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1999.3.29.) ** 이 리뷰는 1999년 3월 29일에 작성한 것입니다. 헐~ 그 때는 이런 글도 썼네요. --; 국민을 위한다는 게 뭔지 생각해 볼 겸 다시 올립니다. **
그래 야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상을 뒤바꿔 보려는 포부를 가질 만 하다. 그것은 ‘권력’과 ‘부패’로 상징되는 정치와, ‘부’와 ‘탐욕’으로 남는 재벌회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내가 직접 국회에 진출해 보았다.
"국회에 가면 말야. 내가 말야. 스크린쿼터제도 손도 보고, 한국영화진흥법안도 만들고, 검열제도나 극장법 등도 고치고. 연예인들 비디오 팔아먹는 놈들 잡히면 궁형에 처하고.. 어쩌구저쩌구 "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렇지 않다.
"저... 선배의원님. 회의 같은 거 안 해요? 여기선?" "어이 박 의원. 자네 여기 잘 모르는군. 마음 놓게. 오늘은 시흥에 가야 해." "그곳엔 왜요?" "아니 내일모레가 선거잖아. 가서, 우리당 찍어 달라고 유세해야지." 음. 그래서 시흥에는 한 번도 살아본 적도, 가 본적도 없는 박재환은 시흥에 가서, 이 사람을 찍어야 나라가 잘 되고, 국가가 잘 되고, 통일이 되고, 어쩌구 저쩌구.. 사실 그 사람 어제 처음 봤는데 말야. "내일은 뭐하죠?" 내일은 우리당 보스 만나야 해. 줄을 잘 서야 다음 번 선거에서 또 공천따지. 눈도장을 코옥 찍어나야 해. 빨간 넥타이 매고 와. 우리 보스는 젊고 감각 있는 사람을 수혈 하려고 하거던.. "그럼 모레는요?" 모레는 H그룹 회장이랑 골프 쳐야 해. 가서 한번 만나 둬. 우리 물주니까. "다음 날은요?" 다음날은 S그룹 회장 만나야 돼. A은행장 소개받았어? 참, 그 날 사진 찍어야 돼. 구로공단에서 작업복 입고, 마치 상냥하고, 인자한, 노동자의 대부 같은 인상을 남겨야 해.. 어쩌구 저쩌구.....
.... 그래서 박재환은 영화진흥의 꿈은 딱 한번, <쉬리>제작자들이 흥행신기록 세웠다고 국회문공위소속 의원들 불려 사진 찍을 때, 배우 김윤진 옆에서 얼쩡거리다가는 "우리나라 영화를 위해서 어쩌구저쩌구..."한 것이 다였다. 물론 유능한 보좌관 덕분에 도하 각 신문에는 "박 의원 한국영화진흥을 위해 노력하다"라고 일단짜리 기사가 실렸다. 이런... 박재환 의원은 그렇게 금배지 생활을 하고 나서는, 나와서 본 영화가 바로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라는 1939년 작품이다.
1939년이라면 영화史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 또한, 영화사에 길이 남고, 미국 초등하교 도서관과 시청각자료실에서 영원히 소장되고, 새로 의원이 되는 미국 정치신인들이 시간날 때마다 집에서 보고보고 또 보고 음미해야할 영화인 것이다. 그래서, 여의도 생활에 무척 실망한 전직의원 박재환은 마음잡고, 옛날 - 무려 60년 전 미국 국회의원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어느날 조용한 미국의 한 시골마을에 긴급전화가 걸려온다. 워싱턴에서 한 상원의원이 급사했다. 이제 이 선거구에서 새로 상원의원이 뽑아야한다. (1939년 당시 미국 상원의원의 보궐선거과정이 어떤 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영화에서 보면 대강 이렇다. 각 주(州)마다 상원의원이 두명 씩이니, 나머지 한 명이 주지사에게 전화해서, 마땅한 사람을 천거하란다. 그럼 그 주에서는, 무슨 특별위원회에서 그 사람을 통과시키면, 그는 기차타고 워싱턴 날아와서 상원회의에서 취임선서를 하는 것이다. 뭐, 별 달리 전당대회, 선거. 이런 절차는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궐석이 되어 버린 이 지역 주 상원의원에 누굴 앉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이 주의 최고실권자(상원의원도, 주지사도 아닌) 제임스 테일러라는 작자이다. 그는 언론을 장악하고, 정치인을 주물리며, 사익을 챙기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 말 잘 들을 사람을 찾다가 스미스씨를 뽑게 된다. 이 사람은 젊고, 패기 넘치며(물론 정치 말고 다른 일에), 희망을 아는 순진무구형 젊은이였다. 바로 보이스카우트 대장(보이 레인져)이다. 어제까지 코흘리개 애들 데리고, 들로 산으로 야영 다니며, 텐트 치고, 산새 소리 흉내 내고, 수신호 강의하며, 어린이 대상 신문이나 찍어내던 사람이 워싱턴으로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가 여기쯤 되면, 우리는 이미 목격한 박재환감독의 전철을 밟게 될 불쌍한 야심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워싱턴에서 장엄한 국회의사당 돔 건물과, 링컨 동상(석고상인가?)과 각종 기념탑을 보며, (마치 베트남전에서 포로로 한 20년 살다 미국으로 귀환해서 성조기 쳐다볼 때 느꼈을 보통 미국인들처럼) 흥분하고 흥분하고 또 흥분한다. 그는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의 정치를 다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생각해낸 것이 자기 마을에 야영지를 세워, 미국의 어린이들이 늘푸른 자연에서 인생과 철학과 삶과 애국심과 자연환경과 효도와 충절과 기타등등 좋은 것만 가르치도록 뭔가 하려고 마음먹는다.
