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나홍진 감독의 거대한 농담 (HOPE,2026)



  한때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던 미드 <로스트>가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는지 기억하는지. 비행기가 추락했고, 누군가는 살아남았고, 온갖 기이한 시련과 역경을 헤쳐 나가며 밝은 빛을 보지 않았던가? 아니면 이 거대한 이야기가 시작에서 보여준 비행기 추락하며 다 죽어버린 사람들의 영혼의 이야기, 꿈속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각자 편한 데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니면 드라마를 다시 찬찬히 보든지. 여기 그런 영화가 한 편 극장에 도착했다. <황해>, <추적자>, <곡성>의 명감독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이다. <호프>는 특정시대, 특정지역에서 일어난 불가사의한 ‘하루’의 일을 담고 있다. 관객들은 보면서 저 사람들은 “왜, 어째서, 어떻게?”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고,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그래서, 외계인은 어떻게 되는데?”하면서 허탈해 하며 나홍진 감독의 머릿속, 혹은 금고 속에 고이 모셔둔 후속편 시나리오를 훔쳐보고 싶어질 것이다.   

● 1980년, 읍내 뒷산에 외계생명체가 나타났다

 ‘내무부 치안본부’ 명의의 “침투는 밤낮 없고, 신고는 휴일 없다”라는 간첩신고 격문이 나붙은 DMZ지역 호포읍의 순경 범석(황정민)은 도로에 죽어있는 소의 사체를 들여다보고 있다. 곰이 한 짓인지 호랑이가 한 짓인지 알 수 없다. 황정민은 ‘칼빈 소총’을 든 성기(조인성)와 동네 청년들을 산으로 보낸다. 호포읍내는 이미 정체불명의 존재가 마구 휘저어 쑥대밭이 된 상태이다. 이제 운전 잘하고, 총 잘 쏘는 순경 성애(정호연)와 동네사람 이상희, 그리고 마을사람과 함께 외계인과 수사-추적-전투-카체이싱 대전을 펼치게 된다.

 전작 <곡성>에서 영화팬의 심장과 뇌를 요리하는데 절정의 솜씨를 발휘한 나홍진 감독은 <호프>에서도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얼핏 보면 단순한 추적극, 시대착오적 해프닝 같은 이야기를 열린 미스터리와 불완전한 캐릭터로 확장 가능한 자발적 스노우볼로 만든다. 

 이야기의 배경은 DMZ지역이란다. 관객은 ‘간첩’과 ‘1980년’에 낚이면서 ‘반공’집체의식이나 국민총력투쟁의 시대정신에 동참하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공산세력, 무장공비, 불순세력의 침투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은유나 메타포도 아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 아마 감독은 관객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은근히 기대할지도 모른다) 해술이 아저씨의 ‘호랑이’가 농담같이 언급되면서 왜 ‘虎’浦가 아니라 ‘號’浦라고 했을까 하는 짧은 의문을 남기며 영화는 범석을 따라가게 만든다. 저 산속에는 곰이 있을지, 호랑이가 있을지, 아니면 진짜 ‘자연인’이 있을지 모른다. 

● 마을사람: 인간은 먹고, 쏘고, 싼다

이 영화 최대 미스터리는 DMZ지역인데 군인은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감독은 호포읍을 재설계한다. 인근에 불이 났고, 여덟 명밖에 없다는 예비군이 진화작업에 동원되었다는 것. 순찰차가 질주하고, 바미기르가 휘젓고 다닐 때 읍내는 텅텅 비어있고 시체만 곳곳에 나뒹굴고 있다, 군인과 예비군의 빈자리에는 자경단이 채운다. 할아버지, 할머니, 동네사람들이다. 어디서 났는지 각종 총기, 화약류가 트럭에 가득, 차에 가득이다. 캘빈도 있고, M16도 있고, 유탄발사기도 있고, AK17도 있다. 외계인이 도처에 있으니, 그런 무기의 출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한국인은 총을 잘 다룬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그런 호포읍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가며 몇몇 ‘거슬리는/튀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괴생명체를 추적하기 바쁜데 앉아서 주먹밥과 시뻘건 총각김치를 우걱우걱 먹는다. 트럭에서 마을사람(김기천)이 범석에게 감자를 권하고, 호포중학교에 설치된 야전병원에서는 의사가 성애에게 고구마를 건네준다.(피 묻은 수술장갑을 낀 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우리의 해술아저씨는 줄기차게 ‘급똥’ 이야기를 펼친다. 히치콕의 매거핀인가? 어쩌면 외계인의 지구인 관찰일지 모른다. 황석정이 전기톱까지 이용해서 외계인을 해부할 때, 외계인은 지구인을 그렇게 분석하고 있는지 모른다. 

