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웹툰 <들쥐>가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3년 동안 골방에만 머물며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 제문재에게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다. 은행 계좌가 끊기더니 곧이어 ‘자신이 자신이 아닌’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제문재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야 한다. 작가 ‘제문재’와 자신의 모든 것을 몽땅 빼앗은 ‘들쥐’를 동시에 연기한 류준열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재밌게 봤다더라. 오랜만에 내 작품을 보고 DM을 많이 보내주었다. 진짜 재밌게 본 모양이다. 내 동생도 주말에 <들쥐>를 몰아봤다고 하더라. 작품 평가에 냉정한 편인 애다.” 공개 뒤 주위의 반응이 어땠냐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Q. 1인 2역을 연기한 셈이다. 부담스럽지 않았는지.
▶류준열: “부담스러웠다. 영화 <올빼미>를 할 때도 그랬다. 류준열이 시각장애가 있는 게 아니란 걸 다 아실 텐데 그런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 <들쥐>에서의 1인 2역도 그렇다. CG든 카메라 워킹이든 두 사람이 다 나란 것을 알고 볼 것이다. 그래서 조명 트릭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이번엔 시청자들이 그런 것을 인지하고도 몰입해서 봐주신 것 같다.” (캐릭터 구분은 어떤 식으로 설정을 잡았는지) “콘셉트는 ‘내 돈 뺏은 놈을 잡으러 간다’이다. 들쥐를 연기하는 그 들쥐를 연기하는 것이다. 그런 캐릭터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Q. 1인 2역을 연기하는데 특별히 차이를 둔 부분이 있는지.
▶류준열: “제 목소리가 다양한 편이다. 들쥐는 하이톤으로 잡았다. 외적으로는 과하게 분장하지는 말자고 했다. 은은한 변화를 주었다. 귀를 약간 다르게 분장했는데 스태프들도 잘 모르더라. 렌즈도 꼈다.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다. 가족들이 보면서 ‘눈에 뭐 했니?’라더라. 얼굴에 점도 찍었다. 묘하게 다르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눈치채신 분이 많았다.”
Q. 제문재가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의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이 나온다. 이런 문재가 이해되는지.
▶류준열: “내가 들쥐였구나, 이해가 된다. 들쥐도, 문재도. 인간은 워낙 약한 존재니까. 그런 행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Q. 설경구와의 케미는 어땠는지.
▶류준열: “10년 전 처음 같은 소속사에 들어올 때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그사이에 함께 연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어긋나더니 드디어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되었다. 지금 만나 다행이다. 예전에 만났더라면 어린 마음에 많이 배우려고만 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만나니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사실 동료든 선배든 후배든 연기자들끼리 연기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경구 선배는 그런 게 없다. 내가 보는 노자는 이러이러하다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선배는 내 의견에 ‘그 아이디어 너무 좋다’거나 ‘그거 아냐 인마’ 하는 식으로 편하게 대해 준다.”
Q. 제문재나 들쥐의 캐릭터 설정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나. 주민등록이나 지문, 혹은 동창들이 그렇게 못 알아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류준열: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아마 친구들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들쥐>에서의 설정은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알아봐 주느냐는 것이다. 다른 느낌이 분명 있다. ‘닮기는 했지만… 아니야’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알 것이다. 동창에게 한 이야기는 헷갈리게 해놓고, 분위기만 바뀌어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경험이 너무 많다 보니 내가 깊게 믿었던 게 사실 기억의 왜곡이거나 스스로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했던 것일 수 있다. 인간의 나약함이 만든 결과 같다. 저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Q. 액션이 넘쳐나는 영화에서 주인공의 액션이 적다.
▶류준열: “편의점 액션이 힘들었다. 액션은 경구 형이 다 했다. 액션 신 찍을 때는 쉬어가듯 편하게 임했던 것 같다. 카체이싱 장면 같은 경우는 차 구경도 못 했다. 이게 이 작품의 묘미 같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3~4일 푹 쉬었던 것 같다. 액션 장면은 고민이 많다. 주먹을 쓸 때, 맞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을 많이 하게 된다. 그렇게 준비하고 합을 맞추는 게 재밌다. 유리창 깨지고 화장실로 걸어가는 장면 같은 경우 저의 아이디어가 반영되어 더 재밌었다.”
Q.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인가. 이번에 어떤 아이디어를 냈는지.
