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야마 부시코] 살아남고, 대를 잇는 법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楢山節考/ The Ballad of Narayama,1983

 스페인에는 아직도 해마다 좁은 골목길에 황소들을 풀어놓고 달음박질을 하는 풍습이 있다. 소에 밟혀 중상을 입는 사람들이 속출하지만, 전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는 전통놀이이다. 그리고 또 어떤 나라에는 불덩이를 상대 측에게 집어 던지는 풍습도 있다. 불 대신 돌멩이를 서로 집어던지는 종족도 있고 말이다. 물론 조금 다르지만 식인종이 아니면서도 식인 풍습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단다. 아프리카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수십 미터 나무에서 발끝에 줄을 매달아 뛰어 내리는 풍습이 있다. 땅바닥에 부딪혀 절명 하면 끝이고, 살아나면 성인으로 대접 받는 것이다. 번지점프의 유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코사크 족은 갓 태어난 아기를를 차가운 강물에 담겨 살아남으면 키우고 죽으면 버린단다. 아프리카에는 남성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할례를 시킨다. 과다출혈로 죽는 경우가 많다. 이들 모든 풍습은 오늘 날의 문명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 혹은 지리적, 기후적 여건에 비추어 보자면 전혀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를 보자.

 영화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풍습이 설명되어 있다. 살아남기 힘들었던 시절. 사람들은 그들만의 원칙을 정한다. 결혼은 장남만이 할 수 있고, 아이를 낳아도 두 번째 아이가 사내라면 버려지고, 여자아이라면 한 줌의 소금과 맞바꾼다. 남의 음식을 훔치는 것이 가장 큰 죄로 그 가족은 산 채로 매장된다. 그리고 누구나 나이 들어 '70'이 되면 산속에 버려진다. 그러한 습관은 수백 년 전 일본의 한 산간 마을에 있었던 풍습이(란)다. 한겨울 눈이 마을의 집들을 폭 뒤집어설 만큼 내리는 이 태산준령 산골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네의 보리고개나 보쌈, 혹은 고려장보다 훨씬 치열한 인간생존의 욕구가 깔려있는 풍습인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새하얗게 눈덮인 산을 보게 되고, 눈 속에 파묻힌 집들을 보게 되고, 눈이 녹으면 내버려져 얼어 죽은 신생아의 시체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살아서 다른 '食口'의 짐이 되느니, 죽는 것이 나았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마을의 일상사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상당히 우습게 진행된다. 

주인공 다츠헤이는 아내를 잃었고, 이제 나이 '69'살인 어머니가 있고, 개망나니 같은 아들이 있고, 결혼 못한 동생이 있으며, 그 밑으로 올망쫄망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마을에는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음에 닥칠 겨울을 대비하여 이런저런 준비를 하며,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동네 아이들은 이제 이번 겨울에 산에 버려질 나이 '70'의 할머니에 대해서 조롱하는 노래를 부르고, 그 나이가 된 노친네들은 담담하게 그런 풍습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든지 해야할 것이다. 나이가 찼지만 결혼 못한 사내는 동네 흰둥이에게 욕정을 풀어야할 것이고(獸姦), 남편의 유언에 따라 액땜을 위해 동네 마을 모든 남자와 정을 통해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동생을 위해 아내에게 하룻밤 자라고 하기도 하고(형사취수의 현실적 버전), 도둑에 대한 린치도 가하고... 그야말로 쇼킹 자판, 몬도가네 일본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 사회풍습은 기후지리적 여건에 의해 받아 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힘든 상황이 계속되면 인륜이나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가장 적합한 생존의 법칙이 만들어지고, 그러한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이데올로기가 형성된다.

  영화에서 중년의 아들 다츠헤이와 그의 '70'된 모친 오린에게는 이러한 엽기적 풍습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결국은 그러한 풍습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되면서, 관객에게 상황이 인간을 만드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한다. 다츠헤이의 아버지는 오래 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산골짜기에 내다 버려야하는 그러한 풍습에 반발했었다. 그러면 마을 사람은 효심이 지극한 아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용기 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다. 이제 다츠헤이가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오린은 '70'이 되었지만 튼튼한 이를 가졌고, 여전히 집안 일을 해내는 사람이었지만, 이번 겨울에는 입이 더 생겼다. 그러니 식구를 살리기 위해선 자신은 반드시 나라야마에 버려져야 하는 것이다. 노인은 우물가 돌에 자신의 튼튼한 치아를 부딪쳐 피투성이가 되어 이를 부러뜨린다. 이제 자신은 이도 없는 노약한 신세이니 나라야마에 버려져도 된다고 아들 '다츠헤이'에게 말한다. 마을은 여전히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겨울을 날 식량을 비축하지 못한 사람은 양식을 훔치고, 그들은 마을사람에 의해 생매장된다. 이러한 마을의 분위기는 '70'노인의 운명을 더욱 옥죈다. 동물의 세계에는 이러한 약육강식, 생존의 법칙이 존재하지만 인간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룰이 있다는 충격적인 진행을 조금씩 지켜보게 된다.

 영화는 줄곧 인간과 동물과 곤충의 사회를 보여주며, 그 사회와 그 교미, 그 섹스를 보여준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 내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종을 이어가는 지극히 단순한 그림판이기 때문이다. 몇몇 헤프닝이 지나가고 이제 오린 할머니는 나라야마에 버려질 시간이 다가온다. 관객은 여태 설마설마 하다가 이제부터는 숨죽이며 그 엽기적 행위를 바라만 보아야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등에 지고 가파른 산을 타고, 첩첩산중으로 가서는 어머니를 내려놓는다. 그 주위는 온통 해골과 썩어가는 시체, 그리고 새로운 사냥감을 기다리는 까마귀만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아들은 운다. 하지만 어머니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아들은 돌아서서 산을 내려오려 할 때, 첫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들은 돌아서서 어머니에게로 달려가고 어머니는 이미 흰눈에 이만큼 파묻혀 죽을 운명을 기다린다. 아들은 비틀 대며 집으로 돌아오고, 집안에는 이미 아내와 며느리가 할머니의 옷을 나눠 입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또 한번의 겨울 속 파묻힌 눈 속의 집안에서 자연의 무심함과 인간의 잔인함을 엮어나가는 것이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나가노의 한 산골 마을에 2년을 파묻혀 살며 이 영화를 만들어 내었단다. 영화는 자연 속의 인간을 붙잡는다. 그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 그것은 그들이 살아남아 자손을 낳고, 인류라는 종을 영속 시키는 가장 잔인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정말 살아가며 가슴에 남을 영화이다. (박재환.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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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 (원제: 楢山節考)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출연: 오가타 켄, 사카모토 스미코, 바이쇼 미츠코 ▶개봉: 1999년 10월 30일 ▶상영시간: 130분
박재환 영화리뷰 kinoc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