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그대 너머에, 인버전된 박홍민 감독

2020. 10. 27. 11:14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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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박홍민 감독의 전작 <물고기>(11)나 <혼자>(15)를 보셨다면 이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라는 미디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존재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펼치는 감독이 바로 그이다. 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소개된 작품 <그대 너머에>도 그런 감독의 진지한 탐구생활이 이어지는 작품이다. 

<그대 너머에>는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이다. 팔리지 않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시나리오에 썼기에 제작사 대표에게서 한 소리를 듣는다는 설정부터가 자기성찰적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영화는 그 남자의 시나리오와 현실과 꿈, 그리고 묘하게도 과거의 인연이 서로 뒤엉켜 진행된다. (어쩌면 그게 다 시나리오에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마을공원 풀밭에 개미들이 열심히 기어가고 있다. 카메라는 개미들을 유심히 비춘다. 옆 정자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주인공인 감독(김권후)이다. 그의 앞에 지연(윤혜리)이 등장한다. “우리 엄마를 한번 만나봐 주세요.”라고 애원한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엄마는 계속 글을 쓰고 있는데 감독이야기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연이 그런다. “혹시 당신이 제 아버지 아니세요?”란다. 황당해하는 감독. 그리고 마주치는 인숙(오민애). 20년만의 만남이라고 한다. 이어 개미를 보여주고, 지연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인숙의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영화는 어느 순간 묘한 시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분명, 인숙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숙은 저쪽을 쳐다보고 있다. 

“여기 있는 엄마는 아저씨 기억 속에 있는 엄마에요”

관객은 그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마치 <식스 센스>의 브루스 윌리스가 된 듯하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지연의 존재도, 인숙의 존재도, 아니 감독의 존재에 대해서도 말이다. 지연은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에 대해 원망하고, 감독은 기억 속의 인숙을 끄집어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어쩌면 꿈을 통해, 호흡을 통해 애타게 바라보는 상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갈망이 투영된 것이리라. 

<그대 너머에>는 저 멀리 루이스 브뉘엘의 작품처럼, 혹은 테렌스 맬릭의 <씬 레드 라인>의 한 장면처럼 뜬금없이 개미를 보여주면서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 몇 장면은 탁월하다. 오래 전 찍은 개미영상을 보다가 “아래를 봐.”라고 말하며 카메라가 아래로 움직인다. 

인숙이 잃어버린 딸을 찾아 동네를 헤매는 장면은 최고의 장면이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다. 저 먼 재개발 직전의 허름한 동네가 보이고 어디선가 애타게 부르는 인숙의 소리가 메아리친다. 한참이나 지켜보고 있으면 개미같이 작은 인숙의 움직임이 불쑥 나타난다. 

감독은 자기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지연은 자신의 존재를 엄마에게 인식시키려고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인숙은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원고뭉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감독은 전작을 찍을 때 네덜란드 출신의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여전히 그의 작품은 시간적으로 엉켜있고, 공간적으로 뒤틀려있다. 

박홍민 감독의 전작처럼 <그대 너머에>도 존재와 기억, 망각을 다룬다. 마지막 비추는 감독의 방, 벽에는 영화제 목걸이가 있고 노트북에는 써다만 시나리오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개미들은 여전히 전진한다. 매력적인, 매혹적인, 아름다운 영화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2020.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