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웹툰, 드라마에서 타임슬립한 주인공이 새로운 로맨스를 펼친다는 것은 이젠 너무나 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너무 흔해서 이제는 게으른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벼락 맞고 깨어나니 다른 세상,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와있다니? 지난 달 개봉된 야스다 준이치 감독의 <사무라이 타임슬리퍼>(원제:侍タイムスリッパー)도 그런 클리세 범벅의 코미디이다. 도대체 140년의 시간을 건너뛴 사무라이 칼잡이가 현대의 일본사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신세계에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와, 차가 다니네!” “와,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네!”, “흑, TV에 사람이 나오다니..” 혹은 “조각 케이크가 너무 맛있네!”일까. 관객들은 무사의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저것도 신기하죠?”하면서.
영화는 에도막부 시절 말기의 상황에서 시작된다.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이 이끌던 군함(‘黑船’)이 개항을 요구했던 그 시절이다. 칼을 든 무사, 사무라이에게는 그 시절이 드라마틱할 수밖에 없다. 막부의 쇼군에 목숨을 건 아이즈번(会津藩)의 무사와 천황을 끝까지 지키려는 조슈번(長州藩) 무사들의 이야기가 많이 극화된다. 이 영화에서도 아이즈번의 무사 코사카 신자에몬(야마구치 마키야)이 한밤에 적진에 침투 칼싸움을 펼치면서 시작된다. 칼과 칼이 부딪치고, 신념과 신념이 포효하는 순간 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번쩍 하면서 무사는 쓰러진다. 깨어나 보니, 타임슬립! 하필이면 2007년의 영화촬영장 세트장이었다. 어리둥절 상황파악에 나선 사무라이는 신문물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출신이 칼잡이이니, 시대극 엑스트라로는 최적이다.
진시황의 호위무사 장예모가 1930년대, 그리고 현대의 중국으로 타임슬립한 영화 <진용>이 꽤 인기를 끌었고, 최근 임지연의 드라마 <멋진 신세계>까지 타임슬립하는 작품은 몇 가지 특성이 있다. 한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시대를 건너뛰어도 그 재주, 재능을 제대로 발휘한다는 것이다. 에도막부 시절의 하급 사무라이가 일본근대사 역사교수가 되는 것보다는, 올림픽 펜싱국가대표가 되는 것보다는 역시 시대극 엑스트라가 적격이다. 그렇게 용맹무비하게 칼을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 적당히 몹신의 병풍이 되어, 고함지르고, 악쓰다가 오만인상 찌푸리며 땅에 쓰러지면 된다. 일본 시대극에서 칼에 맞아죽는 역할을 하는 전문 엑스트라인 '키라레야쿠(斬られ役)'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카메라 앵글에 잡힌 그의 연기가 너무나 리얼해 금세 시대극의 총아로 떠오른다.
야스다 준이치 감독의 <사무라이 타임슬리퍼>는 제작비 단 2600만 엔으로 완성된 저예산 독립영화이다. 일본 현지에서 단관 개봉 후 폭발적인 입소문을 타고 상영관을 확대해 10억 엔이 넘는 흥행 수익을 올린 기적의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은 일본 사무라이 시대극의 클리세를 잘 활용한다. 천황과 쇼군은 너무나 높은 이야기이고, 하급 무사로서 ‘자객’정도로 소모되는 칼잡이가 타임슬립되었을 때 그의 무사도는 어떻게 유지될지 코믹하게 보여준다. 진공청소기나 조각케이크에 당황하던 그가 바뀐 시대에 바뀐 직업에 소소하게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무라이’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는 정통시대극도 쇠퇴했다. 명맥만 유지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묵묵히 몸을 던지는 스태프와 엑스트라들의 열정이 느껴진다.
과거 일본에서 사무라이 사극이 전성기를 누릴 때, 우리나라는 대중문화 개방 전이었다. 우리는 뒤늦게 <킬 빌>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러링된 사무라이 정신을 역수입해 본 셈이다. <사무라이 타임슬리퍼>의 후반부는 이처럼 사라지고, 왜곡되고, 잊힌 정통 사극의 장인 정신이 폭발하는 구간이다. 영화 촬영장에서 펼쳐지는 두 무사, 신자에몬과 쿄이치로의 마지막 진검 승부는 저예산 독립영화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CG나 특수효과로 과잉 장식된 가짜 결투가 아니라, 배우들의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영화에서 타임슬립한 사무라이는 "무사나 사극이 사람들에게서 잊힌다 해도, 오늘이 그날은 아니다."고 말한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해 신념이 퇴색되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무사도를 전해준다. 클리셰를 빌려 장르의 생명력을 증명한 소박하지만 강력한 작품이다. (박재환.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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