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그 때, 신성일은 왜 그랬을까 (이만희 감독, 1968)

2019. 10. 29. 15:00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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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탄생 100년을 맞아 KBS와 영상자료원이 마련한 대형 프로젝트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하녀>(김기영 감독), <오발탄>(유현목 감독)에 이어 지난 (2019년 10월) 18일 늦은 밤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시청자를 찾았다. <휴일>은 한국영화사, 특히 검열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1931년 생 이만희 감독은 1961<주마등>으로 감독 데뷔를 한 후, <돌아오지 않는 해병>(63) 등 흥행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7인의 여포로>(65)는 반공법 위반으로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미학은 날로 발전했다. 지금은 필름이 사라진 <만추>(66)에 이어 <휴일>을 감독한다. 당시 한국에서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 시나리오부터 검열하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사전 각본심의 단계이다. 영상자료원 자료에 따르면 이만희 감독의 시나리오는 세 차례 반려되었다. 그 이유가 정말 화려하다. 첫 번째 반려 이유는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였고, 두 번째는 주체성은 있으나 예술성이 없다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것이 당대 검열당국의 판단이었다. 지금 남아있는 시나리오에는 감독의 고뇌가 뚝뚝 묻어난다. 여하튼 1968년 이 영화는 결국 개봉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망각된 필름은 37년이 지난 2005. 한국영상자료원의 보존창고에서 필름이 발견되면서 다시 한 번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지난 주 시청자를 찾은 <휴일>은 그렇게 찾아내고, 복원시킨 이만희 감독의 걸작이다.

 

영화는 가난한 연인, 신성일과 전지연의 하루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허울대가 멀쩡한 허욱(신성일)은 일요일이면 지연(전지연)과 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그에겐 담배 살 돈도, 택시탈 돈도, 만나서 커피 마실 돈도 없는 무일푼이다. 그런 허욱의 사정을 잘 아는 지연은 오늘도 찬바람이 몰아치는 공원 벤치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다가 어렵게 지연은 임신한 사실을 말하고, 둘은 중절 수술을 받기로 한다. 이제 빈털터리 허욱은 수술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뛰어다녀야한다. 하지만 그 어떤 친구도 허욱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허욱은 친구(김순철) 집을 찾아가서는 돈을 훔쳐 나온다. 지연이 수술받는 동안 허욱은 술집을 전전한다. 처음 만난 여자와 공사판 어두운 구석에 내몰린다.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가 들려오고, 병원으로 달려가니 지연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 허욱은 쫓아온 친구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피투성이가 된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허욱은 지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전차를 탄다. 한밤 종점에서 내린 그는 머리를 깎아야겠다고 읊조린다.

 

이만희 감독의 시나리오에는 허욱이 자살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전심의 과정을 거쳐, 그는 살아남는다. 군대 가서 사람 되어라는 당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이런저런 해석이 나온다.

 

여하튼, 1968년의 서울풍경은 도대체 저곳이 어디인지감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이다. 서울이 상전벽해로 바뀐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한국적 리얼리즘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단 하루의 이야기를 통해, 방황하는 젊음의 고뇌와 시대상을 느끼게 된다. 이만희 감독의 연출 고뇌는 담배-흡연신에서도 느낀다. 주인공 신성일은 끊임없이 담배를 입에 문다. 그리고, 매번 담뱃불을 빌리든가, 옆 사람이 켜준다. 워낙 흡연신이 많은 영화라서 TV방송에서 담배를 블러 처리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 <휴일>은 대한연합영화사가 만들었다. 홍의선과 전옥숙 부부의 영화사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첫 번째 여성영화사대표였던 전옥숙 여사는 이만희 감독과 함께 힘겹게 검열당국과 맞섰며 <휴일>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전옥숙 대표의 아들이 바로 홍상수 감독이다.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한 KBS의 특별기획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은 이번 주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11)에 이어,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18), 임권택 감독의 <김소뜸>(1115) 등 올해 말까지 계속 이어진다. (KBS미디어 박재환)
한국영화 탄생 100년을 맞아 KBS와 한국영상자료원이 마련한 대형 프로젝트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이 <하녀>(김기영 감독), <오발탄>(유현목 감독)에 이어 지난 18일 늦은 밤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영화팬을 찾았다. <휴일>은 한국영화사, 특히 검열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1931년 생 이만희 감독은 1961년 <주마등>으로 영화감독에 데뷔를 한 후, <돌아오지 않는 해병>(63) 등 흥행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7인의 여포로>(65)는 반공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러야했다. 검열을 통과해서 상영허가를 받았지만 검찰이 당시 반공법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당시 검찰의 영장청구 논지는 ‘감상적 민족주의를 내세웠고’, ‘국군의 묘사가 허약하며’, ‘북괴병사를 찬양’하고, ‘양공주 참상을 과장했다’는 등의 이유였다. 이만희 감독은 보석으로 풀려날때까지 약 40일간 수감되었다. 재판결과는 ‘선고유예’였다. 제작사는 부분삭제, 결말 변경 등 재촬영과 편집을 진행했고 제목마저 <돌아온 여군>으로 바뀌었다.

