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꾸준히 가족의 형태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재혼/입양가족, 혈현/비혈연 가족, 이런 가족, 저런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행복한 가족이란 어떤 것인지를 파고든다. 그 가족의 범위에는 인간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신작 <상자 속의 양>에서는 안드로이드로 부활한 아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아이는 인간인가, 가족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멀지 않는 미래,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오토네와 켄스케 부부는 담담히 슬픔을 삼키며 살고 있다. 이들 부부는 2년 전 아들 카케루를 전철 사고로 잃었다. 어느 날 그들 앞으로 ‘리버스’라는 신종서비스회사에서 ‘신형 안드로이드 제품’을 소개해 준다. 카케루가 남긴 사진, 동영상등을 데이터베이스로 재구성하여 생성형AI와 피지컬 안드로이드를 완성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카케루를 똑 닮은, 카케루와 진배없는 안드로이드가 돌아온 것이다. 오토네는 금세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에 빠져들고, 켄스케는 징그러운 대체품에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함께 지내면서 2년의 슬픔은 사라지고, 어느새 ‘카케루’가 살아 돌아온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카케루가 ‘카케루’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카케루는 ‘카케루’가 아닌 삶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오토네도, 켄스케도 당황스럽지만 그런 카케루의 성장을 지켜보고, 결정을 내려야하는 것이다.
인간이 필요성에 의해 개발한 안드로이드는 대중매체 속에서 외계인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왔다. 때로는 인류의 다정한 벗으로, 때로는 복제인간과 AI의 진화 끝에 반란을 일으키는 존재로 극단을 오간다. 고레에다 감독은 <상자 속의 양>에서 이 복잡한 인식의 변화를 한꺼번에 보여준다.
가족구성원의 죽음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순간, 그 가족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준다. 아이는 가족을 지켜보고, 환경에 적응하고,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아마 카케루의 세상이 2층집으로 한정되었으면 그 관계는 오래갈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열려있고, 사람의 관계는 확대된다. 그에 따라 카케루의 세상도 넓어지며 또 다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오토네와 켄스케가 카케루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카케루는 카케루의 꿈을 꾸는 것이다.
고레에다 감독이 이들 부부의 직업을 건축가와 목공예가로 삼은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부는 나무와 유리도 이뤄진 건물을 짓는다. 이질적인 재료의 유연한 결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카케루는 자연스럽게 금속과 실리콘, 혹은 물질과 영혼이라는 이질적인 재료의 온전한 결합을 좇는 것이다.
완벽한 가족, 이상적 결합을 꿈꾸는 영화를 만들어온 고레에다 감독이기에 <상자 속의 양>이 보여주는 결말은 뜻밖이다.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레프리칸트처럼 인간가족의 구성원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저들만의 이상향을 건설하려고 한다.
물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리는 <상자 속의 양>은 먼 미래가 아니다. ‘리버스’는 제품을 끝없이 업그레이드할 것이고, 언젠가는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궁극적으로 결합하는 미래로 전이될지 모른다. 녹나무에 둥지를 튼 카케루는 시저가 아니니까. (박재환.2026)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