▶류준열: “엔딩에서 화장실로 걸어가면서 옷 갈아입는 장면이 나온다. 옷 벗고 샤워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감독님께 굳이 보여줘야 하는지 물어봤다. ‘몸이 좋잖아~’라며 설득하시더라. 그 장면에서 들쥐가 되어가는 모습으로 화장실을 향해 걸어가는 동선이 재밌을 것 같았다. 배경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지니 화면의 명암이 교차되며 얼굴을 비추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았다. 마침 감독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
Q. 영화 제작이나 연출에 관심이 있는지.
▶류준열: “그렇진 않다. 연기를 하면서 그런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더 생동감 있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연출엔 관심이 없다. 제 영역이 아닌 것 같다. 감독은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 좋은 기획이 있으면 관심이 가지만, 감독님과 배우, 스태프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Q. 인간의 심연을 건드리는, 본성을 다루는 작품에 끌리는지.
▶류준열: “출연작들을 보면 그런 이야기에 좀 끌리는 것 같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감정들을 계속 탐구하고, 그것을 세밀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이 재밌다. 장르 영화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많이 연기하고 싶다. 사진전을 연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다 보니 책도 그런 분야를 많이 읽게 된다. 최근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을 읽었는데 너무 재밌었다. 그런 이야기에 흥미를 많이 느낀다.”
Q. 나쁜 놈들이 많이 등장한다. 누가 최고의 빌런인가.
▶류준열: “개인적으로는 빌런이 없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절대적인 악역이 있다기보다,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가다 보니 이런저런 선택을 하게 된 인물들이다. <계시록>에서 내가 맡았던 목사도 하느님을 굳게 믿고 행동하는 인물로 보이도록 연기했었다.” (김성오, 현봉식, 박종환 배우의 악역에 대해서는?) “그들도 전형적인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대본을 보면서 ‘이 인물이 이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먼저 생각한다. 재미로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라도 그 내면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결핍이 있다. 편의상 악역이라 부를 수는 있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굳이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려 하지 않는다.”
Q.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쉽게 빠져나오는 편인지.
▶류준열: “제가 기술적으로만 연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메소드 연기에 매몰되어 너무 깊이 빠져들지도 않는다. 연기할 때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방식은 지양하려고 한다. 그런 현장일수록 일상과 캐릭터를 강제적으로라도 분리해 생각하려 한다. 맡은 바 최선을 다하되,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것이 저만의 원칙이다.”
Q. 작품 공개 후 평가나 댓글을 찾아보는 편인가.
▶류준열: “의식적으로 댓글을 보지 않는다. 인간이 워낙 나약한 존재라 그런 반응에 쉽게 휩쓸리기 때문이다. 데뷔하고 보니 연예 기사는 사소한 일도 처음 생각보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경우가 많더라. 주변에서도 그런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인지 나도 잘 안 보게 된다. 대신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 감동을 주는 콘텐츠를 의식적으로 찾아본다.” (그런 반응에 억울함이나 피로감을 느끼진 않나?) “아니다. 배우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Q. 결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류준열: “열린 결말이라고 본다. 감독님은 악인이 응징당하는 결말로 연출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저는 마지막 표정을 통해 ‘세상살이가 참 만만치 않다’는 점과, 그럼에도 살아가려는 생존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응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김성오가 찾아왔을 때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까,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치열하게 살아낸다’는 감정에 힘을 줬다. 시즌2가 나오기는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바득바득 버티며 살아가는 들쥐를 표현하고 싶었다.”
Q. 만약 뒷이야기를 상상해 본다면?
▶류준열: “김성오와 한바탕 격돌하면서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그를 쓰러뜨리든 본인이 당하든 간에, 들쥐는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을 인물이다.”
Q. <들쥐>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비교하는 시선도 있다.
▶류준열: “댓글에 그런 반응이 있더라. 그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다. 이 작품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의 일이다. 대본이 앞부분만 나온 상태였는데, 자신의 신분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설정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뒷내용이 너무 궁금했다. 마침 그때 박찬욱 감독님을 뵐 일이 있어 막국수를 먹으며 ‘이런 내용 어떠세요?’ 하고 여쭤봤다. 감독님께서 무척 흥미롭다고 말씀해 주셨다. ‘박찬욱 감독님도 흥미로워하시는 이야기구나’ 싶어 작품 출연을 결심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Q. 류준열에게 <들쥐>는 어떤 이야기인가.
▶류준열: “질투와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깊이 공감했다. 저 역시 그런 감정을 품고 산다. 사소해 보이는 감정이 때로는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고전 서사시 <오디세이아>나 트로이 전쟁 이야기만 봐도 인간의 지극히 사소한 감정에서 거대한 비극이 시작되지 않나. <들쥐>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쌓이고 응축된 감정들이 터져 나오는, 대단히 인간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다.”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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