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거, 영화리뷰 아닙니다. 1998년에 배고파 쓴 글입니다. 그 때 이 영화를 제대로 봤었다면 지금은 <흑백요리사>의 백 셰프가 되었을 것 같네요 (2026) *
꿀꺽, 꼴깍, 꼬르륵, 쩝쩝, 후후룩, 꺼~~억. 맛 있는 소리가 들린다.
이 영화는 85년도 일본작품이다. '담뽀뽀'는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며, 소재는 라면(라멘)이다. 주제는 음식 하나에 들어있는 깊고도 치열한 인생을 다룬다. 이 영화 처음은 마치 타케시 감독의 <모두 하고 있습니까>처럼 장난스럽다. 극장 안, 제일 앞 좌석. 마치 특석처럼 생겼다. 갱단 보스 차림의 백바지 백구두의 아저씨가 그에 어울릴만한 여자를 옆에 두고 앉는다. 옆에선 똘마니들이 와인이랑 음식을 챙겨준다. 그리고 이 남자 카메라 들여보면서 말을 건넨다. "아, 당신도 영화 보십니까?" 그러면서 자기는 극장 안에서 포테이토 칩 과자 먹는다며 부스럭 댄다거나 삐삐 소리가 너무나 싫다고 그런다. 감독이 처음에 이런 장면을 삽입한 것은 장난도 장난이지만, 적어도 음식이라는 소재를 앞에 두고 조금은 경건해지자는 의미일 것이다.
자, 영화가 시작되었다. 비 오는 고속도로 변, 대형 트럭을 모는 남자 주인공과 그 조수가 따분한 듯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조수가 무슨 책인가를 읽어주는데 내용은 ... 한 남자가 고수 할아버지로부터 라멘 제조의 비법을 배운다. 라멘을 끓일 땐 이렇게 저렇게 하고, 먹을 땐 저렇게 이렇게 해야 하니..어쩌니..."
라멘 이야기에 배가 출출해진 두 사람은 근처 분식집으로 들어간다. 그 집에서 맛 본 라멘은 맛이 없다. 이 운전사 남자는 한 '라멘'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얼굴을 찡그리자, 이 분식집 주인 -남편 잃고, 초등학교 다니는 외아들을 키우며 라멘 집을 운영하는 중년의 아줌마-은 남자에게 매달린다. 최고의 라멘을 만들고 싶다고. 그래서, 이제부터 일본 최고의 라멘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주 감동적이고, 아주 맛있게 펼쳐진다. 그리고, 이 영화에선 정도가 심할 정도로 전혀 상관없는 화면들이 중간중간에 끼어든다.
우선 스파르타 훈련이 시작된다 물통 들기, 조깅 하기. 그러다가 끼어든 것이 고급 레스토랑이다. 초로의 신사들이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는데 메뉴판에서 딱 멈추어버린다. 음..결국 한 남자가 주문한다. 스프는 뭐랑, 술은 그냥 맥주로.. (음..체면 손상인데...) "하이네켄으로, 꼭" 그러자 나머지 사람도 모두 똑같은 걸 주문한다. 그때 한 놈은 아주 잘 아는 듯이 이것저것 시킨다. 술은 몇 년도 무슨 와인으로. 그런데 저쪽 편에선 또 무슨 주부 교양강좌팀이 와서 직접 실습을 하는 모양이다. 스파게티를 먹을 땐 포크를 이렇게저렇게 해서 요렇게 먹습니다. 절대 소리를 내면 안됩니다. 그런데 저쪽 편에선 진짜 외국인이 온갖 후루룩 소리를 다 내어가며 스파게티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장면을 클로즈 업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또 끼어드는 딴 이야기. 첫 장면의 그 두 남녀가 이번엔 호텔 침대 위에서 뭔가를 한다. 남자가 여자의 몸에 설탕을 뿌리고, 레몬 즙을 짜서는 맛있게 음미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새우를 여자의 배꼽 위에 놓는다. 아마 이러한 장면의 삽입을 올바르게 이해할 정도라면 당신은 먹는 것과 섹스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섹스를 아주 로맨틱하게 즐기던 사람이든지. 어쨌든 놀라운 것은 이 남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야쿠쇼 코지이다. <쉘 위 댄스>와 <실락원>의 그 중후한 아저씨이다. 이 영화에선 그 사람의 10년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라멘의 생명은 국물 맛이에요."
