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무샤] 구로사아 아키라의 그림자 사무라이 (影武者/ Shadow Warrior, 1980)

* 이게 사반세기(25년)도 더 전에 쓴 글이라, 아마 고쳐야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일본역사에 대해 그다지 조예가 없고, 당시 자료를 충분히 찾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쓴 모양입니다.  잘못된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공부하고, 고치겠습니다. (2026.1.17)

 <아라비아 로렌스>도 극장 종영할 때 가서 보더니, 이 영화도 극장 상영 마지막 날 가서 보게 되었다. 그다지 볼 생각은 없었는데, 정말 의외로, 너무나 형편없는 흥행성적을 보이고 있기에 호기심으로 찾아보았다. 이 영화는 오래 전에 비디오로 본 것 같았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때 본 것은 <란>이었었다. 위대한 영화 혼(魂)의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의 첫 국내개봉작에 대해 우리 영화팬이 너무 초라한 대접을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일본이라 하면 색안경을 안  설래야 안 설 수가 없는 나라일 것이다. 특히나 역사문제를 이야기하면 신경이 곤두쓴다. 일본 국민들은 역사에 엄청난 정력을 쏟아 붓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교보문고 일본책 코너에 가보면 역사서적, 역사인물 소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본방송을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사극물이 쏟아져 나온다. 분명 그들은 역사 과잉(?)의 민족인 것 같다. 물론, 순수한 의미의 역사 말고도, 창작과 왜곡의 사관이 득세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는 영화미적인 장대함을 제외하고도 역사의 복원, 혹은 역사인물에의 탐색이란 점에서 역시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다. 이는 우리가 KBS사극 <용의 눈물>에 빠져들고, 연출가(혹은 극작가)의 역사해석에 귀 기울이는 것처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역사해석-인물 재창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그의 역사관을 볼 수 있다. 물론 단견으로 보자면 영웅주의적 사관을 보여주지만, 그러한 거시적 사관 밑에 깔려있는 등장인물의 인간적 고뇌 – 마치, 햄릿의 영혼처럼 떠도는 절대군주의 가위눌림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겨우 완성된 작품이다.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는 바다 건너 존재하는 그의 열혈 팬이며 정신적 제자였던 미국 감독과 제작자들 덕분에 겨우 스크린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일본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실존 인물 세 명이 나온다. 바로 다케다 신겐,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이다. 우리에겐 아마 덕천가강만이 귀에 익은 인물일 것이다. 1593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이니 말이다.

  16세기 들어서 일본의 역사전개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여하튼 전쟁과 배신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던 모양이다....당시 일본열도의 세 군사 실력자중에서도 최고의 기마부대를 통솔한 장군은 다케다 신겐이었다. 그의 막강 군사력은 교오또(천황거주지역)를 압박해 갔고, 나머지, 야심가들은 연합하여 그를 막는 입장이었다. (물론 아주 복잡한 인맥관계-혼인관계를 단순화 시켜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화에 묘사되듯이 '다케다 신겐'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사실 관계 하나만으로도 군사를 출진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뇌하는 적장들을 보여준다. 그만큼 다케다는 공포의 대상이며 카리스마적 인물인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다케다 신겐만 무찌르면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영화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출정하면서, 파란눈의 서양 선교사의 미사집전에 대고 아주 불경스럽게(?)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그중에서 가장 빨리 서구 신문물을 받아들인 것이다.

