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정치초년병, 바람을 일으키다 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는 1939년 작품이다. 1939년이라면 영화史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 또한 미국 영화사에 길이 남아있고, 미국 초등학교 도서관과 시청각 교재실에서 소장되고, 새로 의원이 되는 미국 정치신인들이 시간날 때마다 집에서 보고 보고 또 보고 음미해야할 영화이다. 

 어느 날 조용한 미국의 한 시골마을에 긴급 전화가 걸려온다. 워싱턴에서 한 상원의원이 급사했다. 이제 이 선거구에서 새로 상원의원이 뽑아야한다. 1939년 당시 미국 상원의원의 보궐선거과정이 어떤 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에서는 이렇게 진행된다. 각 주(州)마다 상원의원이 두 명씩이니, 나머지 한 명이 주지사에게 전화해서, 마땅한 사람을 천거하란다. 무슨 특별위원회에서 그 사람을 통과시키면, 뽑힌 사람은 기차 타고 워싱턴으고 가서는 상원회의에서 취임선서를 하는 것이다. 뭐, 별 달리 전당대회, 선거.. 이런 절차는 없다. 그런데 궐석이 되어 버린 이 지역의 주 상원의원에 누굴 앉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이 주의 최고 실권자(상원의원도, 주지사도 아닌) 제임스 테일러라는 사람이다. 그는 언론을 장악하고, 정치가를 조종하며, 사익을 챙기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 말 잘 들을 사람을 찾다가 스미스씨를 뽑게 된다. 이 사람은 젊고, 패기 넘치며, 희망을 아는 순진무구형 젊은이였다. 바로 보이스카우트 대장(보이 레인져)이다. 어제까지 코흘리개 아이들과 함께 들과 산으로 텐트 치고, 산새 소리 흉내 내고, 수신호 강의하고, 어린이 대상 신문이나 찍던 사람이 워싱턴으로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는 워싱턴에서 장엄한 국회의사당 돔 건물과, 링컨 상과 각종 기념탑을 보며, (마치 베트남전에서 포로로 오래 붙잡혀있다가 미국으로 귀환해서 성조기 쳐다볼 때 느꼈을 보통 미국인들처럼) 흥분하고 흥분하고 또 흥분한다. 그는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의 정치를 다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생각해낸 것이 자기 마을에 야영지를 세워, 미국의 어린이들이 늘푸른 자연에서 인생과 철학과 삶과 애국심과 자연환경과 효도와 충절과 기타등등 좋은 것만 가르치려고 한다. 

  물론 의사당에 와서, 거수기, 고무도장의 역할만 하면 될 신참의 이 정도 요구라면, 의회내 파워맨들이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다. 사진 하나만 찍어도 자기는 이제 어린이를 이만큼 사랑하고, 미국의 미래에 대해 이만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으니. 다음 선거에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스미스씨가 야영장으로 세우려는 그 곳에는 댐 건설이 예정되어 있다.상원의원과 주지사, 그 동네 제임스 등등이 늑대이빨을 드러내고 기다리는 이권의 땅이었던 것이다. 회유와 압력, 방해 책동 속에서 스미스씨는 이제 자연의 티를 벗어던지고, 자유투사가 되어, 미국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새총 들고? 보이 스카우트 데리고?

  아니. 국회의원은 순전히 말빨이다. (옛날에 물에 빠지면, 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물고기 따라다니면 쫑알댄다고 말이다. 그게 누군지는 이제 알 것이다) 그는 국회의사당에서 발언권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장면에서 장엄한 필리버스팅을 보게 된다. 스미스는 간교한 계략에 말려 의원직을 박탈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연설을 그만두면, 이젠 두 번 다시 발언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신념을 갖고 국회의사당에서 상원회의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연설을 쏟아 붓는다. 누군가가 자기의 말을 믿고, 자기가 옳았음을 밝히기 위해. 그는 장장 23시간 여를 떠든다.

 하지만, 그의 연설은 자기 동네(자기 지역구)에 전해지지 않는다. (1939년이다. 텔레비전 방송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다. 있었다면 뉴스전송선을 장악한 제임스 일당과 그 지역 신문사를 통채로 구워 삼킬 수 있는 사악한 무리들이 있을 뿐) 하지만, 보이스카우트들의 필사의 노력으로 진실을 알리는 언론대전이 펼쳐진다. 의사당 밖에서는 그런 식으로, 자발적으로 신문제작-배포에 나선 보이스카우트 대원과 나쁜 어른들이 필봉을 휘두를 때 스미스씨의 목은 조금씩 잠기어 간다.

  "난, 자유를 위해 결코 물려서지 않을 것이다"고. 그러곤 쓰러진다. 오버액션이 분명한 이 장면은 정말 명장면이다. 자유와 민주를 위해 불꽃을 태우는 현장을 지켜 보느라면 절로 박수를 보내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게 된다. 그 뒷이야기는 물론 헤피엔딩이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스미스 상원의원이 처음 취임 선서하고, 의안이란 걸 처음 제시할 때, 바들바들 떨 때의 그 촌스러움과 마지막 쓰러지면서까지 광기의 연설을 하는 것을 본다면 제임스 스튜어트가 아카데미 연기상을 못 받은게 신기할 정도. (그해 아카데미는 온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판이었고, 남우주연상은 <Goodbye, Mr. Chips (1939년도작품임)>의 Robert Donat이란 배우에게 돌아갔었다.

 이 영화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종종 언급되는 영화이다. 물론 본 사람이 제법 될지 모르겠지만, 에디 머피가 나왔던 비슷한 스타일의 풍자코메디 <제이제이>란 게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戰이 최고다. 누가 언론을 쥐고, 장악하느냐가 대세를 판가름 짓는다. 여론조작도 가능하고 말이다. 그가 거짓말을 하든, 그녀가 참말을 안 하든, 결국 국민, 유권자, 독자들은 신문에 찍혀 있는 글자만을 쳐다보고 믿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한 모양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말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에 공화당 후보 중의 하나인 스티브 포브스(재벌출판업자 포브스 가문의 아들로 <포브스>라는 경제전문 잡지의 발행인이기도 하다)가 인터넷에 forbes2000.com으로 자기의 대통령출사표를 발표했다. 이제 그런 식이다. 우리나라엔 여전히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90도 인사하고, 목욕탕 가서 등 밀어 줘야하고, 악수 한번이라고도 더해 줘야한다.

미국이 왜 상하원 양원제가 되었느냐하면 이유가 있다. 노예제 폐지를 둘러싸고 극심하게 대립했던 북부와 남부의 각 주는 의회구성에서부터 신경전을 펼쳤단다. 인구비례로 의원을 선출하면 의회가 균형을 못 잡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원이란 제도를 만들어 인구가 적든 많든, 각 주마다 의원을 둘씩 뽑자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을 상원의원 시키자는 것이다.

 좋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시네마떼크’에서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아마, 동네 큰 비디오샵에 가면 비치되어 있을 것이다. 한 번 꼭 보기 바란다. 특히 정치지망생은 말이다. 이미 당선된 사람은.... 모르겠다.  (박재환 1999/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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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원제: Mr. Smith Goes to Washington) ▶감독: 프랑크 카프라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진 아서, 클로드 레인즈, 에드워드 아놀드 ▶상영시간: 129분
박재환 영화리뷰 kinoc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