다시, 담뽀뽀 아줌마의 라멘 이야기. 라멘의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그냥 라면하고, 신라면 두 가지뿐인데 말이다. 특라멘, 소프트라멘, 마늘라멘, 고기경단라멘,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라멘, 보통라멘, 시나치쿠 안 넣은 라멘, 콩하고 양배추 넣지 않은 보통라멘,.... 덜 익힌 라멘까지. 담뽀뽀 아줌마는 국물 맛을 배우기 위해 근처 유명 라멘집을 찾아가지만 백만엔을 요구한다. 그날 밤 몰래 벽 틈새로 배운 것은 국물을 달일 때 닭을 집어 넣는 것이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담뽀뽀 아줌마는 정말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배우게 된다. 압축하면..
"프랑스요리는 불과의 투쟁이에요."
"요즘은 양배추를 썰면서도 기계를 써요. 혼이 없죠."
그런데, 아까 그 야쿠쇼 코지 아저씨가 또 나온다. 이번엔 더 황당한 해석이 필요한 장면이다. 이 남자, 이 여자와 껴안는다. 남자 날계란의 노란자만을 입안에 넣는다.그리곤.....그렇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가 나온다. 이 남자 음식을 먹다 지독한 통증으로 치과에 간다. 수술을 받는다. 종기 제거수술, 수술 후 의사가 말한다. "부드러운 것부터 먹어보세요.."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한 꼬마애가 유심히 쳐다본다. 그 꼬마의 목에 걸린 푯말이 있다. " 난 자연 식품만 먹어요. 과자나 사탕을 주지 마세요. 엄마로부터..." 인간의 욕망은 원초적이다. 이브가 사과를 따 먹었듯이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 소년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인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자, 여기까지 오면서 맘껏 웃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도 웃긴다. 마저 할까요? 담뽀뽀 아줌마는 이런 저런 사람의 도움으로 결국은 굉장한 라멘 국물 개발에 성공한다. 그리고, 무슨 로맨스라도 생길 것 같던 트럭 운전수 아저씨는 손님이 가득 찬 담뽀뽀 라멘 집을 떠나면서 영화는 끝을 맺으러 한다.... 그런데 끝내기 전에 재미있는 몇 장면.
웬 할머니가 수퍼마켓에 들어와서는 진열된 음식, 식품들에 손가락으로 꾸욱꾸욱 자국을 내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한 남자가 열심히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가족과 의사, 간호사가 빙그레 둘러앉아 한 여인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여보, 죽지 마. 일어나서 요리해야지." 그러자, 이 여자는 비틀거리며 일어서서는 요리를 하고 가족들에게 저녁밥을 해 준다. 그러곤 털썩 쓰러진다. 의사 왈, "운명하셨습니다." 가족들이 흐느끼자, 남편도 울면서 그런다. "울지 마, 먹어. 식기 전에 먹어. 엄마가 마지막 한 요리다." 죽으면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먹을 것을 남기는 한 많은 여인네의 운명이여...
음식에 대한 사연인 셈이다. 결국 그 야쿠쇼 쇼지도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지만 빗속에 총 맞고 죽는다. 아까 그 여자 나와서 운다. 이 남자 죽어 가며, 이전에 멧돼지 사냥 가서 잡아먹은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멧돼지를 먹었지. 먹을 게 못 되더군. 그놈들은 고구마만 먹었지. 창자를 구웠어. 고구마소시지." "먹음직했죠." ."죽지 마.". "난 당신하고 그걸 먹고 싶어." "우리 먹을 수 있어요. 겨울에 멧돼지 사냥가요." "쉿! 조용히 해. 내 마지막 영화가 시작 됐어." 하고는 죽는다. 마치..갱 영화의 히어로처럼.
그리고, 아까 그 하다만 끝 장면 다시 돌아오면...
남자 주인공, 트럭을 몰고 멀리 사라진다. 카메라는 필요 이상으로 그 트럭을 비추다가 천천히 공원으로 옮긴다. 공원 벤치에서 또 누군가가 뭘 먹는 것을 보여주며 끝난다. 뭘 보여 주냐고? 아기가 엄마의 모유을 먹고 있다. 아주 평화롭고, 아주 천진난만하게. 그래 가장 첫 음식이구나. 맛있게 읽으셨어요? [담포포] 라면의 생명은 국물 맛이다. (박재환.19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