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나이트] 용자의 게임, 용기의 민낯

2021. 8. 24. 07:57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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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문학권에서 ‘아서왕의 전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익스피어 만큼이나 클 것이다. 바위에 박힌, 혹은 호수에서 건진 명검(名劍) 엑스칼리버를 차지한 아서 왕이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침입자 앵글로색슨을 무찌른 이야기는 수많은 군웅할거의 기사도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그 최신판이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The Green Knight,2021)이다. 

* 스포일러- 자세한 줄거리가 있습니다 *

[그린 나이트]는 아서왕 말년의 이야기이다. 역사적으로는 아마도 서기 4~5세기 경에 해당한다. 카멜롯 궁성에서 아서왕이 주재하는 크리스마스 연회가 열린다. 왕좌엔 늙은 아서왕이 있고 곁에는 기네비어 여왕이 있다. 연회장에는 칼과 술잔을 든 원탁의 기사들이 포진해 있다. 아서 왕은 젊은 조카인 가웨인(데브 파텔)을 축하해준다. 그때 ‘녹색의 기사’(랄프 이네슨)가 말을 타고 장엄하게 등장한다. 사람과 고목(나무!)이 일체가 된 듯한 이 기이한 형상의 기사는 자신과 ‘목 자르기 내기’를 할 용감한 기사가 있는지 묻는다. ‘내 목을 치면 명예와 부를 얻을 것이다. 그 대신 1년 뒤 북쪽 녹색의 예배당으로 날 찾아와서 그 목을 바쳐야한다.’ 모두가 주저거릴 때 가웨인은 아서왕의 칼을 받아 그 기사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그러자, 녹색의 기사는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어 올리고는 다시 말을 타고 사라진다. 가웨인은 용감한 기사로 추앙받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이제 자신의 목을 바쳐야할 시간이 된다. 말을 끌고 엄마가 묶어준 ‘허리띠’를 매고 북쪽으로 향한다. 그 여정에 산도적도 만나고, 신비한 여인 성(聖)윈프레드도 만나고, 붉은 여우와 동행하며 거인족을 목격한다. 그렇게 거대한 성에 이르러서는 의심스러운 친절을 베푸는 성주의 환대를 받는다. 그런데, 이 성에 머무르면서 기사의 또 다른 용기를 실험 받고는 도망치듯 빠져나와 숲속의 예배당에 도착한다. 녹색의 기사가 도끼를 들어올려 목을 내려치려고 할 때, 가웨인은 결심해야한다.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든지, 아니면, 도망치든지. 그렇게 살아서 돌아가서 용기 있는 척 해야할 것이다. 



디즈니 환상극 [피터와 드래곤], 호러영화 [고스트 스토리]를 만든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그린 나이트]에서 환상과 상징으로 가득한 중세 기사담을 들려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아서왕의 용기도, 원탁의 기사들의 난맥상도, 멀린의 마술도, 엑스칼리버의 전설도 아니다. 권능의 녹색기사의 도끼 앞에 선 인간의 용기를 다룬다. 실제 전설(소설) 속 가웨인은 무적의 ‘원탁의 기사’의 일원이다. 하지만, 그가 1년 만에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고 녹색의 기사를 찾아가는 여정은 용기도, 지혜도, 희생도 없다. 오직 인간의 본성에 따른 반응과 주저거림으로 가득하다.


영화 속 가웨인은 원탁의기사급 용기를 갖지 못한 ‘아서왕의 친인척’으로서 크리스마스 연회장에서 상석을 차지하는 애숭이로 그려진다. 애숭이 기사는 감히 녹색의 기사에 맞서는 만용을 부리고,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만의 모험담’을 갖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이다. 영화는 워낙 환상적이고 상징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울 듯하지만, 인간의 심성, 애숭이 남자의 시선으로 여정을 따라가면 삶과 죽음의 순간이 재조립된다. 하나를 선택할 경우의 삶과 잠깐 눈을 감았을 때 돌아올 또 다른 삶. 그것은 해골로 남을 죽음일지도 모른다. 

가웨인을 연기한 배우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 데브 파텔이고, 그가 여정의 초입부에 만난 산도적이 배리 키오건이다. 아서왕 이야기에서 마녀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모건 르페이는 이번 작품에서는 아서의 누이, 가웨인의 엄마로 등장한다. 가웨인의 용기를 증명하는 여정은 어쩌면 모건 마녀의 거대한 설계인 셈이다.  

‘아서왕의 전설’의 확장성과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환상적 재해석에 놀라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영화 ‘그린 나이트’, 녹색의 기사이다. 2021년 8월 5일 개봉 15세관람가 ⓒ박재환

 

[리뷰] 그린 나이트 ‘용자의 게임, 용기의 민낯’

[그린 나이트 ⓒ A24]그린 나이트 ⓒ A24영미문학권에서 ‘아서왕의 전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익스피어 만큼이나 클 것이다. 바위에 박힌, 혹은 호수에서 건진 명검(名劍) 엑스칼리버를 차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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