물론 의사당에 와서, 거수기, 고무도장의 역할만 하면 될 신참의 이 정도 요구라면, 의회 내 파워맨들이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다. 사진하나만 찍어도 자기는 이제 어린이를 이만큼 사랑하고, 한국의 아니, 미국의 장래에 대해 그 만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테니, 다음 선거에서 또 당선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니까.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스미스씨가 야영장으로 세우려는 그 곳에는 댐 건설이 예정되어있고, 상원의원과, 주지사, 그 동네 제임스 등등이 늑대이빨을 드러내고 기다리는 각종 이권에 가득한 땅이었던 것이다. 회유와 압력, 방해책동 속에서 스미스씨는 이제 촌티를 벗어던지고, 하나의, 한 사람의 자유투사가 되어, 미국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새총 들고? 보이 스카우트 데리고?
아니. 국회의원은 순전히 말빨이다. (옛날에 물에 빠지면, 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물고기 따라다니면 쫑알댄다고 말이다.. 그게 누군지는 이제 알 것이다) 그는 국회의사당에서 발언권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장면에서 ‘필리버스팅’이란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스미스는 이미, 간교한 계략에 말려 의원직을 박탈당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가 연설을 그만두면, 이젠 두 번 다시 발언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신념을 갖고 국회의사당에서 상원회의에서 길고긴, 지루하고 지루한, 끝없는 연설을 쏟아 붓는다. 누군가가 자기의 말을 믿고, 자기가 옳았음을 밝히기 위해.. 그는 장장 23시간 여를 떠든다.
"내가 말이죠, 여기 온 것은 말이죠. 자유와..이성과... 미국 헌법에 따르면... 국회법에 따르면.. 박재환 영화평에 따르면.. 지난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말이죠.. . 자유와 인권과..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하지만, 그의 연설은 자기 동네(자기 지역구)에 전해지지 않는다. (1939년이다. 텔레비젼방송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다. 있었다면, 뉴스전송선을 장악한 제임스 일당과, 그 지역 신문사를 통째 구워 삼킬 수 있는 사악한 무리들이 있을 뿐) 하지만, 보이스카우트들의 필사의 노력으로 진실을 알리는 언론대전이 펼쳐진다. 의사당 밖에서는 그런 식으로, 자발적으로 신문제작-배포에 나선 보이스카우트대원과 나쁜 어른들이 필봉을 휘두를 때, 스미스씨의 목은 조금씩 잠기어 간다.
"내가 말이죠... 스크린쿼터제만이 한국영화를 살릴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말입니다. 아이구... " 하지만, 조작된 선동된 동네사람들의 산더미같은 항의메일이 의사당에 도착하고, 스미스씨는 절망에 사로잡혀 비틀거리다 독기에 가득차서 외친다.
"난, 자유를 위해 결코 물려서지 않을 것이다"고. 그러곤 쓰러진다. 오버액션이 분명할 이 장면은 정말 명장면이다. 자유와 민주를 위해 불꽃을 태우는 현장을 지켜 보고 있으면 절로 박수를 보내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게 된다. 그 뒷이야기는 물론 헤피엔딩이고 말이다....
