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약속> 수준이며, <미워도 다시한번>의 잉글리쉬 버전일 뿐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왔고, 원작이 피처제랄드(F. Scott Fitzgerald)라는 소설가라는 것 뿐이다. 뭐, 이렇게 써놓고 봐도 사실 오늘날 한국영화팬에겐 별로 흥미로운 요소는 아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0세기 최고의 미녀라는 소리를 듣던 배우였고, 피쳐제랄드는 <위대한 게츠비>의 작가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원작은 그의 <Babylon Revisited>이다.
프랑스 공항. 한 남자가 우거지상이 되어 파리에 들어선다. 그의 이름은 챨스 윌스. 멀리 허름한 한 신문사 건물을 그는 감회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한 카페로 들어선다. 반가와하는 주인. "몇 년만이지?" "딸 때문에 돌아왔어..." 그리곤 플래쉬 백으로 이 남자의 과거가 펼쳐진다. 때는 2차 대전의 막바지. 유럽은 이미 승전의 환호성에 빠져있고, 히로시마엔 원폭이 곧 떨어질 그 시기이다. 빠리에 나와 있는 미국 신문사 기자 (미국 군인신문 <<스타 앤 스트라이프>>가 붙은 차를 타고 있었다)인 그는 승전 프레이드에서 한 여자의 키스를 받는다. 단지 그가 미군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말이다. 이름도, 사는 곳도 물어보기 전에 인파속으로 그녀는 사라졌다. 그리고 이 기자는 언제나 가곤하던 이 카페에서 또 한 여자를 보게된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언. 미국인이었다. 그녀의 집에서 열리는 승전 파티에 초대받은 그는 그곳에서 프레이드 도중 그에게 키스한 그녀를 다시 만난다. 메리언의 여동생 헬렌이었다. 이상한 운명이었지만 결국 챨스는 메리언과 맺어지지 않고 헬렌과 결혼하게 된다.
가난한 신문기자이며 작가를 꿈꾸며 이국땅 빠리에 눌러앉아있던 챨스는 그가 쓴 세 편의 습작이 모두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으면서 점점 자신감과 의욕을 잃게 된다. 게다가 너무나 이쁜 아내에게 접근하는 한 남자로 인해 둘의 관계는 위험해질대로 위험해진다. 게다가 인터뷰 나가서 만난 한 돈많은 유부녀와의 관계도 그렇게 매끄러운 것은 아니고 말이다. 이런 저런 방황과 갈등 끝에 아내는 병으로 죽고 만다. 메리언은 챨스가 딸을 키울 능력이 없다며 양육권을 빼앗고, 그는 결국 혼자 미국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개과천선하여 파리로 와서는 그녀의 딸을 데려가데 된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우리나라 최인호나 윤후명도 이보다 더 예쁠 수 있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갈등구조는 의외로 심각하다. 한 남자의 운명을 보라. 그는 야심가이다. 그는 소설을 써서 문필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알아주는 출판사는 아무도 없다. 단지 그의 사랑스런, 너무 예쁜 아내만이 "당신은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다"라는 위로의 말을 해 줄 뿐이다. 아내는 부자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주급 70달러의 기자생활로는 그렇게 행복할 것 같지가 않다.
이때, <자이언트>같은 일이 벌어진다. 장인이 결혼선물로 준 텍사스의 황량한 유정에서 석유가 발굴되면서 어느날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 뜻대로 소설이 되지 않고, 게다가 그 백작부인을 알게 되면서 일은 꼬일대로 꼬인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한 젊은 남자-놈팽이였지만, 언제나 유들유들하게 친절과 호의를 베푼다. 제비족은 동과 서과 같은 모양이다-를 알게 되고.. 두 부부의 갈등구조는 깊어만 가다가, 어느 보기에도 추운 겨울날 일은 벌어진다.
술 취한 남편은 아내가 없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문을 잠그고 곯아 떨어진다. 그날 아내는 추위에 떨다 결국 그 일로 죽는다. - 물론 , 연애 당시 그녀가 우산없이 빗속을 걷다 폐렴증세로 입원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녀가 추위에 약하고, 또한 남자의 사려깊지 못함을 보여줌으로써, 그 원죄가 어디있는지를 은연 중에 내비친다. 물론 메리언이 여동생의 딸을 넘겨주려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이해가 간다. 실제로 챨리를 먼저 사랑했던 것은 자기였으니 말이다.
이 영화는 2차대전이 끝난 후 파리에서 벌어지는 미국인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점령군도 아니고 정복자도 아니다. 하지만, 당시의 낭만적인 기록사진-한 군인과 여자의 기막히게 멋진 키스씬을 기억해 보라!-으로 보자면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을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금 덜 낭만적인 아시아판도 충분히 생각해 볼수 있을테고 말이다. 단지, 잘못 떨어진 한 공간에서의 사랑이야기인 셈이다. 적어도 작가를 꿈꾸던 남자에게 있어선 파리는 분명 묘한 이국적 감정과 외도의 정당성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비터문>에서처럼, <베티블루>에서 처럼, 작가는 화가처럼 파리에서 더 멋진 글을 남길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는 그렇게 멋진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제목만큼은 낭만적이고 지켜보는 재미와 빠져드는 드라마가 있었다. 특히나 안 팔리는 글을 쓰는 작가의 방황을 보는 것은 꽤나 흥미있고 말이다. 오래 전에 <야망의 계절>이란 TV시리즈가 있었다. 아마 그 외화에서 빌 빅스비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시나리오(방송작가?)였을 것이다. 안 팔리다가 어느날 아내가 대필을 해 주었는데 그게 히트를 치는 것이다. 이럴 때도 남자란 동물은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분명 예쁜 아내가 있지만, 남자가 외도를 하거나 한 눈을 파는 것은 그런 이유때문일 지도 모른다.
참, 이 영화는 케이블 TV의 한 채널에서 방영된 것이다. 정영일 아저씨 살아있을 땐 이런 영화가 자주 방영되었다. 그 아저씨가 무척 보고 싶다. 그 사람은 인터넷도 몰랐고, 타이타닉도 몰랐고, 박재환도 몰랐을텐데 그래도 꽤 낭만적인 삶을 살다 갔을 것이다. (박재환 1999/1/25)
Richard Brooks' *The Last Time I Saw Paris* (1954), starring Elizabeth Taylor as captivating Helen and Van Johnson as journalist Charles, traces a post-WWII Paris romance from euphoric wedding to bohemian unraveling. Lucky soldier meets dream girl amid liberation celebrations, but failed ambitions, oil schemes, and regrets doom their passion. F. Scott Fitzgerald's own novella-inspired tale of shattered glamour. ★Reviewer: Park Jae-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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