 적절히 처리했을 것이다. ‘벨’은 너무 오랫동안 보안관을 했기에 이제는 슬슬 은퇴하고 싶다. (몰랐던 사실인데 미국에서는 지역 보안관도 지역주민의 선거로 뽑는 모양이다. 적어도 그곳에선 말이다) 그의 관할구역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부보안관이 범죄혐의의 용의자를 체포하여 사무실에 데려왔다가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범인은 안톤 쉬거(Chigurh)라는 놈. 이놈은 거의 사이코에 가까운 범죄자이다. 그의 직업은 힛맨(히트맨=킬러)이다. 또 한 사람의 주요인물은 루엘린 모스. 베트남전 참전용사이기도한 그의 직업은 용접공이지만 작품 속에서 용접하는 일은 나오지 않는다. 모스가 어느 날 텍사스 황야에 사냥 나갔다가 범죄현장을 목격한다. 트럭 몇 대가 서 있고 시체가 늘려 있다. 마약거래 현장인데 아마도 거래과정에서 상호 총격전이 벌어진 모양이다. 트럭에는 마약이 쌓여있다. 아마도 베트남전 참전의 경험 때문인지 ‘동물적 본능’의 모스는 핏자국을 뒤따라가다 돈이 든 가방을 얻게 된다. 100달러지폐가 가득한 돈 가방. 수백 만 달러이다. 모스는 돈 가방을 들고 ‘튄다’. 이때부터 돈 가방 추격전이 시작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안톤 쉬거의 대사에서 한번 등장한다. 안톤 쉬거가 사막의 한 가게에 들렀다가 가게 주인이 맘에 안 든다. 그러자 고압적인 자세로 동전을 꺼내들더니 앞면인지 뒷면인지를 말하라고 한다. 틀리면 죽이는 것이다. “이 동전은 1958년 거야. 22년을 돌다가 여기 온 거야.”란다. 1980년인 셈이다. 가방에는 추적 장치가 설치되어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모스는 적어도 텍사스에서는 가장 잔인하고 끔찍하고 또라이 안톤 쉬거의 추격을 받는다. 둘의 추격전에 또 다른 킬러가 끼어든다. 카슨 웰즈. 웰즈는 쉬거에 비해선 조크도 할 줄 아는 놈이다. 하지만 웰즈는 쉬거의 총에 죽는다.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킬러. 그 킬러 못지않게 살인본능과 도피에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는 모스. 이 모든 과정을 뒤따라가는 보안관 벨. 돈가방의 행방보다, 추격전의 결과가 궁금해진다.

노인은 위한 나라가 아니다

   이 소설은 전적으로 은퇴할 나이가 된 베테랑 보안관 벨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 이야기하고자하는 바를 전한다. 보안관이 보기엔 수수께끼 같은 킬러 쉬거의 행동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많은 악당을 잡아 사형장으로 보내봤지만 이 놈 행적에서는 뚜렷한 목적이나 의도를 파악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쫓기는 신세의 모스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 젊은 (소설에서는 이제 겨우 19살이다) 아내를 위험에 빠뜨리는 도주행각이 이해할 수 없다. 반면 독자가 보기엔 킬러 안톤 쉬거의 행동양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킬러로서의 프라이드와 자신만의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의뢰받은 놈은 반드시 죽여야 하고, 자신이 내뱉은 말은 반드시 행동에 옮겨야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를 처치해!’라고 의뢰한 자가 다른 킬러를 또다시 고용한다면 ‘안톤 쉬거’입장에서 보자면 그 의뢰자나, 새로 고용된 킬러나, 그리고 당초의 죽여야 할 타깃 모두 죽여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네놈의 아내도 죽이겠다.”고 한번 말한 이상 아무런 행동의 정당성이나 연관성 없이도 누군가를 꼭 죽여야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들다고? 바로 ‘벨’ 보안관은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적정한 수준에서 법집행이 이루어지고, 예방조치를 하면 모든 것이 수습될 것 같았는데 말이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일까.