정말, 굉장히 선동적으로 잘 만든 영화이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스미스 상원의원이 처음 취임 선서하고, 의안이란 걸 처음 제시할 때, 바들바들 떨 때의 그 촌스러움과 마지막 쓰러지면서까지 광기의 연설을 하는 것을 본다면 제임스 스튜어트가 아카데미 연기상 못 받은 게 이상할할 정도. (그해 아카데미는 온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판이었고, 남우주연상은 <Goodbye, Mr. Chips (1939년도 작품임)>의 Robert Donat이란 배우에게 돌아갔었다.
이 영화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종종 언급되는 영화이다. (에디 머피가 나왔던 비슷한 스타일의 풍자코메디 <제이제이>란 것도 있다) 물론, 미국영화이다 보니, 소프트한 시각 - 아이들의 동원, 여자와의 로멘스, 그리고 극적인 반전 등이 요즘에 와서는 거슬리는 면이 없지 않지만, 굉장히 잘 짜인 각본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戰이 최고다. 누가 언론, 입을 쥐고, 장악하느냐가 대세를 판가름 짓는다. 여론조작도 가능하고 말이다. 그가 거짓말을 하든, 그녀가 참말을 안 하든, 결국 국민, 유권자, 독자들은 신문에 찍혀 있는 글자만을 쳐다보고 믿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한 모양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말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에 공화당 후보 중의 하나인 스티브 포브스(재벌출판업자 포브스 가문의 아들로 <포브스>라는 경제전문잡지의 발행인이기도 하다)가 인터넷forbes2000.com으로 자기의 대통령출사표를 발표했다. 이제 그런 식이다. 우리나라엔 여전히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90도 인사하고, 목욕탕가서 등 밀어 줘야하고, 악수 한 번이라고도 더해 줘야하고.... 어쩌구 저쩌구다. 정말이지, 여의도쪽으로부터는 스팸메일 한번 못 받아보았다. 무척 다행이지만.
어떤 미국史책을 읽었는데 미국이 왜 상하원 양원제가 되었느냐하면, 그런 이유란다. 남북전쟁이후, 노예제 폐지를 둘러싸고 극심하게 대립했던 북부와 남부의 각 주는 의회구성에서부터 신경전을 펼쳤단다. 인구비례로 의원을 선출하면 의회가 균형을 못 잡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경상도 인구가 전라도 인구보다 많으니까 경상도 국회의원이 그 비율만큼 많아야한다!!! 그런 식으로) 그래서 상원이란 제도를 만들어 인구가 적든 많든, 각 주마다 의원을 둘씩 뽑자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을 상원의원 시키자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정치학자나 선거전문가에겐 언제나 어려운 골칫거리다. 게다가 투표율이 현저하게 저조할 경우 더욱 심각해진다. 오래 전 부산 해운대쪽의 이기택 후보는 5만 5163표로 유권자자의 30.8%의 지지를 받고서도 낙방했다. 그런데 작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남경필 후보는 거의 비슷한 수의 선거구민을 가진 수원 팔달구에서 이기택의 반도 안 되는 2만 1356표, 전체 유권자의 11.5%의 지지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 동네 사람들 10명 중에 한 사람만이 그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것이다. 물론, 이런 수치는 결국 유권자 잘못이다. 옛날에 노태우가 30%로 대통령되었다고 60 몇%가 반대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되듯이 말이다. 표의 등가성 여부는 항상 말썽의 소지가 있다. 그걸 바꾸려면 또 다시 자기들 유리한 지역구 잘라 만들테니 필리버스팅보다 더 무서운 게리멘더링이란 단어를 구경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든, 영화진흥법이든, 스크린 쿼터제든 행동으로, 투표소를 발걸음을 올려 진짜 한 표을 던져놓고, 자기가 뽑은 의원이 의정활동은 잘하는지를 지켜볼 일이지, 지역구 내려와서 악수 몇 번 더하고, 사진 몇 장 신문에 실리는 게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란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 그런 자세로 살아가면, 누구처럼 청와대 갈 것이다.
(1999년) 3월 30일은 시흥, 구로을, 안양 재보궐선거입니다. 한분도 빠짐없이 투표합시다. 참, 나랑은 전혀 상관없네. 음. 누가 내 글 보면, 내가 상당히 정치적인 성향의 사람인 줄 알겠다. 난, 야망이 1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민주의의는 귀한 것이다. 좋은 영화이다. 한번 꼭 보기 바란다. 특히 정치지망생은 말이다. (박재환 1999/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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