 일본사 책을 찾아보니, 오다 노부나가는 1574년 8월, 나가시마의 종교반란(一向宗이라는 종파)을 진입하는 와중에 성에서 저항하는 남녀 2만 명을 붙태워 죽이며 진압했다고 한다. 1575년 5월,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연합하여 나가시노(長條)에서 다케다 신겐의 아들 가스요리와 대전하였다. 용맹을 자랑하는 다케다 군은 잇따라 노부나가, 도쿠가와 군에게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노부아 군은 3천명의 철포대를 3대로 나누어 교대로 성채에서 적국을 겨냥하여 마구 철포를 쏘아 댔다. 용맹한 다케다 군의 무장들은 그들의 특기인 기마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기마부대가 노부나가의 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철포에 맞아 모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시대(그리고 그가 죽고는 도쿠가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유명한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 신겐의 전군이 몰사한 것에 비해, 오다 노부나가 연합군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다고 한다. 戰爭史家라면 전술과 무기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영화감독이라면, 그 미친 듯이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敗將과 敗卒의 운명과 광기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 역사적 단막극에 관심을 가졌고, 다케다 신겐이 여러 명의 ‘影武者’(카게무샤)를 두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카게무샤’는 어감에서 오는 굉장한 칼잡이, 무술 고단자와는 거리가 멀다. 단지 닮았다는 이유 하나로 픽업된 대리인생인 것이다. (<라스트 액션 히어로>에서 끝에 가서 시사회장을 엉망으로 만드는 '가짜-혹은 영화 속-아놀드 슈왈츠네거'를 생각해 보라. 스턴트맨으로서뿐만 아니라, 요인 보호를 위해 필수적인 존재이다. 진짜는 뒷문으로 빠져나가고 가짜는 손을 흔들며 대중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니까 말이다) 실제로 다케다 신겐의 죽음 3년 후까지 가짜가 진짜노릇(꼭두각시)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드라마틱한 설정임에는 분명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그 유명한 6분간의 롱테이크 장면이다. 정면에 다케다 신겐이 왼편에 그의 동생이, 오른 편에 한 놈이 앉아있다. 세 명은 어두운 배경에서이지만 상당히 닮은 얼굴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다케다 신겐의 가케무사 노릇을 한 적이 있는 동생은 다케다에게 그런다. "저놈이 형님을 무척 닮았기에 나중에 쓸모가 있어서 데려왔습니다.. 좀도둑놈으로 사형당할 놈인데 데려왔습니다.." 이 짧은 장면이지만 극적인 대사가 하나 나온다. 좀도둑놈은 카게무샤가 되는 것을 꺼려한다. 그것보다는 그의 절규 - "나는 기껏 물건이나 훔치는 좀도둑놈이지만, 당신은 수천 명을 죽여 나라를 훔치는 도둑놈이 아니냐. 누가 더 악당인가?"라고.. 그가 그렇게 독기에 대들지만, 다케다 신겐은 조용히 그러나 위엄 있게 응대한다. "나 같은 사람이 일본을 통일하여 다스리지 않으면 더 많은 살육 극이 끝없이 펼쳐질 것이다."라고.. 좀도둑은 이 자리에서 신겐의 위세와 풍모, 인간적인 매력을 받게 된다. 그리고, 다게시 신겐이 전투에서 입은 총상으로, 결국 죽는다. 그는 죽으면서 군신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3년 동안 비밀로 하라고 한다. 그래서 그 3년 동안 이 좀도둑이 다게다 신겐의 노릇을 하게 된다. 물론 오다 노부나가는 온갖 정보망을 동원하여 소문으로만 떠도는 다게다의 죽음을 확인하려 하지만, 이 좀도둑의 거동은 갈수록 진짜를 닮아간다. 모두를 속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플롯은 확실하다. 좀도둑이 군신의 대리역할을 하며, 그의 인격-이미 죽어 없어졌지만 곳곳에서 감지되는 영향력-에 매료되어 저도 모르게 그 역할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꿈 장면에서 그러한 의도는 명확해진다. 그러면서, 중세 궁중비화 같은 혹은 파워 게임이 조금씩 펼쳐지고 말이다. 모두를 속일 수 있었지만, 결국, 다게시 신겐의 愛馬가 그를 낙마시킴으로해서 그의 정체는 드러난다. 군신들은 그제서야(이미 3년이 지났고, 그의 아들 요스나리가 이미 실력자로 부상했기에) 다케다의 죽음을 알리고, 또 다시 열도는 전쟁의 폭풍우에 휘말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그리고 가장 극적인 광경은 한밤중의 전투 씬이다. 오직 함성과 총성, 질주와 공포만으로 점철된 어둠속의 전투장면 말이다.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구하기>의 ‘보여주는 끔찍함’을 오히려 왜소하고 초라하게 만들 정도이다. 主君을 보호하기 위해 몸으로 방패가 되는 卒들을 보라.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꿋꿋이 장군의 기치만을 내걸고 언덕배기를 장악하고 있는 ‘다케다 신겐’.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장면은 라스트의 스펙터클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며 극적이다.