  소설/영화의 제목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이다. 이런 시적(詩的)이면서 저널리스틱 제목은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에서 뽑아온 것이라고 한다. 소설 첫 페이지에 그 시 전편이 실려 있다.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 예이츠의 시 제목은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이다 시의 첫 구절은 이렇다.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 Those dying generations - at their song,
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
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
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
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
Monuments of unaging intellect.

영시 번역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 이번에 한번 해보려니 꽤 어렵다. 그냥 소설책(사피엔스 21 임재서 번역)에 나와 있는 번역을 옮긴다.

저것은 늙은 사람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서로 팔짱을 낀 젊은이들과 숲속의 새들,
저 죽음의 세대들은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취해 있고
폭포에는 연어가 튀고 바다에는 고등어가 우글거리니
물고기와 짐승과 새들은 여름 내내
나고 자라서 죽는 모든 것들을 찬양한다.
모두들 저 관능의 음악에 취하여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모르는구나

  ‘비잔티움’은 로마시대 이야기일 것이다. 세계사 배운 적은 까마득하고, 시오노 나오미의 <로마인 이야기> 책을 단 한 권 안 읽어본 사람으로서(자랑이다. 그려 --;) 비잔티움이 상징하는 것이나 당시 ‘노인공경’에 대한 시대상황을 전혀 모르겠다. 아마도 비잔티움 시대는 문화의 최고절정기였으며 당연히 절정기를 지나며 ‘젊은 것들’이 점점 그 고귀함을 잊어갔을 것이다. 시를 읽어보니 그런 기류가 느껴진다. 이런 이야기 있잖은가. 무려 4~5000년 전에 세워진 이집트 피라미드 건축물에는 당시 작업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의 낙서가 새겨져있다고 한다. 낙서 내용은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글귀라나. 애들 버릇없다는 것은 요즘 인터넷 댓글 현상만도 아니며, 해방 후 세태도 아니며, 조선시대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아니란 것이다. 모든 세대의 기성세대들은 젊은 것들의 행동거지나 말투가 언제나 걱정스럽고, 짜증스럽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벨 보안관은 나름대로 죽도록 치안과 질서유지를 위해 살아왔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긍정적인 조언을 주었지만 요즘 젊은 것들은 그 선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도하게도 총질에, 쌈박질에, 살인극을 아무렇지도 않게 펼친다는 것이다.
 
   아마, 작가 매카시가 말하고자 한 바는 그런 세태 이야기일 것이다. 작가는 지나가는 이야기로 노친네 ‘벨’의 한숨 소리를 던져놓는다. 살인과 범죄의 순간에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바를 걸쳐놓는 셈이다. 모스가 베트남전에서 돌아왔을 때 히피에게 했던 행동이나, 벨 보안관이 오래전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 받은 무공훈장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많은 순간의  어이없음의 결과물인 것이다.

   영화와는 달리 소설에서는 모스도 안톤 쉬거의 퇴장이 황당할 정도이다. 그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보안관 벨은 이 어이없는 사건의 전말을 되짚어보며 노인 특유의 혜안으로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아내만이 귀기울여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소설의 복잡한 주제를 너무 단순화시킨 감이 있다. 소설에서는 줄곧 선택과 기회비용을 이야기한다. 쉬거가 동전을 던져 사람의 운명(생사)을 결정짓는 것은 극단적인 선택이다. 모스도 그렇다. 그는 사냥에 나서는 순간부터 다른 선택을 할 기회는 많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삶의 순간을 선택했고, 결국은 그렇게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갑자기 끼어든 돌발사태란 것도 수많은 ‘기회’의 일부였을 것이다.

 영화를 봤으면 소설을 보아야할 것이고, 소설을 읽었으면 다시 영화를 보아야할 것이다. 참, 어려운 작품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박재환 200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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