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포 망가의 대표주자 이토 준지(伊藤潤二)의 일련의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중 비교적 덜 알려진 [롱 드림](長い夢 ,긴 꿈)이 히구친스키라는 감독에 의해 TV영화로 만들어졌다. 히구친스키는 이름이 괴상하지만 러시아 사람은 아니다. (태어나긴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토 준지의 또 다른 유명 망가 [우즈마키](소용돌이)를 영화로 만든 사람이다.
[롱 드림]의 내용은 이렇다. 일본의 어느 종합병원 뇌과 병동의 고참 의사와 신참 의사가 이상한 환자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막 입원한 환자 마미(츠구미)는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룬다. 밤마다 '죽음의 사신(shinigami)'이 자신을 데리고 가려한다는 것이다. 고참 의사 쿠로다(호리우치 마사미)는 마미가 본 것은 죽음의 사신이 아니라 다른 병실에 입원해 있는 무코다(카시와바라 수지)라고 일러준다. 무코다는 매일 악몽에 시달린다. 그가 꾸는 꿈이란 이상하기 그지없다. 매일 꿈의 길이가 늘어진다는 것이다. 하루 밤 꿈 속의 이야기가 1시간, 10시간, 한 달씩 늘어나더니 어느새 10년, 100년의 기간을 하룻밤 꿈속에서 겪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의 그를 얽매이기 시작한다. 그는 날마다 꿈에서, 잠에서 깨어나면 바싹 늙어있는 외모와 달라진 목소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너무나 길고 지루하고 현실 같은 악몽만을 꾸던 무코다는 어느 날 갑자기 결정체 몇 개만을 남기고는 먼지로 사라진다. 의사 쿠로다는 그 결정체를 마미에게 주사한다. 마미도 똑같은 증세에 시달린다. 이 위험한 실험을 지켜보던 신참 야마우치(츠다 켄지로)는 어쩔 줄 몰라한다. 이상한 꿈을 꾸는 환자에게 매달리는 고참의사 무코다에게는 슬픈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무코다는 오래 전 죽은 자신의 애인이자 환자였던 카나(하츠네 에리코)를 잊지 못하고 함께 영생을 얻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한다. 아침 무렵 잠 깨기 직전 잠깐 순간적으로 꾸는 꿈만이 어렴풋이 기억될 뿐이란 것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간밤에 꾼 꿈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것도 어렵다. 실제 그 꿈이 현실과 같은 천연색이었는지 흑백이었는지, 내가 꿈속에서 안경을 쓰고 있었는지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었는지를 기억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토 준지의 상상력은 이처럼 꿈에서 깨어난 후 인간이 가지는 '꿈에 대한 환상'을 재조립 한다. 만약, 인간이 현실 말고 꿈에서 또 다른 영속된 삶을 얻게 된다면 어떨까?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어떤 환상을 자신의 꿈속에서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아주 긴 꿈속이라면 그 속에서 자라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가족을 거느리고, 나이 들고.... 이처럼 또 다른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 꿈이 악몽이라면 어쩌나? 1년의 꿈, 10년의 꿈 내용이 모두 현실만큼 고달픈 내용이라면? 환자 무코다의 꿈이 바로 그러하다. 하룻밤의 꿈속에서 1년 동안 쫓겨다니는 꿈을 꾸었고 너무나 배가 고파 자신의 발을 뜯어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엔 10년 동안 공부만 하는 미칠 듯한(!) 꿈도 꾸었고, 어떤 날은 몇 년 동안 화장실만 찾아 돌아다니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럴 수가!!!!!!
결국, 이토 준지 - 히구 친스키 감독이 말하려고 한 것은 영생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 아니었을까 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꿈을 꾸게 됨으로써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꿈속에는 이미 죽은 자신의 연인을 만날 수도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50분 짜리 TV영화인데 팀 버튼 감독의 [화성침공]에서난 봄직한 눈 튀어나온 흉악한 인간의 몰골을 실컷 볼 수 있고 때로는 피가 철철 흘러 넘치는 일본식 하드고어의 진수도 만날 수 있다. 어쩜 이 영화의 정서는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유리의 뇌]와 이어진 듯 하다. (박재환 2004/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