 라스트 씬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미장쎈을 보여준다. 한쪽은 오다 노부나가 부대의 총이, 한쪽은 기마대가 포진하여 장대한 전투 씬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두 부대는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숏으로 사격과 질주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관객은 볼 수 없다. 그 장면을 보고 기겁하는 요스나리와 숨어서 훔쳐보는 좀도둑의 표정을 통해 엄청난 비극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전쟁의 잔인함을 내보이는 것, 그리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중언부언 설명하는 대신, 구로사와는 ‘AFTER FACT’를 관객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좀도둑이 창을 주워들고 돌진하는 것이 돈키호테가 아니라 바로 다케다 신겐의 화신일 수도 있고, 그의 영향력에 감화된 신겐의 卒일수도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총으로 알려진 이 신무기는 철포(鐵砲)로 불린다. 일본에 철포가 처음 전해진 것은 1543년 난파한 포르투갈 상선의 선원들에 의해서란다. 이전에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화약을 가득채운 철구(鐵球)수준의 무기류가 있었고, 飛砲, 火槍 이라는 화기도 많은 군사실력자들에게 퍼져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소총 류는 대포를 소형화한 것에 불과하여 명중률이 극히 저조하였단다. 그러나 포르투갈 사람들이 전한 철제총은 명중률이나 사정거리, 피괴력 등에 있어 중국제 무기를 훨씬 능가하였단다. 오다 노부노가가 그 우수성을 알고 대량으로 만들어 실제 사용함으로써 기마부대의 용맹성을 이겨낸 것이다. 이는 1593년 임란 발생후 부산포에서 우리나라의 불쌍한 백성이 한방에 그냥 죽어가야만 한 원인이기도 했다. 역사에는 이렇게 남아있다. (조선민중은 하나같이 결사항전의 자세로 총에 맞아 쓰러져갔다. 적장은 이러한 민중의 죽음에 숙연해했다....라고.. 얼마나 우리들의 자의적인 해석인지는 짐작이 간다. 그들은 조선민족 전체를 도륙하고도 남을 인간이니 말이다) 나가시노 전쟁에서 노부나가군은 단 한명의 전사자도 없었다고 한다. 중국고대사를 보면, 한 전투에서 수십만명이 한 곳에서 몰살당한 역사적인 사실도 있다. 핵폭탄도 없는 시절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인간을 살상시킬 수 있는지 정말 인간의 한계는 끝이 없는 모양이다..)

‘일본의 무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등장인물은 그 어느 한 사람 충과 효를 논할 위인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시절, 칼과 배신이 점철하던 일본 중세의 키워드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네 사극은 곧 죽어도 ‘충’이요, ‘절개’이니 어찌 감히 비교를 할 수 있을까. 사약을 받고서도 "성은이 망극하어이다..."할테니. 왜놈은 아마 그 사약을 들고 온 조정의 사신을 사시미질 하고는 곧장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갔을 것이다. 아마도.  (박재환 199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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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무샤 (원제: 影武者/Shadow Warrior)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출연: 나카다이 다쓰야, 야마자키 츠모토, 하지와라 케니치, 유이 코타 ▶개봉: 1998년 12월 12일
박재환 영화리뷰 kinoc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