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ed by 박재환 1998/8/29 ]    이 영화에는 두 남자, 한 여자, 그리고, 침대 하나가 있는 한 아파트가 나온다. 대만? 우리나라사람이 인식하는 대만은 컴퓨터 부속품을 만드는, 그리고, 왠지 일벌레 같은 사람들만 사는 조그만 섬나라만을 떠올린다. (인구 2,500만에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이다!) 그리고, 공산대륙 중국의 위협 속에서 굳굳하게 자기의 정(政!)체성을 지키고 있는 민주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내가 처음 대만에서 본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다. 하지만, 대만사람들 자신들도 이런 영화를 중요하게 인식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화에 관심있는 몇몇 사람들만이 가끔 입에 올리는 아주 지루하고, 끔찍한 영화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일부 사람들의 필견드라마가 아니라, 현대인의 고독을, 그리고 젊은 시절의 알 수 없는 방황의 고통을 아주 훌륭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여자 주인공 린 샤오지에(林 少姐)는 부동산회사의 아파트 판매관리사원. 그리고 한 젊은이 샤오캉(小康)은 처음엔 배달부로, 그리곤 납골당의 영업사원으로 나오는 대만 청년이다. 다른 한 남자 아영(진소영)은 자칭 라오반(사장이라는 뜻). 이 세 사람이 거의 대화가 없고, 완벽하게 배경음악이 없는 이 영화에서 거의 무언극에 가까운 지루함을 이끌어가게 되는 것이다. 샤오캉이 어느날, 배달 나갔다가 아파트에 꽂혀 있는 키를 훔친다. 이 신축 아파트의 미분양 집을 분양하는 것이 바로 린 소저. 린소저는 여기 저기 광고물도 붙이고, 전화를 해서 고객을 불러 보지만 여전히 안 팔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카페에서 만난 아영과 그 빈 아파트에서 섹스를 한다. - 아마, 빈 아파트에서의 처음 보는 남녀의 섹스라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연상시키겠지만, 이 영화는 훨씬 고독하고, 훨씬 알 수 없다. 이 두 남녀가 만나고, 이동하고, 옷 벗고, 섹스하고, 헤어지는 그 시간동안 단 한 마디의 말도 없다. (니 됐나? 됐다 같은 썰렁한 농담조차 없다....) 그리고, 샤오캉은 이제 이 집이 밤동안의 자기만의 보금자리가 된다. 살며시 들어와서 자고 가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빈 아파트는 이제 이들 세 사람의 고독의 해소장소이며, 외부와의 단절된 자아의 세계로 변질된다. 샤오캉은 들어와서, 담배를 피고, 자기의 손목을 긋는 자살도 시도해 보고, 욕조에 푹 잠겨도 보고, 나중엔 여자 옷도 입어보고, 하이힐도 신어보며 고독을 씹는다. 나중에 또다른 키를 손에 넣은 아영 역시 몰래 이 아파트에 들어와서 담배를 피우고, 포르노 잡지를 보며, 버드와이저를 마신다. 린 소저는 여전히 팔리지 않는 이 아파트에 낮에 나와서는 역시 담배를 태우며 텅 빈 공간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아파트의 빈 공간을 담배 연기와 고독으로 채우는 것이다.

샤오캉이 처음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다름없는 현대 젊은이의 참을수 없는 고독의 끝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고, 입 다물고, 그 아파트 만을 이용할 뿐이다. 이 영화에서는 두 번의 섹스가 있지만, 그 두 번의 섹스는 모두 가려진 벽과, 침대 밑의 시점만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더욱더 주인공들의 관계가 단절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몰래 숨어듬을 인연으로 샤오캉은 아영과 친구아닌 친구관계가 되고 말이다.

채명량의 이 영화는 Michelangelo Antonioni작품과 연이 닿는다고 하지만, <블로우 업>밖에 보지 못한 나로선 별다른 할 말이 없다. 대신, 이 작품 마지막 장면(10분정도!)은 참으로 인내와 이해가 필요하다. 린소저와 아영의 두번째 섹스가 있은 다음날 아침, 린소저는 옷을 챙겨입고 아파트를 나선다. 침대 위에는 여전히 아영이 잠들어 있고, 밤새 그 침대 밑에 숨어있던 샤오캉은 잠든 아영 옆에 누워 그를 한참이나 지켜보더니, 살짝 키스한다. 그리고, 행복해 하는 눈빛이 어둠이 가득찬 침실에서 사라져가며, 다시 린 소저의 걸음걸이로 카메라는 따라간다. 린 소저는 끝없이 (공사 중인) 공원을 걸어가고, 벤치에 앉아 끝없이 훌쩍인다. 몇 분씩이나..그리고, 영화는 끝나는 것이다.

