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후산부 동구씨] 진짜 막장드라마 연극 ‘후산부, 동구씨’ (2016년 CJ아지트대학로)

2017. 8. 19. 21:10공연&전시★리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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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후산부,동구씨 공연: 2016/08/11 ~ 2016/08/28 CJ아지트 대학로(구 SM아트홀)
작:이상범 연출:황이선
출연: 오민석 윤광희 문병주 김용운 이준희 이인석 이현주 윤효원 

(박재환 2016.8.12) 지금은 사라진, 그래서 어린 세대는 잘 모르는 단어가 있다. ‘연탄집게’, ‘구공탄’, ‘연탄까스중독’ 등. 해마다 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뉴스를 장식했었다. 지금은 연탄 사용하는 곳이 아마 특별한 고깃집, 비닐하우스 말고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한때는 연탄, 석탄산업이 한국산업의 동력이었고 겨울이면 집안을 따뜻하게 데우는 에너지원이었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후산부, 동구씨>이다. ‘후산부’는 ‘구공탄’만큼이나 알 수 없는 말이다. 작품을 보니 ‘탄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서툴고 미숙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란다. ’초짜 탄광부‘ 김동구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작품의 배경은 1988년이다. 무대 한쪽에 자리잡은 북, 징, 꽹과리가 분위기를 돋운다. 서울올림픽이 화려하게 개막되었다고 흥분해서 떠든다. 무대에 광부복장의 네 배우가 자리를 잡고 있다. 세 명은 함박웃음을 한 채 스톱모션이고 한 남자는 무대를 향해 절을 한다. 이어 ‘충청도 희락탄광’이라는 가상의 탄광 지하 막장을 보여준다. 네 명의 광부는 오늘도 채탄작업에 땀을 흘린다. 때로는 농담도 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도 하고, 집에 남은 가족에 대한 염려도 한다. 힘들지만 행복한 노동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갑자기 갱도가 무너지며 이들은 고립된다.

 

워낙 광산/탄광 붕괴사고가 잦은 나라이다 보니 구조작업이 즉시 펼쳐질 것이다. 서울에서 높은 분들이 달려온다. 동력자원부 보안기술 직원, 인근소방서 소방대장, 작전참모. 탄광소장은 쩔쩔 매며 현 상황을 브리핑한다. 비가 올 것이라는 소식. 구조장비가 도착하려면 며칠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 대책회의는 윽박지르기와 책임 떠넘기기로 이어진다.

 

그 사이, 매몰된 광부들은 처음에는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도 부르고, 농담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집에 남은 가족의 이야기도 하지만 점점 상황은 악화된다. 이들은 살아서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서울올림픽의 열광 속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높으신 분들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후산부 동구씨’의 이야기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 <터널>은 2016년의 이야기이다. 막 개통된 터널이 붕괴되고 그 안에 갇힌 하정우의 케이스를 통해 다양한 한국의 문제를 들려준다. 당연히 부실공사로 만들어진 터널, 인명보단 특종에 눈이 먼 언론들, 사건이 나면 달려와서 인증샷을 남겨야하는 고관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지쳐가는 사람들. 제 아무리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라고 외쳐도 어느 순간부턴 “산 사람은 살아야제...”라는 변명과 자기합리화가 중론이 되고, 여론이 되고, 운명의 한 수가 되어 버린다.

 

연극 <후산부, 동구씨>는 30년 쯤 전의 한국의 이야기를 다룬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1988년에는 대한민국 가정의 78%가 연탄을 주 연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아마 이 때를 전후하여 연탄사용은 급감했을 것이다. 88서울올림픽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보신탕가게가 쫓겨나고, 판잣집이 철거되고, 노점상이 내몰리는 이야기가 함께 거론된다. 세계인에게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높은 분들의 노력과 열정’이 그런 식으로 곧잘 희화화된다. 이 작품도 그 연장선상에 있긴 하다. 온 국민은 금메달의 열광에 취해 있었다. (서울올림픽 때 한국은 종합 4위를 했었다!) 물론, 1988년에 탄광 붕괴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설정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모순과, 급속도로 현대화되어 가는 산업구조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막장에 갇힌 광부들은 휴먼드라마를 펼치지만 서울에서 내려온 관리들이 탁상공론 떠드는 구조대책은 블랙코미디다. 배우들은 바닥에서 광부를 연기하다, 곧 계단 위쪽으로 올라가 관리로 각자 1인 2역의 연기를 펼친다. 연극 후반부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연극이 끝나면 박수 소리가 탄광, 아니 작은 극장을 가득 채운다.

 

동구 씨가 비겁하게나마 말하고자 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관객은 안다. 애국심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막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매몰된 광부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영화 <터널>을 보신 분, 구공탄의 인간적 뜨끈뜨끈함을 몸으로 기억하시는 분들, 그리고, 한국사의 ‘막장’ 드라마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후산부, 동구씨>를 추천한다.

 

이 작품은 극단 뚱딴지의 창작품으로 CJ문화재단의 '크리에이티브마인즈 공간지원 선정작'으로 대학로 CJ아지트에서 28일까지 상연된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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