● 외계인: 쿠얼, 조르, 칼리, 마베이요...

 그런데, 그 외계인은 지구에 왜 왔을까. 그것도 위험한 DMZ에 말이다. <이티>가 식물학자였다면 이들은 동물학자쯤 되나? ‘소’는 되는데 왜 ‘말’은 안 될까. (영화에 노새인지 당나귀인지 수레를 끄는 장면이 잠깐 등장한다. 감독은 이 동물은 왜 넣었을까?) 작은 우주선 하나(구형)면 될 것인데, 왜 엔터프라이즈급 모선이 등장하고, 그 모선은 왜 폭발하고, 왜 하필이면 그 때 그곳에 추락할까. 그것보다 더 이상한 것은 비행체가 폭발하면 엔진부분이 폭발할 것인데 이 모선은 “이건 CG에요!”라고 알려주듯이 곳곳을 폭파시키고 불꽃을 내뿜을까. 그 정도 긴급사태면 비상탈출선이 나올 텐데 없다. 이것만 보더라도 지구인은 그 외계인들에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나홍진 감독도 게르투 항성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속편 만들 때까지 더 공부해야할 듯하다)

 어쨌든, 조르와 황제는 어린 세자가 지구 보고 싶다고 해서. 보내줬다가 사냥꾼 양배(음문석)를 만나 그 사달이 난 것이다. 세자가 없어졌으니 난리가 났을 것이고 수색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우주선은 왜 폭발하나? (우리는 게르투 항성에 대해 모른다고 했잖은가) 대신, 엉뚱하게 양배를 몰아세운다. 직업이 뭐라고? ‘목수!’ 목수라고? 맙소사. 성(聖) 요셉이란 말인가? 그래서 “3몰 남았어“라는 대사가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부활하는데 심장은 왜 꺼내지? 

아마, 관객들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후반부를 본다면 (물론, 영화를 처음 볼 때는 말 달리는 조인성의 활약에 ”오빠 사랑해요“라고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황정민이 말하는 ”그냥 이상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 나홍진 감독: ”관점이 중요합니다“

 나홍진 감독은 원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 <놈놈놈>처럼 말 잘 타는 한국인이 DMZ에서 외계인과 결투를 펼치는 블랙코미디? 감독은 인터뷰에서 ’퍼스펙티브와 긍휼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지구인의 온갖 우스꽝스러운 대처를 보면서 본능적으로 웃고, 감탄하며 영화를 따라가다가도 외계인의 눈물방울이나 머리에 구멍이 난 어린 외계인, 해부당한 외계인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들어야할까. <아바타>에서라면 지구인이 침략자이니 토착인들의 항쟁이 정당할 것이다. 여기선?  물론, 외계인과의 첫 접촉에서는 오해가 생기고, 살육전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를 모르고 우리도 그들을 모르니. 그리고, 아직 나홍진 감독의 무궁무진한 세계관을 이게 겨우 ’4장‘만 익히고 있으니 말이다. 

 <로스트>의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J.J. Abrams)는 이야기의 원칙에 대해 '미스터리 박스(Mystery Box)'이론을 말한 적이 있다. "열어보지 않은 상자는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미스터리는 지식보다 강력하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것보다,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호프>는 속편이 나오면 해설서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 박스를 봉해야, 걸작으로 남는 것이다. <호프>는 충분히 걸작이다.  (박재환.2026)

▶호프(HOPE) ▶감독/각본 : 나홍진 ▶출연 :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with 알리시아 비칸데르, and 마이클 패스벤더 ▶개봉:2026년 7월 15일/15세이상관람가/1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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