감독 채명량(차이 밍 리앙) 영화의 특징은 관객으로하여금 엄청나게 곤혹감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 영화로 94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금사자상을 받은 후, 이 영화를 알음알음 보게 되면 그 충격은 대단하다. 권해준 사람을 죽이고 싶든지, 아니면, 이 영화에서 뚝뚝 스며나오는 고독에 목매달아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대만 청춘의 고독이 확장되어 나타난다. 이유없는 양귀매의 끝없는 울음이 나타내듯 이 영화를 사실 울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채명량은 1957년 말레이지아에서 태어난 화교이다. 그가 대만의 원후아따슈에(文化大學)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92년 극장영화데뷔작 <청소년 나타>발표이후 어떤 이유에서든지 영화평론가와 팬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안 감독이 미국으로 떠나버린 후, 이제 대만은 이 말레이지아 출신 감독의 작품밖에 세상에 내보일게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에 처음 나온 샤오캉 역의 이소강은 그 뒤 줄곧 채명량 감독 영화에 나온다. 아마, 상당히 연기를 못하는 것 같고, 어설퍼보일 것이다. 사실, 그렇다. 작년 2회부산국제영화제 방문기간 중 방한했던 채감독과의 인터뷰 기사 중에서..하나 옮겨보면...

▶ 기자: 계속 이강생과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그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 채 감독: 어느날, 오락실 입구에 서 있는 이강생을 보고 "아, 저 배우다" 했어요. 그래서 다가가 말했죠. "나 감독인데, 같이 영화 안할래요?" 그랬더니 아주 오랜시간이 지난 뒤에 "한번 해 보죠"라고 대답을 했어요. 다음날 오디션을 하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는데, 삼일 뒤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저 놈을 내가 왜 캐스팅했지?" 하면서요. 그의 표정이나 반응이 내 생각과는 너무 달랐던 거지요. 참다못해 화를 내면서 "배역에 맞게 할 수 없어? 좀 자연스럽게 하란 말이야" 라고 했더니, 그는 되레 내게 화를 내며 말했어요. "이게 바로 내 자연스러운 모습이에요!" 난 그때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지요. 그때까지는 연기에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모두가 다르고 각자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연기에 어떤 제한을 두어서는 안되는 거죠. 감독은 배우가 연기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도록 돕는 사람이지요.이강생은 개성이 강해 어쩌면 그것이 역할을 제한할 수도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장점이 많은 배우에요.. (프레미어 97년 11월호 109쪽에서)

앞으로 연기 못하는 배우를 보거나, 캐스팅 미스라는 느낌이 드는 영화를 본다면 항상 이 영화를 떠올리겠다...

양귀매..이 아가씨. 영화 마지막에 왜 그렇게 찔찔 울었을까? 이유없이 울었다고 했지만, 어찌보면 쉬울 수도 있잖은가? 원래 자의식 강한 여자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이 여자는 노처녀이다. 혼자 사는 여자이다. 굳세게 살아 볼려고 하지만, 계속 일이 안 풀린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아파트는 몇 달째 계속 안 팔리고, 모기는 달라붙고, 보일러는 말을 안 듣고, 하룻밤 잤을뿐인 남자가 싫다는데 자꾸 전화질이고... 그러고, 그 남자와 또 하룻밤 자고 난 다음날. 그녀는 분명 이 모든 고독과 슬픔과 자기연민, 분노가 목까지 차올라 왔을 것이다. 그래서 맘껏 울고만 싶을 것이다. 그래 실컷 울어라. 울고 나면 적어도 가슴에 남은 슬픔이 어느정도 해소 될 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여자가 아닌이상, 왜 울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샤오캉이 마지막에 키스를 한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아마, 감독이 시켜서 그랬을 것이다. (썰~~렁)

▶ 에...그리고 박재환 이야기..(제가 94년쯤 대만에 어학연수 갔었음...그때 경험담..)