이런 전력(!)을 가진 이만희 감독의 영화혼은 결코 시들지 않았다. 지금은 필름이 사라진 <만추>(66)에 이어 <휴일>을 감독한다. 당시 한국에서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 시나리오부터 검열하던 시절이었다. 시나리오가 승인이 떨어져야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영상자료원 자료에 따르면 이만희 감독의 시나리오는 세 차례 반려되었다. 그 이유가 정말 화려하다. 첫 번째 반려 이유는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였고, 두 번째는 “주체성은 있으나 예술성이 없다”였단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것이 당대 검열당국의 판단이었다. 지금 남아있는 시나리오에는 감독의 고뇌가 뚝뚝 묻어난다. 여하튼 1968년 이 영화는 결국 개봉을 하지 못한다. 제작사와 감독이 개봉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게 망각된 필름은 37년이 지난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의 보존창고에서 필름이 발견되면서 다시 한 번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지난 주 시청자를 찾은 <휴일>은 그렇게 찾아내고, 복원시킨 ‘이만희 감독의 걸작’이다.

영화는 가난한 연인, 신성일과 전지연의 하루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허울대가 멀쩡한 허욱(신성일)은 일요일이면 지연(전지연)과 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그는 담배 살 돈도, 택시 탈 돈도, 만나서 커피 한 잔 마실 돈도 없는 무일푼 신세이다. 그런 허욱의 사정을 잘 아는 지연은 오늘도 찬바람이 몰아치는 공원 벤치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다가 어렵게 지연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둘은 어렵게 중절수술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제 빈털터리 허욱은 수술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뛰어다녀야한다. 하지만 그 어떤 친구도 허욱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허욱은 친구(김순철) 집을 찾아가서는 돈을 훔쳐 나온다. 지연이 수술 받는 동안 허욱은 술집을 전전한다. 처음 만난 여자와 공사판 어두운 구석에 내몰린다.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가 들려오고, 병원으로 달려가 보지만 지연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 허욱은 쫓아온 친구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피투성이가 된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허욱은 지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전차를 탄다. 한밤 종점에서 내린 그는 “머리를 깎아야겠다”고 읊조린다.

허욱은 왜 성냥을 갖고 있지 않을까

(몇 차례 수정된) 이만희 감독의 시나리오에는 허욱이 자살할 것이라고 (암시)한다. 하지만 사전심의 과정을 거쳐, 그는 살아남는다. 군대 가서 사람 되어라는 당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이런저런 해석이 나온다. 여하튼, 1968년의 서울풍경은 도대체 ‘저곳이 어디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이다. 서울이 상전벽해로 바뀐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한국적 리얼리즘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단 하루의 이야기를 통해, 방황하는 젊음의 고뇌와 시대상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만희 감독의 연출 고뇌는 흡연 장면에서도 느낀다. 주인공 신성일은 끊임없이 담배를 입에 문다. 그런데 그는 매번 담뱃불을 빌리든가, 옆 사람이 켜준다. 워낙 흡연신이 많은 영화라서 TV방송에서 담배를 블러 처리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 <휴일>은 대한연합영화사가 만들었다. 전옥숙 대표는 한국영화사에서 첫 번째 ‘여성’ 영화사대표였다. 전옥숙 대표는 이만희 감독과 함께 힘겹게 검열당국과 맞서며 <휴일>을 완성시켰고, 창고에 사장시켰던 것이다. 전옥숙 대표의 아들이 바로 홍상수 감독이다.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한 KBS의 특별기획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은 이번 주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1월 1일)에 이어,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1월 8일), 임권택 감독의 <김소뜸>(11월 15일) 등 올해 말까지 계속 이어진다.  (박재환 2019.10.30)

 

 

르네상스, 검열 그리고 이만희 영화

196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계 영화는 1960년대 한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르였다. 1960년대를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라 부르는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물론 수치로도 증명된다. 영화 관객 수는 1961년 5,800만 명에서 1969년 1억 7,300만 명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고(이 기록은 2012년에나 깨졌고, 2013년부터는 총 관객 2억 명을 넘는 영화 시장이 되었다.) 1962년 100편을 훌쩍 넘긴 제작편수는 1965년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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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이전 그의 어머니 전옥숙이 있었다

[플래시백 한국영화 100년]<33> 첫 여성 제작자 전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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