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에서 백승기 감독은 봉준호 감독만큼 특별한 위상을 갖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엘리트 코스의 계관시인이라면, 백승기 감독은 저잣거리의 떠돌이 약장수이다. 대부분의 충무로감독들이 단편영화로 자신의 영화미학을 세워나갈 때 백승기 감독은 'UCC'와 '짤'이 대표하는 키치스타일로 자신의 영화미학이란 것을 알렸다. 백승기 감독은 <숫호구>(12), <시발,놈:인류의 시작>(16), <오늘도 평화로운>(19)에 이어 네 번째 영화를 완성시켰다. <인천스텔라>. 딱 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를 본뜬 영화일 것이다. 그의 엄청난 전작들의 스펙으로 예상하건대 이 영화는 이름만 거창한 패러디에, 애처로운 코미디, 바닥난 창의력의 C급 영화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과연 그런가. 최근 개막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의 최고 화제작 중의 하나이다. 아니, 별다른 화제작이 없기에 군계일학, 독보적 화제를 몰고 왔다.
놀란 감독은 1억 6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3차원 우주를 뛰어넘는 차원이 다른 SF우주드라마를 만들었다. <인터스텔라>는 아버지와 딸이, 지구운명의 종말을 저지하기 위해 천문학적 돈에 걸맞은 드라마를 완성한다. 백승기 감독은 ‘5만 달러’의 제작비로 <인천스텔라>를 완성했단다. 정말 인천의 미세먼지를 피해 우주로 가는 것일까? 아버지와 딸이, 지구운명의 종말을 저지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경주한다. 확실히, 노.력.한.다! 눈물겨운 노력을!!!
영화시작과 함께 선호(권수진)가 아이를 출산하려한다. 의사는 상태가 위험하다며 산모를 살리든지 아이를 살리든지 택일해야 한다고 한다. 아빠 남기동(손이용)은 통곡한다. 그렇게 하여 아빠는 딸 규진(강소연)을 홀로 키우게 된다. 아버지는 무려 ASA의 우주인이다.(NASA아님) 언젠가는 저 별로 갈 것이다. 하늘의 별이 된 아내를 만나서 딸이 잘 자라고 있다고 전해줄 것이다. 그런데 딸이 잘 자라고 있나? ASA에서 20년을 준비한 프로젝트가 결국 궤도에 오른다. 어떻게 입수했는지, 그 설계도대로 우주선을 만든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무려 5만달러를 투입한 백승기 감독이 어떻게?
동네 자동차정비소에서 만들어진다. 자동차 모형이다. (우주여행이나 시간여행에서 '탈 것 장치'가 꼭 아폴로13호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당신의 편견일 뿐이다!) 처음 정비소에 보이는 BMW가 아니다. 감독이 그런 오버스펙을 할 가능성은 낮다. 맙소사! 실제 발사되는 우주선은 놀랍게도 '스텔라'이다. (현대에서 1997년까지 생산된 모델) 놀랍고도 엄청나다. (현대가 이 영화에 협찬을 안 한 것은 엄청난 비즈니스적 실책이다!)
백승기 감독은 이 영화를 'TV아침드라마' 버금가는 최루성 멜로드라마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소재는 탄탄하다. 출산의 비극, 홀아버지의 고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우주대모험. 그리고 믿음직한 청년 차승연(정광우)의 등장까지. 아버지와 딸, 그리고 예비사위. 1시간 동안 늘어지던 영화는 정확히 반환점을 돌면서 급속하게 ‘인터스텔라’의 핵심으로 날아간다. 우주로 간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이고, 그들이 그곳에서 선택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지구의 딸에게 전달될까. 우리는 <인터스텔라>에서 본 장면을 다시 한 번 만나보게 된다. 그렇다. <인터스텔라>는 <인천스텔라>의 예고편이었을 뿐이다.
현역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이 취미로 하는 영화작업, 그 네 번째 시도에서 당당히 우주 공간에 이름 석 자를 남긴다. 백승기.
참, 현대자동차만 아쉬운 것이 아니라, 네이버도 기회를 놓쳤다. AI스피커로 '세잎 클로버'가 등장한다. 통한의 초저예산으로 완성된 우주패밀리스토리이자 궁극의 씨네필 작품이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피터 잭슨 감독과 이야기해야할 듯하다. <배드 테이스트>를 찍은 그 영화광 말이다. (박재환 20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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