이 영화 마지막에 보이는 공원. 아직 공사 중인 그 황량한 공원은 <大安공원- 따안 꿍위엔>이다. 당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 무척이나 낭만적인 곳으로 기억된다. 비록 덤성덤성 나무가 심어져 있고, 조경작업으로 곳곳이 맨흙이 드러난 황량한 곳이었지만.. 아, 이 공원이 공기이상으로 개장이 늦어진 것은 이 공원 한곁에 커다란 불상을 세우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대만에는 이 만큼 큰 공원이 도심 곳곳에 있다. 장개석이 살아있을 때, 그리고,우리나라에 박정희가 살아있을때, 박정희는 대만의 이러한 커다란 공원에 무척 감명받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만든것이 여의도공원(?)이었다. 물론, 나중에 계획이 바뀌어 천안문 광장처럼, 콘크리트 광장이 되어버렸지만...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면서 그런 광장이 어디에 사용될까는 쉽게 생각할 수 있을것이다. (물론 종교집회, 무슨무슨 규탄대회, 무슨무슨 단합대회... 잘도 활용되었지만...)이제라도 공원 녹지시설로 전환한다는 것은 무척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일에 가장 적합한 예를 하나 소개하면... 뉴욕 도심지에 백만평의 "센트럴파크"가 있다. 그 금싸라기 땅에 무슨 숲이 필요하리오 라지만, 전문가의 말로는... 만약, 뉴욕에 백만평짜리 공원이 없다면, 필요한 것은 백만평짜리 정신병원이다.....라고 한다.. 새겨 둘만한 말이다.

영화 끝단에서 가판으로 여자옷을 팔고 있던 아영이 다시, 린소저를 만나는 장소. 뭔가 튀김 같은 먹는거.. 이것은..(음..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네..) "이엔수지"라는 것으로 무척 맛있다. 닭똥집, 오징어, 고구마, 고추, 오뎅.... 이런 것을 손님이 먹을만큼 덜어낸다. 그러면 주인(라오반)이 그것을 기름에 넣고 튀긴다. 같이 깻잎 같은것을 넣는데 무척 향이 좋다. 그리고, 맵게 하고 싶은 사람은 이 영화에서처럼 "이디엔 라더"하면 고추가루를 같이 넣어 튀겨서 맛있다. (이건 파파이스가서 스파이스 튀김 시키는 것과 같다) 나 대만 말년엔 이 "이엔수지"랑 "타이완피지우"(대만맥주)가 거의 주식이었다. 너무 맛있었다. 대만 관광가실 분은 한번 꼭 맛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아픈 추억하나.. 양귀매(린 소저로 나온 배우 이름. 음식남녀에도 나왔음)가 도로를 가로지르며 "아파트 집 나왔음"광고판 붙이는 장면.. 경고판...<무단횡단시 벌금 360원(우리돈으로 만원 정도였음)/ 순화교육>이란 것. 사실, 대만에서는 교통표지판이 효율적으로 이용되지는 않는다. 빨간불이지만 차들은 적절하게 빠져나간다. 그러니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건널목에서 신호등으로 건너는 것은 학교 앞-그것도 한국학생이 많이 다니는 랭귀지스쿨 앞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음..너무 과장이 심했나?) 어쨌든 대만에 눌러앉을 것인가 말것인가로 고민하던 박재환이 무단횡단했다. 그리고 추억만들기에 도움이 되도록 징차(경찰)아저씨가 날 불러세웠다. (당시 거류증발급문제로 고민하던 나는 무슨 법적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무척 걱정했었다) 난 외국인 행세를 했다. 음.행세가 아니군. 난 외국인이니까.. 하지만, 예외없이. 난 경찰 봉고차에 잡혀 들어갔다. 벌금이 아니라 그 순화교육이란 것을 받으러.. 그 차안에는 나말고 할아버지가 한분 잡혀 들어왔는데 여기서 하는 일은 구타, 협박..그런 것이 아니라, 가만 앉아서 녹음테이프를 들러주면 그걸 듣고 (원래는 두시간) 나중에 시험 친다.(우리나라 운전면허에서 1번부터 5번까지 문제로 나오는 그런 문제임... 예를 들면. 무슨 불에 길을 건널까요?/ 차를 운전할때 필요한 정신은?.. 뭐 이런거...) 우습게도. 이 할아버지는 중국말을 모르신다. 무조건 대만말(타이위)만을 쭝얼 거리는데 난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 할아버진 결정적으로 문맹이었다. 난 좋은 점수로 20분만에 풀려났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징차아저씨와 씰갱이를 하고 있었다... 아마, 대만에 가서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처럼 교통질서 시험 치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러분 찻길 건널때 경찰봉고차 있는지 꼭 확인부터 합시다.....

음.. 누가 <애정만세>를 보고 이런 리뷰를 쓸 수 있으리오. 오직 박재환만이 쓸 수 있습니다. --;

 愛情萬歲 (1994) Vive L'Amour Vive L'Amour
감독: 채명량
주연: 이강생, 양귀매,진소영

Posted by 박재환입니다. 박재환=중국通

Trackback Address :: http://www.kinocine.com/trackback/5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qnseksrmrqhr 2009/12/21 17:2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 그 영화가 이런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닿게 됩니다...끝없는 고독, 현대화의 황폐,소통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수 많은 이웃들,...지루함에 못견디는 무지스러운 나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