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울다] 그 산, 그 남자, 그 여자 (喊·山 래리 양 감독, 2015)

2017. 8. 20. 22:13홍콩영화리뷰

반응형

(박재환 2016.6.3) 작년(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되었던 중국영화 <산이 울다>(喊 山)이 개봉되었다. <산이 울다>는 오랜만에 찾아오는 중국 정통문예물이다 중국영화가 지금처럼 현대화, 대작화가 되기 전에 장예모(장이머우)와 진개가(천카이거)가 이른바 ‘5세대 감독’으로 해외영화제에 위명을 떨치던 시절에 곧잘 만들던 토속적 스타일의 영화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 현대 인민의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첩첩산골 아니면 규방에서 펼쳐지던 인간본성의 문제를 천착한 작품이다.

영화 <산이 울다>는 중국 산서(山西,산시)성 출신의 여성작가 꺼수이핑(葛水平,1965년생)이 2004년에 발표한 중편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은 1980년대 전후하여 산서성의 오지 중의 오지마을에서 발생한 중대사건을 다룬다. 소설은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런 곳에서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는 짐작이 간다. 어쨌든 소설은 중국에서 권위가 높은 뤼신문학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산서성 태항산에서 펼쳐진다. 첩첩이 쌓인 산들. 1980년대 전후 이곳에 사는 중국인민의 모습은 빈곤하고도 한가하다. 이곳에 한충(王紫逸,왕쯔이)이라는 노총각이 살고 있고, 한충의 애비는 한충이 동네 이혼녀랑 시시덕거리는 꼴이 못마땅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산간벽지마을에 라훙이라는 남자가 가족을 데리고 온다. 그들은 다 쓰러져 가는 축사건물에 들어와서 살림을 차린다. 말 못하는 처자 홍시아(郞月婷,랑위에팅_와 어린 딸, 그리고 갓난아기까지 네 식구가 이 마을에 온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가족에게 굉장히 폭력적이다. 분명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녹두죽을 만들어 파는 한충이 산속에 산짐승을 잡으러 설치한 폭약이 터지면서 하필 라훙이 크게 다친다. 마을은 난리가 나고, 집으로 실러온 그 남자는 곧 숨을 거둔다. 일이 크게 번지는 것을 우려한 산골마을 사람들은 작당을 한다. 공안에 알리지 않고, 그냥 한충이 남은 그 남자의 가족을 보살피는 선에서 사고를 수습한다. 그런데 남편이 죽었는데 기이한 반응을 보이는 여자. 그냥 미친 것으로만 보였지만 한충이 그 여자와 가족을 돌보며 조금씩 그 여자를 이해할 것 같다. 그리고 죽은 남자의 과거, 남은 여자의 진실, 그 가족의 슬픈 사연이 밝혀진다. 한충이 마음을 쓸수록 일은 꼬여가고, 어느날 이 산간벽촌에 공안이 나타난다.

5세대 감독들과 달리 이 영화를 감독한 양쯔(楊子,래리 양)은 뉴욕에서 자랐고, 영국 에딘버러대학에서 공부하고, 다시 북경전영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한 신세대 중국영화감독이다. 원작소설은 이미 중국에서 한 차례 영화화 되었지만 양쯔 감독은 소설에 매료되어 시나리오 작업을 했고, 여러 영화제의 펀딩과정에서 주목받았다. 베이징영화제와 깐느, 그리고 부산영화제에서 차례로 지지를 받으며 마침내 영화로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이 영화는 여태 중국에서 개봉을 못하고 있다. 심각한 정치를 다룬 것도 아니고, 중국의 사법체제를 비웃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더더군다나 중국 사회체제를 힐난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중국극장가도 이제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만이 극장에 내걸리고, 이런 문예물은 우리나라 독립영화만큼이나 푸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하튼, 국제영화제를 돌면 상영되던 이 영화가 '세계최초'로 한국에서 정식개봉되었다.

말 못 하는 여자(벙어리) 주인공으로 나온 랑위에팅은 원래 피아노연주자였다. 두기봉 감독의 작품 <블라인드 디텍티브>와 <화려한 샐러리맨>에 나왔고, 최근 촬영이 끝난 한중합작영화 <역전의 날>에서 이정재와 공연했다.

이 영화를 촬영한 곳은 중국 산서성 태항산이 있는 팽순현이다. 대형 스크린에서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산수풍경을 볼 수 있다. 그 날 - 폭약이 터지던 날 -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산은 알고 있을 것이다. 말 못하는 벙어리 랑위에팅은 그 산에서 목 놓아 소리지른다. 관객들은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박재환)

[바이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